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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ours Feb 04. 2016

생일을 맞은 너에게

생일을 맞이하는 우리들의 자세.

딩동. 문자가 여럿 온다.

무슨 내용인가 싶어 열어보면 '00님의 생일을 축하하며 몇프로 할인쿠폰을 준다'는 광고성 문자들에서부터 한동안 소식이 뜸했던 친구들에게서 온 예상치 못한 문자도 있다.  

반가운 친구연락에 옛날 생각도 좀 하며 하트 듬뿍 담긴 답장을 보내주고 나면

조금은 허탈한 기분이 든다.


좀 더 어렸을 때, 나는 생일이 마냥 좋았다.

생일은 일단 선물 받는 날이니까.

내가 이 세상에 태어난 것을 사람들이 축하해주는 날이니까.


그 날만큼은 내가 주인공인 것 같고, 내가 제일 예뻐보이고 싶은 그런 욕심이 드는 날이기도 하다.

적어도 예전의 나는 그랬다.


하지만 올해 생일을 맞이하면서 나는 조금 다른 기분을 느꼈다.


가장 큰 차이는 내가 더 이상 생일을 손꼽아 기다리지 않게 되었다는 것이다.

성인이 되고 난 이후에도 나는 생일즈음이면 계획도 미리서부터 세워두고 며칠전부터 설레하고 또 당일날에는 12시 땡하자마자 오는 친구들의 연락도 기다리곤 했었는데, 올해는 좀 달랐다.  

생일이니까 얼굴보자는 친구들의 연락에서야 생일이 코앞에 왔구나를 느꼈고, 생일 전날인 어제도 '오늘이 몇일이더라.' 하는 말을 몇번이나 했다.


이게 나이가 든다는 건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나이가 들면 이런것도 무뎌지게 되는 걸까.


예전에 내 생일을 잊어버린 남자친구와 크게 싸운 적이 있었다. 당시 그 남자친구도 화가 나서, 생일이 뭐가 그렇게 중요하냐는 말을 했었는데. 당시에는 정말 하나도 이해가 되지 않았지만 오늘은 조금 이해가 되기도 했다.


그래. 생일이 뭐가 그리 중요하나. 싶은 생각이 들기도 한다.

직장인이 되고부터 하루하루 일상에 쫓겨가며 어제가 오늘같고 오늘이 어제같은 날들을 보내다 보니  

생일이 되어서야 생일이구나.하는 생각을 하는 지경에 이르게 된 것 같다.

하루하루 버텨내며 살아내기도 벅찬데, 생일 그게 뭐가 대수냐. 생일이라고 회사에서 휴가를 주는 것도 아닌데.


다행히 오늘은 주말이라서 어디 나가지도 않고 온전히 집에서 푹 쉬면서 생일을 보냈다.

아침에 엄마가 끓여준 미역국을 먹는데 새삼 부모님께 감사한 마음이 들었다.

고개를 들고 부모님 얼굴을 보니, 마음이 참 짠했다.


응답하라 1988 마지막회에서 미래의 덕선이가 과거로 돌아가서 하고 싶은 일이

태산같던 부모님을 만나보는 것이라고 했을 때. 나는 알게 모르게 공감을 참 많이 했다.

부모님이 언제 이렇게 나이가 드신 건지..


나는 미역국을 떠먹으며 "낳아주셔서 고맙습니다." 했다.

내 말에 엄마가 웃으시면서 "우리 딸, 태어나줘서 고맙다." 하는데 목이 콱 막혔다.




이번 생일에 나는 새삼 내 주변 사람들에게 '고마움'을 많이 느꼈다.

부모님은 물론이고, 바쁜 와중에도 생일을 잊지 않고 챙겨준 친구들에게 너무 고마웠다.

서로 각자의 직장으로 흩어져서 바쁘고 또 피곤하게 생활하면서도 내 생일을 잊지 않아준 것이 고맙고,

또 귀한 시간내서 나를 만나러 와준 것이 고맙고,

나를 생각하며 무언가를 선물했다는 것도 너무나도 고마웠다.


친구들이 내민 생일케이크를 보면서 나는 그런 생각을 했던 것 같다.

케이크 위에 꽂힌 초만큼의 시간을 내가 열심히 살아왔고, 그 시간들을 친구들이 축하해주는 것이라고.

나 자신에게도, 친구들에게도, 부모님에게도. 한 없이 고마워지는 순간이었다.


그래서 예전처럼 케이크 앞에서 예쁜척을 하지 못했던 것 같다.

촛불을 후-부는 장면을 예쁘게 찍고 싶어 꾸미던 어린 내가 사라지고,

케이크 앞에서 내 주위 사람들에게 고마움을 느낄 수 있는 내가 되었다.


그것이 이번 생일을 맞으면서 내게 생긴 가장 큰 변화였다.


친구들과 헤어지면서 나는 고맙다는 말을 몇번이고 했다.

진심이었고, 그런 말을 친구들에게 해주고 싶었기 때문이다.


학창시절 매일 보던 친구들이 이젠 각자의 생일즈음에만 만나지는 것이 좀 슬프기도 하지만,

시간이 흐른다는 것은 그런 것이니까.

이제는 나도 받아들이고 이해할 수 있는 나이가 되었다.




나의 생일 날.
시간이 이렇게 빨리 흐른 것에 대해 허탈함을 느끼기도 하였고, 내가 이제 더 이상 어린 아이가 아니라는 것도 깨달았으며,  내 주위 사람들에게 고마워할 줄 알게 되었다.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행복하고 의미있는 생일을 보낸 것 같다.



이제 생일이 끝나가고 있다. 마지막으로 내가 나에게 인사를 보낸다.

생일 축하해.

그동안 잘 살아왔고 앞으로도 잘 살아낼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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