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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두옥 Jan 10. 2024

일터에서 내 자신이 아닐 때
번아웃이 찾아온다

번아웃의 원인은 우리가 진심으로 행복하지 않기 때문이다

일 잘하는 사람이라면 한번쯤 검색해 보는 단어 '번아웃'.


모든 병이 그렇듯이 번아웃도 특성을 제대로 알아야 해결이 가능하다. 번아웃의 분류는 크게 '번아웃 상태'와 '번아웃의 원인'에 따라서 다르다. 과거에는 아무래도 밖으로 드러나는 '상태'에 집중해서 해결책을 강구했으나, 요즘은 보이지 않는 번아웃의 '원인'에 집중해서 대안을 찾는 추세다. 




번아웃의 상태에 따른 분류 : 열광형, 의욕부족형, 탈진형


(1) 열광형 (Frenetic) 

하루 24시간이 모자랄 정도로 바쁘게 일하는 사람들이다. 주변에서 "좀 쉬어가면서 일해" 혹은 "너무 무리하는 거 아니야"라는 말을 자주 듣고, 하루가 숨쉴 틈 없이 바쁘다. 삶이 온통 해야할 일들로 채워졌다는 느낌을 자주 받고, 업무에 과부하가 걸렸다고 생각한 지도 꽤 됐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 이렇게 바쁜 이유가 어제 제대로 하지 못했기 때문이라는 생각에 더 과도하게 자신을 밀어붙인다. 성공에 대한 열정과 야망을 이루기 위해서 더 미친듯이 일해야 한다고 믿는다.


(2) 의욕부족형 (Under-challenged)


지금 하는 일은 내 능력에 도움이 되지 않는 다는 생각에 일에 대한 의욕이 사라진 사람들이다. 일을 못하는 것 같지는 않은데 설렁설렁 대충대충 하면서 중요하지 않은 일이라고 말하는 사람들이다. 주변에서 "좀 열정적으로 임해봐"라는 말을 종종 듣지만, 자신이 맡은 일은 열정을 쏟을 일이 아닌 것 같다. 


전반적으로 일에 대해서 무관심하고, 그러다보니 일이 지루하고, 결과물도 좋지 않고, 이로인해 의욕이 떨어지는 악순환이 반복된다. 주변에서 생각하는 것 보다 자신의 능력을 높게 생각하고 댓가가 적다고 느낀다. 


(3) 탈진형 (Worn-out)


정신적, 감정적, 육체적으로 지친 사람들이다. 그렇기 때문에 일이 조금이라도 어려워지면 금세 포기하고 무기력해진다. 주변에서 "왜 이렇게 힘이 없어", "좀 능동적으로 일해봐"라는 말을 듣기도 한다. 


앞의 두 유형과는 달리 자기 역량에 대한 믿음이 없고 자신감도 없다. 전반적으로 일에 대한 의욕이 없고 무기력하다. 



번아웃의 원인에 따른 분류 : 과로형, 고갈형, 불일치형


(1) 과로형 (Overexertion Burnout)


자신의 역량보다 과도하게 일을 해서 지치는 사람들이다. 핸드폰으로 비유하자면, 한번에 너무 많은 앱을 켜 놓고 사용하는 것이다. 사람마다 개인이 처리할 수 있는 업무의 양과 난이도가 다른데, 자신의 역량보다 훨씬 많은 양이나 어려운 일을 처리하느라 지치는 것이다. 


내가 토즈의 공간기획팀장으로 있을 때, 4개 지점의 오픈을 동시에 준비하던 시기가 있었다. 당시 내가 맡은 일을 대신 할 사람이 없었기 때문에 하루에 15-18시간씩 사무실에서 일을 하곤 했다. 자정을 넘어 퇴근할 때마다 몸과 정신이 소진되는 느낌이 들었는데, 그 때가 정확하게 과로형 번아웃이었다.  


(2) 고갈형 (Depletion Burnout)


에너지를 충전할 기회를 갖지 못해서 지친 사람들이다. 이 역시 핸드폰으로 비유하자면 오랫동안 배터리를 충전하지 않으면서, 사용하지 않을 때 전원을 꺼 두기만 한 것이다. 이런 상태가 오래되면 무슨 일을 해도 힘이 든다. 충분히 수면을 취한 아침에도 에너지 레벨이 낮고, 어떤 일이든 최대한 에너지가 들어가지 않는 방향으로 진행하려고 한다. 


내가 일한 사람 중에서도 전형적인 고갈형 번아웃에 빠진 파트너가 있었다. 그의 프로젝트는 밤을 새야한다거나 엄청난 양의 일을 며칠 안에 처리해야 하는 성격은 아니었다. 하지만 휴일에도 클라이언트의 전화를 받아야 했고, 여름이나 겨울 휴가 시즌에도 3일 이상의 휴가는 불가능했다. 그렇게 10년 이상을 일하다 보니, 그는 어떤 일을 해도 무기력해 보였고 열정을 쏟지 못했다. 마치 한번도 충전하지 않은 스마트폰 같았다.


(3) 불일치형 (Misalignment Burnout)


지금 하는 일과 실제로 원하는 일이 일치하지 않아서 불행한 사람들이다. 밖에서 보기에는 모든 게 괜찮아 보이지만, 이들은 자신이 진정으로 원하는 미래를 향해 일하고 있지 않다. 가족이나 커뮤니티, 혹은 바깥에서 강요받은 미래를 위해 일하고 있다. 처음에는 희망을 가지고 열심히 일을 하다가 "이게 내 삶에 무슨 의미가 있나?"라는 생각이 드는 순간 번아웃이 온다. 


나에게도 불일치형 번아웃이 온 적이 있었다. 당시 팀장으로서의 내 방향성은 '시스템과 업무를 잘 조직화해서 팀원들이 원하는 시기에 원하는 기간만큼 휴가를 갈 수 있도록 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당시 내 상사의 방향은 반대였다. 2주 휴가계를 낸 직원에게 교통비를 지급해서 휴가를 1주씩 2회로 나눠 쓰도록 유도하라는 지시를 받은 것이다. 일과 직접적으로 관련된 것은 아니었지만, 당시 나는 감정적으로 혼란스러웠고, 내가 담당한 업무를 예전처럼 잘 처리하지 못했다. 머리속에서는 "이렇게 일하는 게 무슨 의미가 있나?"라는 질문이 맴돌아 일에 집중하기가 어려웠다.



AI 시대의 정신적 번아웃


번아웃의 원인은 단순히 육체적인 과부하가 아니다. 우리의 신체와 정신은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어서, 육체적인 어려움이 정신을 무너트리기도 하고, 정신적인 혼란이 신체에 기능고장을 유발하기도 한다. 게다가 본격적으로 AI 가 인간이 하던 지루하고 복잡한 일들을 처리하는 때가 오면, 직장에서의 번아웃은 대부분 정신적인 원인에서 시작될 가능성이 많다. 


일터에서 내 자신이 아닐 때
우리는 번아웃이 된다

정신적인 측면에서의 번아웃의 원인은, 한마디로 말하면 우리가 진심으로 행복하지 않기 때문이다회사에서 매일 하는 일에서 내가 아무런 가치도 느끼지 못할 때, 회사의 업무 가이드 라인이 내 가치관과 일치하지 않을 때, 내가 담당하는 업무가 내가 잘하고 싶은 일이 아닐 때, 우리는 번아웃의 입구에 들어선다. 


한때는 사회생활을 잘 하려면 자신을 버리고 조직이 원하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고 교육을 하기도 했다. "원하는 것만 하면서 어떻게 사니?"라는 말은 지금도 진리처럼 느껴진다. 하지만 원하는 것'만' 하면서 사는 것과, 원하는 것'을' 하면서 사는 것은 다르다. 


우리가 무언가를 원하는 이유는, 내가 타고난 성질이 그런 사람이기 때문이다. 내가 업무효율에 관심이 있는 것은, 내가 다른 누구보다 효율에 대한 캐치가 빠르고, 이를 변화시킬 수 있는 시스템에 대한 인지가 빠르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이를 통해 나는 세상에 기여할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나의 남편이 나 보다 사람들에게 친절한 이유는, 사람들의 감정을 캐치하는 능력을 타고났기 때문이고, 사람들이 웃는 것을 보면서 느끼는 기쁨이 나 보다 훨씬 크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그런 친절과 웃음이 세상을 더 살기 좋은 곳으로 만드는 가치있는 것이라고 - 나 보다 훨씬 더 - 굳게 믿기 때문이다. 


이렇게 다른 개개인이 꾸밈없는 그대로 일할 수 있을 때 우리는 행복하다. 없는 것을 가진 척할 필요도 없고, 모르는 것을 아는 척 할 필요도 없고, 예민한 것에 아무렇지 않은 척 하지 않아도 될 때, 우리는 진정으로 자신으로 살 수 있다. 그런 일은 힘이 들지 않는다. 


번아웃은 내가 아닌 사람으로 일하느라 오랫동안 힘을 주고 있을 때, 

"더 이상은 이렇게 살고 싶지 않다"고 내 영혼이 말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참고문헌
Farber, B. A. (1983). Burnout in Psychotherapists: Incidence, Types, and Trends.|
Abdaal, A. (2023). Feel Good Productivity: How to Achieve More of the Things That Matt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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