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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틂씨 Aug 07. 2022

새 똥은 일종의 자연재해가 아닐까

미리 알고 손 쓸 수 없다는 차원에서






찍-

쎄하다. 분명 눈앞으로 뭔가 지나갔는데?

가던 길을 멈추고 옷매무새를 다시 본다. 배 쪽에 묽은 갈색의 무엇인가가 묻었다. 새 똥. 낮에 자전거를 타느라 땀에 젖은 데다 밀크티를 마시면서 흘린 셔츠를 집에 두고 막 흰 티로 갈아입고 나가는 길이었다.




빨래를 스스로 하는 데다 흰 빨래와 어두운 빨래를 구분해서 하는 나 같은 사람은 아예 컬러풀한 옷이나 드라이를 해야 하는 옷은 사지 않게 되었다. 흰 빨래도 주로 수건류나 시트지, 옷은 거의 없다. 흰 옷은 관리하기가 너무 까다로우니까. 여름엔 쉽게 누렇게 변색이 되고, 뭘 조금만 잘못 튀어도 금세 티가 난다. 어두운 옷을 입는 편이 여러모로 효율적이고 편했다. 그러니까, 흰 옷을 잘 안 입는다는 얘기다, 빨래가 귀찮아서. 그런데 굳이, 오랜만에, 그냥 입고 싶어 져서 흰 티를 꺼내어 입고 나온 지 막 5분 안 지났을 때였다.  


위치는 정확하게 배꼽 쪽. 티 아래쪽으로 물똥의 흔적이 지나고 있다. 제기랄. 흐름을 자세히 훑어보니 오, 이런(shit), 검정 바지라 금세 알아차리지 못했으나 남은 똥이 바지 양쪽 사타구니 사이를 흐르고 있었다. 정확하게 양쪽으로 나뉘어, 내가 똥을 지린 것 같은 자리랄까...





후. 심호흡을 하고 가방을 뒤적여 휴지를 꺼낸다. 대충 덩어리들을 닦아 내고 어기적 어기적 가까운 도서관의 공중 화장실로 들어가 물과 세정제로 대충 똥 자국을 지운다. 당연히 말끔하게 지워지지는 않지. 옅은 갈색이 된 티셔츠 자국을 보며 일단 임시방편으로 급한 문제만 해결하기로 한다.


이 동네는 바다와 맞닿은 큰 강을 끼고 있는 항구도시라 비둘기 못지않게 갈매기도 많다. 바닷가 갈매기의 낭만? 노노. (걔네 엄청 공격적이다) 그저 두 새의 공통점이라면 모두 날아다니면서 똥을 싼다는 것. 똥에 맞을 확률이 두 배로 늘어난다는 이야기랄까. 예전에는 가끔 새 똥을 맞으면 기분이 더러워져서, 하.. 나한테 왜 이래? 하고 화부터 났다면, 요즘에는 일단 조용히 숨을 내 쉬고 닦는다. 대게 새 똥을 맞을 때 나는 혼자고, 그래서 아씨! 하고 하소연을 할 사람이 옆에 없다. 들어주는 사람이 없다면 화를 낼 이유가 없어진다. 그런다고 바뀌거나 해소되는 게 하나도 없으니까. 그저 묵묵히 닦아내고 갈 길을 간다.




문득 새 똥을 맞는 일이, 일종의 자연재해 같은 거 아닌가 하는 생각을 했다. 그렇잖아. 하늘에서 날아드는 똥을 미리 알고 피할 수 도 없고. 재수가 정말 없는 날엔 머리나 얼굴에 맞으면 이건 뭐 빼도 박도 못하고 집에 돌아가 샤워를 해야 한다. 언젠가 흰 캔버스 가방에 묻었던 새 똥을 벅벅 지우다 잘 안 지워져서 그냥 그 가방을 버려버렸던 적도 있다. 이건 규모가 소소해서 그렇지 날벼락과 크게 다를 바가 없다. 미리 준비할 수 없으니 그저 당하면 그 순간을 어떻게든 해결하고 나아가야 한다. 자리에 서서 새를 욕한다고 뭔가 달라질 것도 없고, 상황을 해결하지 않으면 괴로운 건 나일 테니까.


살면서 이런 날들이 종종 있다. 무방비로 새 똥을 맞는 날. 하필 흰 티를 입고서. 내게는 인종차별이나 캣 콜링을 듣는 날들이 그렇고, 미술관에 진상이 찾아와 드러눕거나 소리 지르는 일을 마주하는 일이 그렇다. 내가 잘못해서도 아니고, 내가 무슨 문제를 일으켜서도 아니고, 그냥, 거기, 그 자리에 있어서 재난재해처럼 당하는 일들. 마치 지나가다 맞은 새 똥처럼.


그럴 때는 왜 내가 똥에 맞았지, 왜 그때 하필 그 길을 지나갔지, 왜 흰 티를 입었지, 후회하거나 한탄하는 대신에 최대한 상황을 빨리 정리하고 앞으로 나아가려고 노력한다. 그건 내 잘못이 아니니까. 후회할 수 있는 일도 아니고 후회한다고 바뀌지도 않으며 후회할 필요가 없는 일이라는 것을 잊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하지만 기분이 썩 좋지 않은 것까지 막을 수는 없지. 그럴 때는 화를 내기보다는 다른 것으로 주의 환기를 시킨다. 친구와 맥주를 한 잔 하거나, 맛있는 걸 먹거나, 아니면 재밌는 걸 보거나. 그런 걸로 금세 환기가 완벽하게 되는 것은 아니지만, (그러면 도인이겠지) 그래도 노력 중이다.




그래, 새 똥이야 뭐, 지나가다 똥을 밟은 거랑 비슷하지. 그게 하필 거기 있었고, 나는 아무 잘못도 하지 않았지만 안 좋은 일이 발생했다. 그저 지나가는 편이 나에게 제일 좋아. 주문처럼 스스로 되뇐다.


하지만 역시 알면서도 어려운 걸. 똥에게 화내지 않고 지나가기. 

그걸 피할 수 있으면 좋았을 텐데 라는 생각이 떠나지 않기도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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