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t 1: 알고 보니 담당교수님이 학생학대로 신고당했던 사람이었습니다.
대학교 4학년.
호주 대학교에는 honours라고 하는 1년 연구과정코스가 있다. 주로 대학교 4학년 때 듣는 코스로, 높은 성적으로 졸업 시 석사과정을 스킵하고 바로 박사과정으로 들어갈 수 있다.
그랬기에, 생화학과 면역병리학을 전공한 나는 자연스레 honours 과정을 하기로 다짐했다.
3학년 말, 아직 관심 있던 분야를 못 찾았던 나는 어느 분야에서 어떤 교수님을 골라야 할지 갈피조차 잡지 못했었다. 신청마감날짜는 다가오고 스트레스는 커져갈 무렵 한 이메일이 도착했다.
‘여름인턴쉽 합격을 축하합니다’
혹시 몰라 신청했던 인턴쉽 합격 이메일이었다. 이메일에는 내가 어떤 팀 하고 일할지, 그리고 담당교수의 연락처가 담겨있었다. 가볍게 찾아보니 세계적으로 유명한 교수님이 계신 곳이었다.
주위에서 말하길 유명한 연구실에 들어가면 그 이름 때문 에라도 취직이 잘 된다-라고 했었다.
내 담당교수님은 그 유명한 교수님 밑에서 일하시는 분이었지만 여기서 일하면 나중에 취직은 잘되겠다는 생각을 하고 미팅을 잡게 되었다.
사실 첫인상부터 좋지 않았다.
11시까지 만나기로 하고 건물 입구에서 기다렸지만 미팅이 늦어졌다며 문자 한 통 없이 20분 후 나타난 이 분. A라고 칭하겠다. A교수님은 중국계 여자교수님으로 굉장히 예민하고 날카로운 이미지를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만나서 가볍게 프로젝트에 대한 설명을 들었는데, 내 전공과도 딱 맞고 내용이 굉장히 흥미롭게 들려 안 좋았던 첫인상은 아예 잊게 되었다. 원래 난 남의 비위를 잘 맞추는 성격이라서 괜찮겠지 라는 태평한 생각을 하며 인턴쉽을 시작하게 되었다.
인턴쉽을 시작하고 나서 추가적으로 느낀 것은 성격이 급하고 짜증이 많은 사람이라는 점이었다. 또 상사와 대화하고 우는 모습을 자주 보였다. 하지만 실질적으로 나와는 크게 부딪힐 일이 없었고 또 연구실이 금전적으로 여유로워서 난 이 연구실과 하기로 마음을 굳혀갔다.
그래서 인턴쉽 중간쯤 A교수님께 같이 연구를 하고 싶다 말씀을 드렸고 자연스레 honours를 함께 진행하게 되었다.
그리고 이 순간이 내가 가장 후회하는 순간이 된 것은 얼마 지나지 않고 나서였다.
Honours를 시작하게 되면 연구에 쓸 다양한 실험기술을 배우게 된다.
보통 새로운 연구기술을 알려줄 때는 한두 번 정도 교수님이 보여주고 학생이 해보는 방식으로 진행한다.
하지만 내 A교수님은 달랐다.
기본 설명은 쉬지 않고 최소 두 시간, 그 사이에 어떠한 노트를 적는 것도 허락하지 않았다. 이유는 ‘적는 동안은 자기가 한 말을 못 들을 테니까’였다.
문제는 그 두 시간 동안의 설명을 모두 완벽하게 외워서 내가 혼자 해야 했다는 것이다.
그 와중에 교수님은 항상 말씀하셨다.
“넌 나 같은 교수가 있는 거에 감사해야 해. 방치하고 안 알려주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는데?”
가스라이팅의 시작이었다.
실험 중 조금이라도 헤매거나 헷갈려 질문하면 한숨을 먼저 쉬고 그 눈에는 온갖 멸시와 혐오감이 가득했다.
처음에는 내가 잘못 따라가고 헤맨다고 생각해서 열심히 하려 몇 배는 노력했다. 그래도 돌아오는 건 실망감뿐이었다.
하루는 내 옆에 서서 내가 하는 걸 보고 계셨고 긴장했던 나는 작은 실수를 하게 되었다. 지금 생각하면 실수라고 하기도 애매할 정도의, 정말 펜을 바닥에 떨어트린 정도의 사건이었다.
하지만 그 순간 A교수님은 잡고 있던 실험기구를 책상에 던지며 소리를 질렀다.
“도대체 지금 뭘 하는 거야!!”
빈 실험실에 A교수님과 나만 있는 이 상황에서 머리가 새하얘지기 시작했다. 지금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거지?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다 자신의 화를 못 이기던 A교수님은 문을 쾅 박차고 밖으로 나갔다.
난 황당한 상태로 실험실에 서서 생각했다.
내가 정말 문제인 건가? 난 왜 이렇지? 이제 남은 일 년간 어떻게 하지?
자기혐오와 의심으로 가득했던 그때의 나.
하지만 그 생각을 바꾸게 된 사건이 금방 생기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