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솔아 Aug 17. 2024

변화하는 나, 고정된 나

정체성에 대한 성찰

지루한 주말, 언젠가 집 근처의 서점으로 발걸음을 옮긴다. 특유의 종이책 냄새를 맡으며 들어가면, 가장 먼저 베스트셀러 섹션으로 향한다. 최근 몇 년간 느낀 점이 있다면, ‘어떻게 지금의 내가 되었는가’를 주제로 한 책들이 많아졌다는 것이다. 정체성에 대한 관심이 커지면서,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정체성에 대해 더 알고 싶어 하고 정의를 내리려 한다. 그렇다면, 나의 정체성은 무엇일까?


몇 년 전, 나는 나의 정체성에 대해 깊이 고민한 적이 있다. 나는 삶의 반 이상을 가정폭력 속에서 자라왔고, 비교적 최근에야 그 환경에서 벗어났다. 강압과 폭력에서 벗어나 처음으로 자유를 느꼈을 때, 오히려 자유감보다는 두려움을 느꼈다. 나는 누구이며 어떻게 살아가야 할까? 내가 매우 싫어했던 가해자들에 의해 나의 가치관 대부분이 영향을 받았다는 사실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그때 나는 나의 ‘가치관’이 변화하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에 좌절하고 자기혐오에 시달렸다. 그러나 좌절 속에 갇히지 않고, 가능한 많은 경험을 하며 읽고 세상의 변화를 느끼려 했다. 시간이 지나면서 나의 생각은 정리되기 시작했다.


우리의 정체성은 시간이 지남에 따라 계속 변화하며 유동적이다. 뿐만 아니라, 회사에서, 친구들 사이에서, 가족 속에서 나의 가치관도 계속 달라졌다. 그러나 이렇든 저렇든 결국 나는 나이다. 시간이 조금 지나고 나의 과거를 알게 된 주변 사람들이 내가 많이 변했다고 놀라기도 했다. 그러던 어느 날, 나의 일을 아는 오래된 지인을 오랜만에 만났다. 일상을 나누고 고민을 이야기하자, 그 지인은 “네가 이런 일을 겪어서 그런 거 아닐까?”라고 섣불리 결론을 내리고 나를 틀에 가두는 모습을 보았다. 그때 나는 이런 생각이 들었다: 정체성은 내가 누군지 알아가는 데 쓰이기도 하지만, 결국 다른 사람들이 나를 누군지 정의할 때에도 사용된다는 것이다.


나의 정체성은 매 순간 변화한다. 지금 이 순간 내가 무엇을 좋아하고, 어디서 행복감을 느끼며, 무엇이 싫은지를 알아가는 것은 중요하다. 그러나 ‘나는 이런 사람이다’라고 정의를 내리는 것은, 계속 변화하는 삶 속에서 새로운 기회를 가지로 변화할 수 있는 나 자신에게 한계를 주고 멈추게 만드는 것은 아닐까? 만약 내가 그 지인의 말을 듣고 ‘나는 가정폭력 피해자다’라고 정의하고 자기 연민 속에서 살아왔다면, 현재의 삶에 다가온 여러 기회와 사람들을 받아들이지 못했을 수도 있다. 앞으로의 나는 지금과 전혀 다른 경험을 하고 완전히 다른 사람처럼 변화할 수도 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그런 나도 결국 나라는 것이며, 과거의 나도, 현재의 나도, 미래의 나도 사랑하고 행복할 것이라고 믿는다.

작가의 이전글 내가 열심히 사는 이유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