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경력 1090일째
밤마다 나는 이서에게 이야기를 하나씩 해준다. 자기 직전까지 침대에서 방방 뛰다가 숨이 턱까지 차고 흥분해서 잠들지 못하는 이서를 진정시키기 위해 시작한 방법이다. 처음에는 두 돌이 되기 전에 '토끼와 거북이'로 시작했다. 매일밤 다양한 이야기를 들려주려 했는데 이서는 이 이야기를 계속해달라고 했다. 이서는 '거북이 토끼 해줘'라고 말하곤 했다. 반복하다 보니 나중에는 나도 이 이야기의 흐름과 포인트, 교훈이 머릿속에 완벽하게 정리돼서 거의 랩 하듯이 말해줄 수 있게 됐다. 그 후에는 성경에 나오는 노아나 모세, 다윗 이야기도 해주고 날마다 이서가 한 가지 주인공을 말하면 아무 이야기나 지어서 들려주곤 한다. 이야기 창작을 전공한 나의 능력을 십분(?) 발휘한다. '아보카도 이야기'는 아보카도가 이서에게 놀러 오고 싶은데 길을 몰라 이서 집에 자주 놀러 간다는 이 동물, 저 동물에게 이서 집을 물어보며 찾아오는 이야기다. '바이올린 이야기'는 이서가 반품으로 돌려보낸 바이올린이 캐나다의 자신을 만들어준 할아버지 집으로 돌아가는 이야기와 새로운 바이올린이 모험을 떠나 이서에게 오는 이야기다.
어제는 새로운 바이올린 이야기를 들려줬다. 온통 나무색 바이올린뿐인데 보라색 바이올린이 나타났다(처음엔 핑크색이라고 했는데 이서가 보라색으로 해달라고 했다). 나무색 바이올린들은 새로운 아이와 놀아주지 않았다. 이상해, 넌 왜 우리랑 달라? 보라색 바이올린은 친구가 없어 슬펐는데 연두색 바이올린(이것도 이서가 직접 색을 골랐다)이 나타난다. 넌 정말 멋지구나! 보라색이라니! 보라색 바이올린은 자신이 멋지다는 말에 놀란다. 그리고 각자는 모두 다르기에 멋지다는 걸 알게 된다. 그리고 둘은 소중한 친구가 된다.
이 이야기를 듣고 이서는 심각한 얼굴로 왜 다 멋진데 같이 안 논다고 한 거냐고 물었다. 그래서 사람들은 자기와 조금 다르면 쉽게 불편해진다는 걸 최대한 쉽게 설명해 줬다. 하지만 세상에 똑같은 사람은 하나도 없고 다 다르기 때문에 멋진 거라고. 이서는 이서라서, 이한이는 이한이라서, 아빠는 아빠라서, 엄마는 엄마라서 멋진 거라고 했다. 그러자 이서는 활짝 웃었다. 이서는 이서라 멋지지! 이한이는 이한이라 멋져. 엄마도 아빠도 멋져. 그러니 이서야, 조금 다르거나 불편한 친구가 있을 때 쉽게 미워하고 밀어내지 말고 천천히 시간을 두고 그 사람을 들여다봐. 그러면 사랑할 구석이 있을 거야. 그 사람은 그 사람이라서 멋질 거야. 친구들과 어울려서 세상을 더 힘 있고 쉽게 살아가길. 언제나 엄마가 기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