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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영지 Nov 29. 2023

무려 230달러

엄마 경력 1091일째


한동안 이서가 바이올린에 푹 빠졌다. 교회에 바이올린을 박사 과정까지 졸업한 사모님이 있는데 그분이 연주하는 것을 몇 번 보고는 바이올린에 푹 빠져버렸다. 집에서 막대기 두 개를 들고 바이올린이라며 두 눈을 감고 진지한 얼굴로 고개를 살짝 꺾은 채 심취해서는 연주를 하곤 했다. 그래서 이서의 첫 번째 칭찬 스티커 한 판을 완성하면 바이올린 장난감을 사주기로 했다. 아마존에서 찾아보니 20불 안팎으로 살 수 있었다. 그러다가 남편이 그 장난감 후기가 안 좋다며 차라리 저렴한 진짜 바이올린을 사주자고 했다. 선물이 60불로 올랐다. 두 돌 반이 지난 이서. 바이올린 크기는 1/8이었다.


캐나다에서 배송된 바이올린은 꽤 오래 걸려 도착했다. 이서가 좋아하는 핑크색이었다. 이서는 사랑에 빠져 하루 종일 눈을 감고 바이올린을 연주했고 교회에도 들고 다녔다. 나는 바이올린에 어울리게 아이보리 색 정장을 입혀줬다. 하지만 이 바이올린은 소리가 제대로 나지 않았다. 줄도 활도 약하고 무엇보다 음을 맞출 때 작은 돌기 펙을 감아도 줄이 감기지 않았다. 결국 반품을 결정했다. 인터넷으로 사는 건 아무래도 무리가 있어 악기점을 가보자 하고는 남편 학기 내 정신없이 지내며 마치길 기다리다가 한 달이 지났다. 드디어 마지막 시험을 마치고 땡스기빙을 맞이했다. 그다음 블랙 프라이 데이 내내 집에서 지내다가 오후에 아이들을 데리고 악기점을 다녔다. 구글에는 모두 가게를 열었다고 나왔는데 막상 가보면 다 닫혀 있었다. 한 달을 끈기 있기 기다린 이서도 실망이 대단했다. 결국 그다음 날 남편이 이서를 데리고 악기점에 가서 새로운 바이올린을 데려왔다. 무려.. 230불이었다.


악기는 아주 예뻤다. 악기점에서 이서 몸에 맞는 악기를 줬는데 이전 것보다 작은 1/16 크기였다. 내 손 한 뼘 만하고 내 얼굴 만한 작은 악기였다. 이서가 작은 몸으로 반짝이는 나무색 바이올린을 들고 활을 움직이는데 제법 바이올린 같은 소리가 났다. 이서는 눈을 감고 다리도 자연스럽게 굽혔다 펴며 연주하는 척했는데 다리를 움직이는 걸 어떻게 알았냐니 교회의 바이올린 이모를 보고 알았다고 했다. 밤마다 바이올린 이야기를 해달래서 바이올린이 멀리 캐나다에서 이서에게 찾아오는 이야기를 종종 해줬다. 그때마다 이서는 눈을 반짝이며 '다섯 밤 자면 바이올린이 똑똑하는 거야?'라고 묻곤 했다. 다행히 오늘도 내일도 이서의 기준은 다섯 밤이어서 한 달을 무사히 지났다.


그날 밤 침대에 누워 남편에게 말했다. '230불이라니.. 자기 나 이 반지 2.5불이야(둘째 출산 후 손가락이 굵어져 결혼반지를 빼고 저렴한 티타늄 반지를 대신 꼈다)' 그러자 남편도 '시계가 세일해도 백 불이라 못 샀는데(한 학기 내내 검색만 해보고 사지 못 했다)'라며 우리는 장난스레 미간을 짚고 절레절레 고개를 저었다. '이서가 알까? 엄마 아빠가 돈 없어도 자기는 좋은 거 해주는 거.' '모르겠지.' 몰라도 상관없다. 이서는 음악을 좋아한다. 아빠의 기타에 관심을 가졌고 엄마의 피아노를 혼자 치며 노래를 부르곤 했다. 언제나 춤추고 노래하며 넘치는 흥을 그대로 발산하는데 두 돌이 지나 이서가 가장 흥미를 가진 건 바이올린이었다. 몇 달이나 꺼지지 않는 열정으로 기다렸다. 그런 이서가 제대로 된 바이올린을 만져보고 심지어 배워보고 싶다고 말하니 그런 경험으로도 멋지다. 다만 엄마 아빠는 또 허리띠를 졸라매야겠지만.. 그리고 약속했다. 이서는 꽤 조심스러운 편이지만 그래도 아기라 바이올린을 여기저기 부딪히고 아무 곳에나 둔다. 그리고 우리에겐 진격의 이한이가 있다. 조만간 230불짜리 바이올린이 부서지더라도 이서나 이한이에게 화내지 않기로 약속했다. 악기가 깨지기 전에 레슨을 받을 만한 선생님을 찾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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