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경력 1103일
새벽 한 시 반. 이한이가 자지 않는다. 깊이 잠드는 것 같지 않아 불안했는데 열한 시 반쯤 누나 우는 소리에 깨서는 두 시간을 울다 웃다 옹알이를 반복했다. 남편이 나를 쉬게 하려고 이한이 침대에 누워있었는데 점점 크게 울고 남편은 하염없이 쪽쪽이만 물리고 있어서 결국 내가 일어났다. 이럴 때는 가로로 품에 길게 안고 둥가둥가 흔들면 눈을 살살 감는다. 어두워서 눈을 감았는지는 보이지 않고 내 몸을 주무르던 손이 쓱 풀리기에 좀 더 안고 있다 눕혔다. 옆에 누워서 기다리는데 조금 지나니 다시 낑낑대며 고개를 든다. 이러다 이서도 깰 것 같아 결국 안고 거실로 나왔다. 불은 켜지 않고 창으로 들어오는 빛에 아이를 바닥에 내려놨다. 움직이지도 않고 그대로 앉아 잠시 주변을 둘려본다. 이한아, 안 잘 거야? 하고 물으니 씩 웃으며 내 다리에 매달린다. 안아달라고 손을 뻗는다. 엄맘맘마 엄마를 부르는 소리다. 아이를 배에 얹고 가슴에 머리를 대주고 소파에 앉아있으니 조금 지나 숨소리가 쌕쌕거리며 바뀐다. 잠이 들었다.
이한이는 60일쯤부터 졸릴 시간에 침대에 눕히면 혼자 뒹굴다 잠이 들었다. 꼼짝없이 혼자 아이 둘을 돌봐야 하는 엄마 처지를 이해하기라도 한 건지. 4개월부터는 밤수유도 없이 쪽쪽이로 잠 연장을 했고 5개월이 지나면서는 아침까지 통잠을 자는 날이 많아졌다. 하지만 이런 이한이도 원더윅스는 지겹게 지난다. 몇 주 잘 자면 한 주나 열흘 정도 밤새 깨고 비명 지르듯 우는 날이 이어진다. 퀭하고 잠 못 자는 생활에 익숙해질 때쯤 다시 통잠을 잔다. 지금이 바로 그 잠 못 자고 퀭한 시기다. 거기다 어제부터 이서가 기침도 하고 열이 좀 나서 새벽 내 잠을 잘 못 잤다. 나는 이서 침대에서, 남편은 이한이 침대에서 각자 아이들을 다시 재우며 쪽잠을 잤다. 이런 주간에 가끔 밤잠을 자다 깨서 안 자거나 아예 늦게 잠드는 경우가 있다. 오랜만에 그런 날이 온 거다.
이서를 키울 때는 이런 날이 꽤 많았다. 8개월쯤에는 거의 매일 밤마다 삼십 분에서 한 시간을 아이를 안고 서 있었다. 아이는 젖을 물어야 자겠다고 버티고 나는 젖을 물리지 않으려고 버티는 거다. 남편은 다음날 일이나 학교를 가야 하니 잠을 깨우지 않으려고 아이가 울지 않게 서서 안고 달랬다. 이서는 첫 일 년간 크게 아픈 적이 없었지만 접종하고 온 뒤나 가끔 미열이 나곤 했다. 그러면 새벽에 잠을 못 잤다. 체온계와 물병을 머리맡에 두고 이서 옆에서 자다가 애가 깨서 울면 얼른 체온을 재보고 열이 나면 화장실에 라디에이터를 옮겨 공기를 데우고 아이를 벗기고 미지근한 물로 계속 몸을 닦아줬다. 아프면 엄마 품에 안겨 잉 울다가 조금 괜찮아지면 자기도 거즈 수건을 하나 들고 엄마 다리를 닦았다. 그러다 열이 내리면 다시 방으로 가서 자고 또 열이 오르면 다시 화장실로 가길 반복했다.
이서가 두 돌이 됐을 때 내 동생과 막내 시동생이 미국에 여행을 왔다. 둘 다 졸업반이었고 마지막 방학이었다. 이제 취업하면 몇 주씩이나 미국에 올 일을 없을 테니 최대한 많은 곳을 다니려고 엄청 빠듯한 일정을 다녔다. 삼 주간 8개 주를 밟았다. 차와 비행기에서 보낸 시간이 엄청났다. 나는 만삭에 가까워진 8개월 임산부였다. 그렇게 다니다가 이서가 탈이 났다. 어른들 쫓아다니며 튀김도 많이 먹고 피곤해서 배탈이 났고 밤새 토했다. 마지막 시카고 여행을 앞둔 날이었다. 나는 밤새 이서 옆에서 이서가 욱 소리를 내면 바로 아이를 뒤집어 토가 기도로 넘어가지 않도록 했다. 아침에는 이불을 빨았다. 여행지에서도 이서는 배도 고프고 아파서 밤새 깨서 끙끙 울었고 모두가 잠을 못 잘 까봐 나는 이서를 호텔 거실로 데리고 나와 소파에 아이와 만삭 임산부가 누워 잠을 잤다. 아이는 아플 때면 엄마가 전부다. 이서는 그 좁은 소파에서도 엄마와 붙어 있으니 잘 잤다. 그런 나를 보며 동생은 '엄마라 할 수 있는 일이다'라고 말하곤 했다.
맞다. 엄마라서 할 수 있는 일이다. 아이 때문에 밤새 못 자고는 다음날 아침 아이들이 눈 뜨면 같이 일어나 하루를 시작하는 건 엄마라서 할 수 있는 일이다. 피곤해서 귀가 울리는데 이서는 렛잇고를 백 번 부르고 아침부터 끝없이 말하며 춤을 춘다. 이한이는 아침마다 끙아를 넘치게 싸서 늘 손빨래감을 주고 이제 많이 컸다고 누나와 장난감을 두고 경쟁하고 소리를 지른다. 매일 작고 사소하고 보상 없는 노동이 계속되는데 이 모든 걸 아무런 영광 없이 해내는 것도 엄마라서 할 수 있는 일이다. 지금 글을 쓰는 동안 이한이는 내 다리에 다리를 얹고 소파에 누워있다. 새벽 두 시가 넘은 시각. 내일도 이서는 일곱 시 반이면 하루를 시작한다. 일어나서 이서는 원하는 메뉴를 만들어주고 이한이는 오트밀 죽을 만들어 먹이고 분유도 먹이고 끙아 치우고 이한이 첫 낮잠 동안 이서와 놀아주고 나면 나는 먹을 새도 없이 점심 준비할 시간이다. 아마 이한이가 분유를 끊고 혼자서 숟가락질하며 밥을 먹기 전까지는 이렇게 바쁠 거다. 아이들이 눈 떠서 잠들 때까지 내 생활은 없다. 아무런 보상도 영광도 없는 나의 하루. 피로와 스트레스가 쌓이는 나의 하루. 그래도 이걸 해내는 건 엄마라서 가능하다. 그렇게 바쁘고 힘들다가 이서가 와서 엄마 사랑해하며 갑자기 안아주거나 힘내! 파이팅! 하며 앞에서 이상한 춤을 보여줄 때 갑자기 마음이 녹는다. 이한이가 엄맘마마 하며 기어 와서는 무릎 꿇고 나를 올려다보며 안아달라고 두 팔을 벌리고 들썩일 때면 웃음이 난다. 다치지도 않았는데 밴드를 붙여달라고 한껏 아픈 척을 하는 이서나 바닥에 앉아 서서 일하는 엄마를 올려다보다가 균형을 잃고 뒤로 넘어지는 이한이나. 그 모든 걸 부부가 함께 지켜볼 수 있는 건 유학생이기에 가능한 일이기도 하다. 언제나 지금에 감사하는 것을 잊으면 불평과 긴장이 쌓이고 가족은 불행해진다. 그래서 사소한 불만이 쌓일 때 얼른 마음을 고쳐먹는다. 내가 지금 하는 일이 나의 일이다. 엄마라서 나라서 할 수 있는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