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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영지 Jan 05. 2024

인생 첫 생일파티

엄마 경력 1096일 째(23.12.04.)



미국에서 우리 부부 단 둘이 지내느라 첫 째 이서는 돌잔치를 따로 하지 않았다. 텍사스에 사는 먼 친척 이모 댁에 내 외할아버지가 오셔서 놀러갔을 때 케익과 풍선으로 꾸며주셔서 우리끼리 축하했고 여기에서 친해진 분들의 도움으로 이서가 드레스와 한복을 입은 모습을 사진으로 남겼다. 두 돌에는 이서가 두 번이나 독감에 걸려 아프느라 생일이 지나서야 세 가족이 초를 불고 케익을 나눠 먹었다. 세 돌을 바라보는 2023년, 이서는 언니들의 생일 파티에 두 번 다녀왔고 자기 생일을 기대하기 시작했다. 여름부터 생일이 언제냐고 물어서 나뭇잎이 노란색, 빨간색이 되면 가을이 되고 나뭇잎이 떨어져 나뭇가지만 남고 추워지면 겨울이 된다고 알려줬다. 겨울이 되면 이서 생일이 된다고. 덕분에 이서는 계절도 배우고 나뭇잎이 변하고 떨어질 때마다 생일이 다가온다고 기대했다.


드디어 11월이 되어 이서의 생일을 코앞에 뒀다. 남편과 나는 이서 또래 친구들을 초대해 생일 파티를 열기로 결정했다. 음식은 남편이 준비하고 나머지 꾸미고 놀 것을 꾸리는 건 내 몫이었다. 나는 이서의 생일 주제를 '공주 파티'로 정했다. 디즈니 공주들이 그려진 일회용 접시와 컵, 분홍색 커트러리, 왕관 만들기 세트를 샀다. 주변에서 먼저 공주 파티를 했던 분들께 빌려서 배너와 커다란 공주 스티커 등을 준비했다. 이서는 작년에 사둔 드레스가 너무 커서 네 살 생일파티까지도 입을 수 있을 것 같은데 그것도 미리 입혀주고 기대감을 심어줬다. 이서 생일 일주일 전, 빌려온 공주 스티커들을 집에 붙여두고 이서 생일 예고전을 시작했다. 이서는 한 밤 한 밤 지날 때마다 점점 기대했다.


생일날 아침, 비가 추적추적 내리는데 남편은 엄마들과 친구들에게 대접할 돈가스를 튀기고 나는 한국에서 가져온 웨딩 촬영때 입었던 원피스를(!) 입었다. 비가 내리는데 우산을 쓰고 몇 번이나 짐을 옮기고 붙이며 생일 파티 장소를 꾸몄다. 조금 일찍 도착한 엄마들의 도움으로 무사히 꾸미고 상도 차렸다. 시간이 되어 이서를 데려왔는데 이서와 2-3세 친구들이 드레스를 입고 모이니 너무 귀여웠다. 이서가 행복해하니 비 맞으며 준비한 고생이 생각나지 않았다. 다만 우리 친구들이 모이니 정말 시끄러워서 대단히 정신 없었다. 친구들과 사진도 찍고 왕관도 만들고 상어 가족이랑 렛잇고는 백 번 들었고 간식을 너무 많이 먹어서 다들 밥을 잘 안 먹었지만 자기들끼리 싸우지도 않고 잘 놀아서 엄마들도 좋았다.


무엇보다 이서가 정말 좋아해서 다행이다. 이서를 키우며 주변에 또래 아이를 키우는 엄마가 없어서 참 외로웠다. 또래가 있었는데 그 집의 셋째라 형누나들 일정을 따라야 해서 함께 만나기가 어려웠다. 이서를 처음 키우는 일 년 간 이서 또래, 또 내 또래의 엄마들을 만날 수 있길 기도했고 남편 주변에 우리보다 먼저 아이를 키우며 부부간의 갈등을 이겨낸 선배 부부를 만나게 해주시길 기도했다. 이서를 키운 삼 년 간 기도가 다 이뤄졌다. 이서는 친구가 많아졌고 나도 함께 고민을 나눌 육아 동지들이 생겼다. 우리 주변에 먼저 아이를 키우고 우리에게 조언해줄 좋은 선배 부부들도 생겼다. 그간 여기서 이서에게 가족이란 우리 둘 뿐이고 가족의 사랑을 느낄 곳도 우리 뿐이라 이서에게 늘 열심을 다 했는데 이렇게 건강하고 곱게 자라 엄마 아빠에게 사랑을 주니 참 고맙다. 우리 이서를 우리 가정에 보내주셔서 감사합니다. 이서야 엄마 아빠에게 와줘서 고마워. 이서는 첫 번째 아가라 특별한 아가야. 엄마 아빠가 처음이라 서툴러서 더 최선을 다했고 행복할 때도 절망할 때도 이서를 사랑해서 용기낸 걸 언젠가 알아주길. 기다리던 세 살이 된 걸 축하해. 고마워 이서야 사랑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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