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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영지 Jan 17. 2024

육아 스트레스 해소는 야식에 있지 않다

엄마 경력 1139일째



이서를 낳고 심각하게 나빠졌던 기억력이 이한이를 낳은 뒤에는 거의 없어지다시피 했다. 그렇다. 나는 기억력이 없다! 냉장고 문을 열고 뭘 꺼내려했는지 잊고 아이들을 챙겨 차에 태울 때면 빠뜨린 물건이 생각나 몇 번이나 현관문을 드나들었다. 청소기를 돌리다 잠시 멈추면 까먹고 갑자기 설거지를 시작했고 아이들 뒤치다꺼리를 하다 보면 내가 화장실에 가고 싶다는 것도 잊었다. 심지어 바닥에 앉아있다 벌떡 일어났는데 왜 일어났는지를 기억하지 못했다. 남편은 이런 나를 한심해하기도 하고 불쌍해하기도 하고 불편해하기도 했다. 하지만 제일 불편한 사람은 바로 나였다. 몇 번이나 같은 행동을 반복하며 몸이 고생하는 것도 나였다.


어느 날 아이들을 재우느라 방문 앞에 앉아있는데(이한이는 혼자 잠들고 이서는 엄마가 방문 앞에서 잠들 때까지 기다려주길 원한다) 평소처럼 유튜브 목록을 슥슥 내리다가 '돌돌콩'님의 영상을 발견했다. 책 '도둑맞은 집중력'의 저자 요한 하리와의 화상 인터뷰였다. ('스마트폰 중독&집중력 저하 방치하면 결국 이렇게 됩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1K0XXfMcTuQ) 여기에서 작가는 뇌는 본래 멀티태스킹을 할 수 없다고 말한다. 모든 인간의 뇌는 동시에 한두 가지 주제에만 집중할 수 있다. 그러니 한 사람이 동시에 여러 일을 처리하려고 하면 하려는 모든 일을 훨씬 덜 능숙하게 처리하게 된다. 그리고 단기적으로 기억도 집중력도 함께 저하된다. 여기서 말하는 멀티태스킹이 어느 수준의 일이냐면 주어진 업무를 하면서 전화나 이메일, 문자 등의 추가 업무를 받는 것을 말한다. 모든 사람이 살아가는 환경이기도 하다.  그리고 모든 엄마들이 살아가는 환경이다. 육아와 집안일을 병행하면 하루 중 거의 모든 시간을 동시 다발적으로 해결하게 된다. 집안일을 하다가 아이가 울면 곧바로 새로운 일을 처리한다. 특히 아이가 둘인 지금 나는 끝없이 이어지는 이서의 말에 대답하고 놀아주며 이한이를 돌보고 먹이고 집안일을 한다. 아이들이 잠든 뒤에도 깊은 잠에 들 때까지 여러 번 깨기 때문에 늘 보초 서며 밤새 아이들을 다시 재운다. 그러기 엄마는 잠이 부족한 데다 단기 기억을 망가뜨리는 멀티태스킹을 온종일 계속하는 셈이다.


그리고 며칠 뒤 유튜브는 또 나에게 바보같이 돌돌콩님의 다른 영상을 추천했는데 책 '도파미네이션'의 저자 애나 렘키와의 화상 인터뷰였다. ('당신은 스스로의 뇌를 망치고 있습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2y9xt4FIl7o) 여기에서 저자는 즉각적인 쾌락(도파민)에 중독되면 우리는 크고 진정한 기쁨을 느끼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저 감정의 균형을 맞추고 정상적인 감정을 느끼기 위해 자극을 찾게 된다. 그래서 모든 종류의 '행동 중독'(식탐, 게임 중독, 웹툰 중독, 의지로 멈추기 어려운 수준의 모든 행동들)은 최종적으로 뇌를 망가뜨린다. 중독에 빠진 행동은 엄청난 양의 도파민을 만들고 시간이 지나며 그 행동을 더욱 강화시켜 결국 뇌를 잠식, 손상시킨다. 도파민 분비량이 많아지면 뇌는 그것을 낮추려 쾌락을 느낄 수 있는 정도를 높이고 결국 그보다 낮은 수준의 자극으로는 도파민 분비가 되지 않고 즐거움을 느끼지 못하게 된다. 이 상태는 우울증과 비슷하다. 그러니 모든 쾌락에는 우리가 치러야 하는 대가가 있는 것이다. 수많은 sns와 영상 콘텐츠가 넘쳐나는 세상에서 우리는 시간이나 장소를 기다릴 필요 없이 원하는 즐거움을 누릴 수 있다. 하지만 즉각적인 쾌락을 즐기면 즐길수록 고통에 대한 역치도 낮아진다. 쉽게 스트레스를 느끼고 쉬운 방법으로 그것을 해결하는 악순환의 고리가 시작된다. 이것을 끊으려면 노력이 필요한 즐거움을 얻어야 한다. 운동이나 공부, 단계적으로 배워야 하는 새로운 취미 등 장기적 보상이 있는 새로운 습관을 가져야 한다.


두 가지 영상을 본 뒤 나는 몇 가지 행동을 바꿨다. 먼저, 이서가 잠들기를 기다리며 방문 앞에서 기다리는 동안 책을 읽었다. 이전에는 방을 어둡게 하기 위해 불을 끈 복도에서 할 일이 없어 하릴없이 넷플릭스나 유튜브를 보곤 했는데 이후에는 북 라이트를 끼고 나에게 도움이 될 책을 읽었다. 이렇게 집중해서 책을 읽으면 영상을 볼 때보다 오히려 뇌가 쉬는 느낌이 들었다.


그리고 운동을 시작했다. 나는 운동을 즐기는 편이 아니라 아이들을 재운 뒤 금쪽같은 시간에 하려면 지속 가능한 것이 중요해서 일주일에 세 번 정도 20분 내의 짧은 홈트를 했다. 특히 효과를 본 것이 '뱃살 엔딩 https://www.youtube.com/watch?v=IZ3SwMvkXI0'이었다. 15분 내외의 운동을 50일간 단계적으로 하는데 짧은 시간에도 운동량이 꽤 되고 하고 나면 확실히 스트레스가 풀렸다. 그리고 이한이처럼 무거운 아기를 키울 때는 엄마의 체력이 많이 들어서 자고 일어나면 등이며 허리에 알이 배기곤 했는데 운동하면 더 힘들 것 같지만 오히려 다음날 더 개운하고 힘이 났다.


세 번째는 내가 소중하게 생각하는 글쓰기를 계속하는 것이다. 자주는 아니지만 책을 읽고 사람들과 대화하며 정리한 생각을 여기 브런치에 이렇게 적기도 하고 개인 프로젝트로 연극 대본을 쓰려 짬짬이 자료 조사를 하고 있다. 자료 조사를 하면 할수록 새로운 아이디어를 얻고 이야기가 점점 뻗어나간다. 아직 극본을 시작하지도 못했지만 이렇게 새로운 개념과 사건을 알고 고민해 보는 것만으로도 나의 세상이 넓어지고 생각도 깊어진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집안일과 아이들을 대할 때 숨을 고르며 천천히 움직이려 노력한다. 여러가지가 동시에 쏟아질 때 기다리는 한 명에게 ‘조금만 기다려줘’라고 말하고 이서에게 종종 ‘아기는 두 명인데 엄마는 한 명이라 빨리 할 수 없다’고 설명도 한다. 모든 걸 빠르게 잘 해내려던 내 욕심을 내려놓는 연습을 하고 있다.


쉽게 얻은 행복은 쉽게 증발한다. 육아를 하며 자주 되새기는 말이다. 육아는 잘 해내려 하면 그 어떤 일보다도 많은 힘과 고민과 인내와 고통이 따른다. 그리고 이 오랜 육아 생활을 잘 견뎌내려면 내 몸과 마음과 정신을 잘 관리하는 것이 중요하다. 쉬운 즐거움이 너무 많은 세상. 어떤 프로그램을 보려 더 이상 요일과 시간을 기다리지 않아도 되는 세상이다. 하지만 일부러 기다릴 것들을 만들고 집중하고 노력하는 것이 오히려 나의 즐거움을 극대화한다는 것이 아이러니하다. 물론 나도 아이들을 재우고 남편과 야식을 먹으며 드라마를 본다. 하지만 또 다른 날에는 위에 언급한 일들을 할 시간을 낮부터 기다린다. 아이들을 키우느라 소진한 힘을 새로움으로 채워본다. 오늘이 너무 힘들었다며 침대에 드러누워 유튜브 목록을 목적도 없이 내려보던 날보다 훨씬 큰 힘이 생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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