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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영지 Aug 20. 2024

무엇이 될지 모르고 쓰는 인생

엄마 경력 1355일째



무언가를 그릴 때 그 대상이 없을 수도 있다는 걸 난 오랫동안 잊고 있었다. 우리는 모두 무언가를 하며 살아간다. 그리고 가끔 나는 무엇을 하고 있는지 궁금할 때가 있다. 우리는 왜 자꾸 무엇을 하는 걸까? 그것을 확인하기 위해 사람들은 되도록 밝은 불을 밝힌다. 그리고 내가 어디쯤 있는지, 누구 곁에 있는지 반복해서 확인한다.

그렇게 눈으로 확인한 것에는 별로 흥미로울 만한 내용이 없다. 우리는 가끔 불을 끄고 손으로 더듬는 일을 한다. 난 개요도 없이 생각나는 대로 글을 적는다. 조각가는 더듬어가며 어떤 형상을 빚는다.

(..)

크고 가벼운 물체가 텅 빈 무대 위에 담담하게 서 있었는데, 가끔 불어오는 바람에 흔들거리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우리는 더듬거리며 앞으로 나아가고 있었다.


- 한승재, 우리는 더듬거리며 무엇을 만들어가는가, 어라운드 63호



내가 꽤 오래 글을 쓰지 않은 동안 아이들은 많이 자랐다. 이서는 그 사이 두 번째 칭찬스티커 한 판을 끝냈고 상품으로 온 가족이 젤라토를 함께 먹었다. 점점 더 명확하게 자기 생각을 말하고 처음으로 종이 접기로 배를 만들었다. 제법 사람이나 동물, 자연물의 형체를 잘 그린다. 자기 키보다 높은 곳에서도 뛰어내리고 엄마가 바쁠 때 혼자서 기다리는 방법도 잘 찾아낸다. 이한이는 일상 표현들을 알아듣고 응, 아냐로 대답한다. 만 17개월 밖에 안 됐지만 두 발을 동시에 떼고 연달아 서너 번 점프를 뛴다. 점점 많은 것을 표현하고 궁금해하고 누나를 따라 춤추고 노래하며 많은 것을 배우고 있다. 아이는 말 그대로 무럭무럭 자란다.


아이들이 훌쩍 자라는 동안 과연 나는 자랐는가. 삼 년이 넘는 동안 나는 늘 갈등했다. 나는 더 많이 보고 읽고 쓰고 싶었고 그러려면 아이들이 빨리, 오래 자야 했다. 하지만 나에게 온 이 아이들은 잠이 많지 않았다. 그나마 둘째인 이한이는 엄마 없이 혼자 누워 잠이 들어 눕히면 됐지만 이서는 잠들 때까지 엄마가 곁에 있어야 하고 잠든 후에도 종종 깨서 엄마를 찾곤 한다. 깨어 있는 동안에도 계속 엄마와 함께하길 원해서 나는 아이가 깨어 있는 동안 가진 에너지를 다 쓰곤 했다. 나는 뭔가를 집중해서 해내기 어려웠고 나 자신이 정체된 것 같았다. 내 마음에 하고픈 것들이 많으면 많을수록 아이에게 자꾸 화가 났다. 한 달 전쯤, 남편은 내가 아이들과 함께 있는 시간을 일이라고 생각하기보다 그냥 아이들과 즐겁게 보낸다고 생각하면 좋겠다고 했다. 남편은 사실 일하는 시간 외에는 거의 함께 아이들을 돌봤다. 어쩔 수 없는 지금의 어려운 상황을 계속 생각하기보다 잘 헤쳐나가려 노력하는 것이 낫다는 말이었고 집안일을 조금 미루더라도 좀 더 가벼운 마음으로 아이들과 보내는 게 낫다는 말이었다. 엄마로서 인정하기 어려웠지만 나는 아이를 내가 하고 싶은 일들을 가로막는 장애물처럼 느끼고 있었다. 그 자리에서 인정할 수 없었지만 남편 말이 사실이었다.


그러다 몇 주 전 어느 날 갑자기 내가 아이들과 보내는 일상에 완전히 적응했다는 걸 깨달았다. 물론 종일 아이들과 보내는 매일이 절대 쉽지는 않다. 매 순간 아이들에게 어떤 목소리와 표정으로 어떻게 가르칠 것인지 빠르게 정해야 하고 아이들을 지루하지 않게 함께 시간을 보내면서 때마다 밥을 차리고 치우고 벌어지는 집안일들을 해내야 한다. 하지만 처음 이서가 자라나며 시간을 보낼 때처럼 하루가 두렵지는 않았다. '오늘은 뭘 하고 하루를 보내지?' 혹은 아이와 보내는 시간이 너무 길게 느껴져 힘들었는데 요즘은 그렇지 않다는 걸 알았다. 그러면서 최근에는 무언가에 흥미를 느끼지 않았다. 노력해서도 아니고 어떤 계기가 있었던 것도 아니다. 아이들이 잠들고 나서도 딱히 하고픈 것이 없어서 아이들이 잠드는 시간이 조금 늦어져도 크게 개의치 않았다. 이전에는 아무리 뒹굴거리고 하고픈 걸 해도 부족하다 느꼈다. 잠들 때까지도 제대로 쉰 것 같지 않았고 미처 준비되지 않았는데 다시 아침이 오고 하루가 시작됐지만 최근에는 그저 조용한 집에서 운동하거나 한가하게 쉬고 자면 다음날 다시 아이들이 깨어 하루를 시작해도 짜증이 나거나 힘들지 않았다. 아이들을 돌보는 동안 별다른 생각을 하지 않아서 글로 쓸 거리도 없었다.


정말 직업인으로서 양육자가 된 느낌이다. 또는 운동선수가 된 것 같기도 하다. 어떤 직업이나 그렇듯 매일의 고충은 있지만 책임감과 그동안 쌓여온 관성과 관록으로 해나가는 거다. 이전에는 이 육아 생활이 내게 주는 고난에 비해 보람과 보상이 너무 약하다고 생각했지만 요새는 그런 계산도 하지 않는다. 힘들 때는 '아이고 힘들다!' 생각하고 한숨을 한번 훅 내쉬고 다음 일로 빠르게 넘어가고 아이들과 놀며 즐거울 때는 깔깔대며 다음을 생각하지 않는다. 사실 생각해 보면 하루 종일 제대로 엉덩이 붙이고 '쉬는' 순간은 많지 않다. 앉아있는 때는 대부분 아이들 밥을 먹이며 내 밥을 마시거나 이서와 블록놀이를 할 때, 욕조에 아이들을 번갈아 들여놓고 그 옆 바닥에 앉아 씻길 때, 이한이가 가져온 책을 읽어줄 때다. 나는 대부분 서서 부엌일을 하거나 아이들과 숨바꼭질을 하거나 요새는 차를 남편이 써야 해서 유모차를 밀고 집을 나선다. 물리적으로 몸에 무리도 많이 되고 아이 둘의 요구를 때마다 지혜롭게 헤쳐나가는 것이 정신적으로도 쉽지 않지만 그럼에도 점점 나름의 방법이 생긴다.


무엇보다 두 아이를 키우며 나는 아이를 키우는 일이 앞으로 무엇이 될지 모르는 인생 그 자체임을 받아들이고 있다. 불쑥 드는 불안감을 어쩔 수 없지만 받아들이려 노력한다. 나는 아이들이 어떤 소년으로, 청소년으로, 어른으로 자라날지 그때가 오기 전까지 절대 알 수 없다. 그리고 아이들을 기르는 데는 많은 품이 들어 누군가의 시간과 노력과 희생이 반드시 필요하다. 그리고 지금의 상황에서는 대체로 그것은 나의 것이다. 나는 오래 살게 된다면 반드시 생산적인 노인이 되고 싶지만 지금으로서는 내가 무엇을 할 수 있을지 전혀 알 수 없다. 엄마로서 경력이 쌓일수록 나는 내가 이 아이들을 떠나서는 어떤 사람이 될 수 있을지 모르겠기 때문이다. 하지만 엄마로서 나는 처음보다 점점 나아지고 행복해진다. 아이들도 행복한 엄마를 보는 매일이 이전의 날들보다 나을 거라 자신한다. 내 삶은 흥미로울 것이 없어 보이고 모든 일은 반복되는 것 같다. 하지만 매일 아이들은 달라지고 나는 그 최전선에 서있다. 자녀는 그들이 가진 것으로 최선을 다해 부모에게 사랑을 표현한다. 아이들은 나를 넓히고 좁히고 깊게도 얕게도 만들고 허공에 붕 띄웠다가 지하에 파묻고 앞으로 달려가게 했다가 뒷걸음질 치게 한다. 그러니 우리는 어디로 가는지 몰라도 매일 다른 사람이 되고 있다. 예민하고 이기적이었던 나는 이전의 복잡했던 마음을 후회하지도 않고 오늘 했던 실수를 크게 돌아보지 않는다. 이 삶을 반복할수록 한국어 실력은 점점 퇴화하고 문장은 투박해지지만 내 안은 더욱 고요해진다. 내일은 조금 더 친절하자, 내일은 조금 더 천천히 반응하고 움직이자 마음먹으며 눈 질끈 감고 팔다리에 힘을 풀면 잠이 스르르 온다. 그리고 새로운 아침이 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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