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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영지 Oct 06. 2024

이서야, 엄마보다 낫다

엄마 경력 1402일째

    


이서가 학교에 다닌 지 한 달이 지났다. 열흘 전에 학교에서 가을 사진을 찍는다기에 전날 이서랑 서랍을 열고 입을 옷을 정했다. 옷을 골라 꺼내두고 잠자리에 누워 내일 있을 일을 상상하며 설명해 준다. '선생님 따라가면 파란 배경을 뒤에 두고 앉아서 찍을 건데 사진 찍을 때 어떤 표정을 지으면 좋을까?' 하면 이서는 입꼬리를 쭉 올리고 웃는다. 눈은 웃음기 없이 동그랗게 뜨고 입꼬리만 올린 얼굴이 너무 웃기고 귀여워서 웃음이 나는데 이서는 왜 웃느냐고 한다. '귀여워서'라고 답하면 새초롬한 얼굴로 '그래?'라고 되묻는다.


이서는 학교에서 종종 울고 첫 2주 간은 학교에서 보내주는 사진에 늘 슬픈 얼굴이었다. 이서 교실에 아시안은 이서 하나뿐이고 영어를 못 하는 아이도 이서뿐이라 원래는 안 되지만 이서만 애착 물품을 교실에도 가져갈 수 있게 해 줬다. 첫날 이서는 많이 울었고 차에 태우고 아이스박스에 넣어온 아이스크림을 먹으며 겨우 진정했다. 아직 친구들 이름이 어려워서 외우지 못했고 이서는 영어를 못 배웠는데 학교에 너무 일찍 간 것 같다고 울음 남은 목소리로 헐떡이며 말했다. 그 좋아하는 놀이터에서도 우느라 선생님 옆에 앉아 있었고 노래 시간에도, 청소 시간에도 손으로 눈을 이렇게 가리고 조금 울었단다. 도시락도 하나도 안 먹은 채로 와서 집에서 긴장이 풀리고서야 밥을 먹었다. 이서를 재우고 가방을 열어보니 컬러링 페이지에 색칠을 하지도 못한 걸 보고 나도 조금 울었다. 나는 이서가 또 울며 기다릴까 봐 날마다 이한이를 안고 일등으로 뛰어들어가 이서를 제일 먼저 데리고 나왔다. 이서 학교가 마칠 시간이 되면 남편도 궁금해 일하다 말고 전화해 이서 목소리를 확인했다. 하지만 이서는 내일은 학교에 가야 하니 어서 자자고 하면 얼른 잠자리에 눕고 아침이면 부지런히 씻고 옷을 갈아입고 아침을 평소보다 많이 먹는다. 그리고 얼른 신발을 골라 신고 아빠와 손 잡고 나가 얼른 차에 올라탄다.


아침에 우는 적이 없던 이서가 곱게 차려입은 그날은 차에 타자마자 나를 보며 울었다. 소리 내 우는 것도 아니고 눈물만 뚝뚝 훌리며 입꼬리를 앙 물고 설움을 참았다. 작은 아이가 울음을 참으려는 걸 보니 나도 속상해 눈물이 날 것 같았는데 꾹 참았다. 이서야, 조금 울어도 괜찮아, 하니 이서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도 씩씩하게 잘 다녀와, 하니 또 고개를 끄덕였다. 엄마가 또 일등으로 데리러 갈게, 하니 또 입을 꾹 물고 고개를 끄덕였다. 이한이는 내 팔에 안겨서 누나에게 한쪽 팔을 머리 위로 올려 하트를 그렸다. 차가 보이지 않을 때까지 손을 흔들고 집에 돌아와 남편에게 이서를 잘 달래서 보내달라고 카톡을 보냈다.


그다음 주에는 등교해서 삼십 분 동안 엄마와 함께 머핀을 먹는 날이 있었다. 같은 반 아이들과 엄마들이 테이블에 모여 머핀을 먹으면서 서로 얼굴도 익히고 대화할 수 있는 시간이다. 전날 공지에는 아이들이 엄마와 헤어질 때 울 수 있지만 얼른 교실에 들여보내고 떠나라고 선생님의 귀여운 당부가 올라왔다. 다음날 이서 손을 잡고 머핀을 먹으러 갔다. 먹고 싶은 맛을 고르고 예쁜 냅킨도 골라 자리에 앉아 같이 앉은 엄마들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했다. 다행히 이서가 이름을 말한 적 없는 친구들이어서 새로운 친구들 이름도 이서에게 알려주고 그 친구들과 테이블에 있던 풍선을 갖고 장난하며 얼굴도 익혔다. 다시 손을 잡고 교실로 가는데 이서가 조금 긴장된다고 했다. 엄마가 아침에 학교에 데려다주는 건 처음이라 조금 슬플 것 같아요, 하며 손을 꼭 잡았다. 교실에 도착해 문 앞에 서있던 다른 엄마와 잠시 인사를 하는데 옆에서 멀뚱히 보던 이서가 '엄마, 먼저 들어가도 돼요?'라고 물었다. '그럼'했더니 얼른 교실로 뛰어들어갔다. 선생님이 '리나, 같이 놀자'하니 선생님 옆에 얼른 앉는다. 뒤도 돌아보지 않는 이서를 불러 인사하고 집으로 돌아왔다. 운전하며 웃음이 비집고 나온다. 우리 이서 잘 하고 있구나 싶어 괜히 목과 어깨가 가볍다. 그날 이서는 한 번도 울지 않았다.


이서가 울며 학교에 간 날 찍은 가을 사진이 지난주에 메일로 왔다. 이서는 내 앞에서 했던 그대로 눈을 동그랗게 뜨고 입꼬리를 앙 물고 웃고 있었다. 늘 풀고 가던 머리를 특별히 묶고 갔는데 머리도 헝크러뜨리지 않고 그대로였다. 카디건 위로 꺼내준 원피스 카라도 그대로였다. 학교에서 올려준 활동 사진에 이서는 친구들 사이에 줄지어 서서 웃으며 단체 사진도 찍고 여기저기 웃으며 노는 사진이 많았다. 우리 이서 정말 엄마보다 낫다. 엄마는 지금도 새로운 곳에 가면 적응하는 데 시간이 한참 필요한데 말도 안 통하는 곳에서 이렇게 씩씩하게 지내는 걸 보니 기쁘면서 마음이 저리다. 학교에 가는 아침이면 이서 몸을 쓸어주며 엄마 아빠가 이서에게 사랑을 잔뜩 발라뒀으니까 겁내지 말고 용감하게 다녀오라고 했다. 이서는 씩 웃고 종종 '엄마, 사랑 발라줘요'라며 안긴다. 그러면 나는 안심한다. 이서가 집에서 사랑을 잘 채워서 앞으로 있을 수많은 날과 사건들 중에 어디서든 누구와 있든 자신을 잘 지키며 살길 기도한다. 그리고 나도 이서 덕에 좀 더 용감해진다. 아이를 책임지는 법도, 온종일 함께하며 아이에 맞게 돌보는 것도, 그리고 그렇게 붙어 있던 아이와 떨어져 보이지 않아도 안심하고 믿어주는 법도 첫 아기인 이서를 키우며 배운다. 나보다 나은 아이 덕에 엄마로 살 용기가 조금 더 생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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