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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가요록』 경험에서 과학으로, 조선의 양조를 기록하다

전통주 주(酒)저리 주(酒)저리-224

<본 글은 '한국술 고문헌 DB(한국술문헌연구소 제작)'의 내용을 참고하여 작성하였습니다.

도움을 주신 @김재형님께 감사드립니다. http://koreansool.kr/ktw/php/home.php >


술이나 음식에 있어 과거의 고문헌을 이해하는 일은 매우 어렵다. 무엇보다 기록 자체가 많지 않은 이유도 있지만, 술 이름이나 음식 이름만 간단히 언급된 경우도 많기 때문이다. 간혹 제조 방법과 관련해 무게 단위까지 구체적으로 적혀 있는 문헌을 발견하면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곤 한다. 그러나 그 단위들이 지금의 ‘kg’과 다르므로, 이를 현대 단위로 해석하는 과정에서도 어려움이 따른다. 고려·조선 시대의 무게 단위 문제는 표준 기준의 모호성과 시대에 따른 단위 변화로 인해 발생했다. 고려 시대에는 주로 몽골의 영향을 받아 ‘근(斤)’과 ‘냥(兩)’ 등의 단위를 사용했으며, 조선 초기에는 세종이 ‘황종률관’을 기준으로 도량형을 정했다. 하지만 정확한 표준 저울이 존재하지 않아 실제 사용에는 혼란이 있었다. 또한 초기에는 신체 일부를 기준으로 삼는 방식이었기에 개인마다 크기가 달라 단위를 통일하기 어려웠다.


그런데도, 우리는 현재까지 알려진 기준에 따라 과거를 해석할 수밖에 없다. 비록 불완전하더라도 그러한 자료들은 여전히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지금까지 발견된 술 관련 기록 가운데 ‘주방문(酒方文)’이 포함된, 가장 오래된 문헌은 『산가요록(山家要錄)』일 것이다. 물론 『산가요록』은 단순한 주방문뿐만 아니라, 농사와 음식 조리 등 다양한 기술을 포괄한 종합 농서이자 조리서의 성격을 가진다. 앞서 언급한 『향약집성방(鄕藥集成方)』에도 술 제조법이 기록되어 있으나, 그 목적은 치료에 있었기 때문에 술을 ‘기호식품’의 관점에서 다룬 기록으로는 『산가요록』이 최초라 할 수 있다.

1-3.jpg 산가요록 @한국전통포탈

『산가요록(山家要錄)』은 조선 세종에서 세조 시기인 1450년경, 왕실 어의 전순의(全循義)가 지은 종합 농서이다. 이 책에는 당시 궁중을 중심으로 발전한 식품 가공과 조리 기술이 기록되어 있다. 다만, 앞부분이 훼손되어 있어 정확한 편찬 연대와 저자의 의도가 담긴 서문이 전하지 않는다. 책 뒷부분에는 ‘산가요록(山家要錄)’이라는 제목과 함께 ‘전순의 찬(全楯義撰) 최유준 초(崔有濬 抄)’로 표기되어 있으며, 일부 기록에서는 ‘최유빈(崔有矉)’으로도 전해진다. ‘산가요록(山家要錄)’이라는 제목은 문자 그대로 ‘산가(山家)에서 생활하는 데 필요한 여러 가지 기록’이라는 뜻을 지닌다. 여기서 ‘산가’는 단순히 산속의 집을 의미하지 않는다. 조정의 벼슬길에 나서지 않고 학문에 정진하는 선비들을 ‘산림처사(山林處士)’라 부르듯, ‘산가’란 왕후나 공경의 사치스러운 집이 아닌, 일반 서민들의 평범한 생활공간을 뜻한다.


『산가요록』의 농업 관련 부분은 대부분 『농상집요(農桑輯要)』라는 농서를 전재한 것으로 보인다. 『농상집요』는 원(元) 세조 때 황제의 명으로 정부에서 발행된 농서로, 고려 공민왕 시기에 우리나라에도 전해져 널리 활용되었다. 이는 우리나라에서 이용된 최초의 농서로 평가된다. 다만, 『산가요록』은 『농상집요』를 단순히 베낀 것이 아니라 저자의 식견(識見)에 따라 내용을 보완하고 일부 순서를 조정한 점에서 독자적인 가치를 지닌다.


『산가요록(山家要錄)』의 조리 부분을 살펴보면, ‘주방(酒方)’이라는 제목 아래 다양한 양조법이 기록되어 있다. 그 내용을 보면 도량과 술 빚는 길일(吉日)에 관한 기록 1개, 소주 관련 2개, 청주·탁주·감주 등 50개, 술을 단속하는 법 1개, 그리고 누룩 관련 2개로 구성되어 있다. 즉, 양조(釀造)에 관한 기록은 총 56종류에 이른다. 다른 음식으로 장(醬) 관련 내용은 모두 19종류이다. 이 밖에도 식초(食醋)는 17종류, 김치는 38종류가 기록되어 있으며, 과일과 채소의 저장법은 17종류, 어육(魚肉) 저장법은 10종류이다. 또한 죽(粥) 6종류, 떡 10종류, 국수 6종류, 만두 2종류, 수제비 1종류, 과자류 10종류, 좌반(佐飯) 4종류, 식해(食醢) 7종류, 두부 1종류, 탕 7종류, 계란·닭·소머리 삶는 법이 각각 1종류씩 기록되어 있다. 이를 모두 합하면 『산가요록』에는 약 230여 종에 달하는 방대한 조리법이 수록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1)


『산가요록(山家要錄)』의 내용 가운데 술에 관한 부분을 살펴보면, 술의 재료로는 쌀뿐 아니라 밀, 보리, 메밀, 잣, 꽃, 상수리, 약재 등을 첨가하여 향을 더욱 좋게 하거나 술맛을 달콤하고 짙게 만드는 방법도 기록되어 있다. 또한 ‘주방(酒方)’의 첫머리에는 동이, 병, 잔 등과 같은 모호한 계량 단위의 양을 제시하고, 술 빚기에 좋은 날과 계절에 따른 저장 방향, 그리고 술이 익어 개봉할 때 피해야 할 날을 설명함으로써, 술을 빚는 과정에서 유념해야 할 주의사항을 미리 제시하고 있다. 여기에 좋은 누룩을 만드는 법과 술이 상하지 않게 관리하는 방법까지 덧붙여, 양조 전반에 걸친 체계적인 기록을 남겼다.


양조 목록은 다음과 같다.

2.png

* ⓝ : 또 다른 방법(又法)의 수를 나타냄


무엇보다 『산가요록』이 술 제조 관련 문헌으로서 중요한 이유는, 모호한 계량 단위에 대한 배량(倍量)과 분량(分量)의 관계를 구체적으로 기록했다는 점이다. 조선 시대에는 고대 중국에서 전래한 척관법(尺貫法)을 사용했는데, 길이를 재는 단위로는 자(尺)·치(寸)·푼(分)이, 무게를 재는 단위로는 관(貫)·근(斤)·돈·푼(分)·냥(兩)이 있었다. 또한 부피를 재는 단위로는 섬(石)·말(斗)·되(升)·홉(合)·작(勺) 등이 쓰였다.


쌀이나 곡물은 주로 홉(合), 되(升), 말(斗) 등의 단위로 계량되었으나, 물이나 술의 경우에는 일정한 표준 단위가 없어 사발(沙鉢), 병(甁), 동이[東海], 대야[鐥] 등으로 표현되어 있었다. 이 때문에 실제량을 정확히 파악하기가 어려웠다.

3.jfif 홉, 되, 말의 형태 @에듀넷

그런데 『산가요록』의 양조 부분 첫머리에는 이러한 계량 단위를 명확히 제시하고 있다.


<酒方>

二合爲一盞 二盞爲一爵 二升爲一鐥 三鐥爲一甁 五鐥爲一東海······


2홉이 1잔이 되고, 2잔이 1작이 되고, 2되가 1 복자[鐥]가 되고, 3 복자가 1병이 되고, 5 복자가 1동이 [東海]가 된다.


즉, 이는 모호한 계량 단위들 간의 배량 및 분량 관계를 구체적으로 기록한 것이다. 한 동이는 1말[斗]에 해당하고, 1병(甁)은 6되[升]에 해당함을 알 수 있다. 이를 통해 지금까지 막연히 알려졌던 동이, 대야, 병 등의 계량 단위를 구체적으로 제시한 것이다.


물론 이러한 단위 체계가 저자 개인의 가정에서 사용된 계량법인지, 당시 사회 전반의 표준이었는지는 확실하지 않다. 그러나 양조법의 첫머리에 이러한 계량 체계를 기록하여, 누구든 이를 참고해 술을 빚을 수 있도록 한 점은 『산가요록』의 큰 장점이자 역사적으로 매우 중요한 기록이라 할 수 있다.


4.jpg 『산가요록』의 계량단위


또한 『산가요록(山家要錄)』의 ‘자주(煑酒)’ 항목에서는 “好蠟二戔五分白檀香八里三毫木香一分胡椒二分五毫桂皮一分一里四毫”라 하여, 전(戔)·리(里)·호(毫) 등의 계량 단위가 사용된 것을 볼 수 있다. 여기서 전(戔, 錢)은 1 전이 1원(圓) 또는 1 환(圜)의 100분의 1에 해당하는 화폐 단위이지만, 실제로는 거의 쓰이지 않았던 보조 단위이다. 또한 엽전을 묶어 셀 때에도 사용되었으며, 1전은 10푼에 해당한다. 리(里, 釐)는 비율·길이·무게 등에 두루 쓰이는 단위로, 1리는 전체 수량의 1/1000이며, 1푼의 1/10에 해당한다. 호(毫)는 다시 1리의 1/10로, 매우 미세한 양을 나타낼 때 사용되었다.


부피를 재는 단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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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게를 재는 단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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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로 여기에서 이야기하는 현대의 부피 단위 환산은 문제가 있다. 1되를 1.8L로 환산하는 것이다. 사실 1되는 1.8L보다 적은 0.57L로 보는 게 맞는 것으로 보인다. 현대에 당연히 사용되고 있지만 사실 1.8L는 1909년(도량형법 개정) 일본에 의해 강제로 만들어진 단위이다. 조선 시대에는 그 부피가 훨씬 적었을 것으로 보인다. 쉽게 이야기해서 대한제국 때 만들어진 도량형 단위로 조선시대의 고문헌 단위를 계량하는 어처구니없는 실수를 하는 것이다.


도량형과 관련되어 기록으로「세종실록(세종 8년)」의 양기(量器)의 용적에 관한 것이 있다. 조선 후기의 『속대전』과『대전회통』에서도 양기에 있어서 위 표와 비교하여 큰 변화는 없었다. 이러한 내용을 기본으로 풀어쓴 고문헌 전통주 제조법(농진청)(2)과 한국의 도량형(국립민속박물관) 등을 참고로 한 부피 단위 내용을 다시금 정리를 하면 다음과 같다. 아래의 표를 근거로 하여 1되의 용적은 570mL로 봐야 할 것이다. 즉, 1되는 1.8L가 되면서 조선 시대보다 무려 3배 이상의 용적으로 바뀐 것이다.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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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처럼 『산가요록』은 경험적으로 전해 내려오던 술 제조법에 더욱 명확한 계량 단위를 제시함으로써, 누구나 일정한 기준으로 술을 만들 수 있도록 한 점에서 큰 의의를 지닌다. 즉, 단순한 전통의 전승을 넘어, 술 레시피를 체계화하고 대중화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 것이다. 이러한 명확한 단위와 기록 덕분에, 오늘날에도 많은 양조장들이 『산가요록』에 기록된 방법을 참고하거나 응용하여 술을 재현할 수 있게 되었다. 그만큼 이 책은 조선 시대의 술 문화와 양조 기술을 표준화한 귀중한 자료라 할 수 있다. 다음 글에서는 『산가요록』에 기록된 여러 술 가운데, 특히 주목할 만한 술들을 중심으로 살펴보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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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산가요록(山家要錄)』 중요 내용의 분석 고찰, 한복려 외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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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풀어쓴 고문헌 전통주 제조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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