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삶이 황폐해질 때, 멈추고 돌아보기
2주일 전부터 '자기관찰 일기'라는 것을 쓰기 시작했습니다. 하루 동안 나에게 일었던 감정들을 써나가는 일기인데, 일기를 쓰면서 저에 대해 새로운 사실들을 많이 깨닫고 있습니다. 가장 부끄러웠던 것 중에 한 가지는 일기의 상당 부분이 누군가를 향한 비판으로 채워지고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분명히 '나'에 대해 쓰는 것인데, '나'보다는 '상사'나 '회사'가 나를 얼마나 힘들고 지치게 하는지, "내가 어찌할 수 없는" 외부 환경들 때문에 내 삶이 얼마나 비참해지고 있는지에 대해서 쓰고 있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최근에 회사에서 크게 상처를 받은 일이 발생하였고 이 일은 제 머릿속을 온통 지배했습니다. 펜을 잡고 있으면 억울함, 배신감, 미움 같은 감정들이 가장 먼저 올라왔습니다.
어떻게 나한테 이럴 수 있지? 내가 같이 보낸 세월이 얼마인데? 어떻게 이렇게 철저히 사람들 무시하고 소외당하게 할 수 있지? 너무 짜증 나!
바닥을 치는 기분은 며칠간 계속되었습니다. "이 못 믿을 사람들!" "이런 나쁜 사람들!"이라면서 저를 피해자라고 생각하고 상대방을 가해자의 위치에 놓았습니다. "저 사람 탓이야!" "저 사람 때문에 내가 너무 불쌍해"라는 생각이 떠나질 않았습니다.
그런데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제가 참 어리석어 보이더군요. 하루에 10시간씩을 회사에서 보내는 것도 모자라, 나만의 자유시간조차 부정적인 생각에 휩싸여있다니. 도대체 상사가, 그 회사가 나에게 뭐길래.
이렇게 안 맞는 상황을 버티기로 한 것은 누구의 선택일까요? 외부의 요소들이 결정에 영향을 줄 수는 있었겠지만 최종 결정은 제가 했습니다. 저의 선택이 잘못됐다고 느낄 때도 많았지만 '대안'을 못 찾겠다는 이유로, 벗어나지 못하고 계속 같은 직장, 같은 팀에 머물러있기로 한 것도 저였습니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이 제 책임이라는 것을 인정하고 싶지 않았습니다.
그러면 나 자신이 너무 비참해 보이니까요. 그래서 자꾸 남 탓을, 사회의 탓을 하고 싶었어요.
나는 열심히 하려고 하는데 나를 알아주지 않는 상사 때문에 내가 이렇게 힘든 거야, 그만두고 싶어도 실업률이 높으니 달리 방법이 없잖아? 이건 취업을 해서 돈을 벌어야 한다는 사회적 압박 때문이야, 이 일을 그만둔다고 한다면 부모님이 얼마나 실망하실까? 안정적인 기업에 취업하기를 원하는 부모님 때문에 내가 참고 사는 거야. 이런 식으로요.
그런데 2주 전에 참가한 알렉스 룽구 코치님의 자아실현 워크숍에서 이 말을 듣고 제 머리를 크게 맞은 것 같은 느낌이 들었습니다.
피해자는 행복하게 살 수 없다.
피해자로 사는 것은 목표 없이 남들의 의도에 따라 사는 것이다
'피해의식= 도덕'이라고 생각하기 쉽다.
피해자는 가장 큰 에고다"
저 스스로를 피해자라고 생각하면서 제 머리 속에서는 이런 프레임이 생겼던 것 같습니다.
나 = 피해자, 도덕적인 사람
외부환경 (상사, 회사, 부모님, 기업의 착취 시스템 등등) = 가해자, 부도덕한 사람
이런 피해의식이 "그래, 난 괜찮은 사람이고 저 사람들이 저 시스템이 이상한 거야"라는 안도감과 위안을 주었기 때문에 피해의식에 중독돼 살아왔습니다.
하지만 이런 안도감과 위안 속에서 "나에게 선택권이 있고, 이 환경을 스스로 바꿀 수 있다"라는 인식은 하지 못했고 이것은 이 시스템을 벗어나기 위해 필요한 행동들로 이어지지는 못했습니다.
다시 제가 최근에 엄청 화가 났던 상황을 떠올려봤습니다. 상사의 행동이 못마땅하지만 정말로 제가 화가 나는 것이 그 사람 때문일까요?
상사나 회사가 억울함, 배신감, 미움 등 제 안에서 일었던 부정적인 감정들을 강요하지는 않았습니다. 정확히 말하자면, <상사한테 잘 보이고 싶고, 회사에서 인정받고 싶고, 신뢰를 바탕으로 일하고 싶은 욕망>이 있는데 그것이 충족되지 않고 좌절되니 화가 났던 것이 정확한 표현일 것입니다.
지금 돌이켜보니, 분노에 휩싸여 씩씩댈 시간에 제 안에 왜 이런 생각들이 올라오는지를 생각해보고, 필요할 경우 상사에게 부당하다고 느끼는 부분을 설명하고 이해를 구하거나, 생산적인 대처방법을 찾는 것이 효과적이었을 것 같습니다.
제가 느꼈던 분노는 "미안하다"는 따뜻한 한마디만 들었어도 풀렸을 텐데 제가 먼저 대화를 해서 풀어나갈 생각은 하지 못하고 대화를 시도하는 것이 오히려 쑥스럽고 창피하고 더 비참해지는 것 같기도 해서 시도를 못했었어요. 결국, 불평과 불만은 저를 쳇바퀴 안에 갇힌 불행한 피해자로 만들었던 것이죠.
이런 식으로 제 상황을 뜯어보고 삶의 주도권을 저한테 되돌리고 나니, 마음이 좀 더 평안해졌습니다. 그리고 쓸 데 없는 일에는 1분의 시간도 더 쓰기 싫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제 글을 읽으시면서 떠올랐던 사람이 있었나요?
오늘 한번, 스스로에게 질문해보세요.
내가 피해자라고 느끼는 상황, 그 이유는 무엇인지
가해자 (상대)는 그렇게 많은 시간과 에너지를 쏟을 만한 사람인지
제가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얻기까지 도움이 됐던 자료를 공유합니다.
- 알렉스 룽구, 100% 자기 책임 지기 - 피해의식에서 주인의식으로 http://naver.me/G4jLzWLZ
- 에이미 모린, 나는 상처받지 않기로 했다(단행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