춘천 의암봉 백패킹
주말에는 비가 내린다고 했다. 비가 내리면 아무래도 낙엽이 많이 떨어지겠지? 우리는 서두를 수밖에 없었다. 지난 강릉에서의 캠핑을 즐기고 서울로 돌아오는 날, 고속도로에서 오랜 시간 낙엽으로 물든 산을 바라볼 수 있었다. 가을의 끝을 조금 더 오래 기억하고 싶어 배낭을 챙겼다. 오늘 우리는 춘천으로 향한다.
의암봉은 드름산 줄기에 있는 작은 봉우리이다. 서치 하나만큼은 끝내주는 오빠가 의암봉 풍경을 보자마자 내게 사진을 보내줬다. 체력이 추진력만큼 따라와 주면 참 좋을 텐데, 체력은 부족했지만 이번에도 고민하지 않고 “가자!”라고 대답할 수 있었다.
춘천까지 온 만큼, 저녁 메뉴로 닭갈비를 선택했다. 산에서는 화기를 사용하면 안 되기 때문에 미리 다 볶아서 포장을 했다. 서둘러서 출발하는 바람에 용기를 챙긴다는 것을 깜빡하고 말았다. 다음에는 꼭 집에서 쓰는 용기를 챙겨야지! (일회용품을 조금이라도 줄여보자) 원래 가려던 통나무집은 주말에는 사람이 많아 볶아서 포장해줄 수는 없다고 한다. 꼭 먹어보고 싶었는데,,, 맛집이란,,, 아쉬웠지만, 의암봉으로 향하는 길에 있던 다른 닭갈비 집에서 포장을 했다.
아직은 낙엽이 수분을 살짝 머금고 있어서 밟을 때마다 바삭, 바삭 부서지는 느낌까지는 들지 않았지만, 낙엽을 밟으면서 생각했다. 정말 겨울이 오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늦게 등산을 시작해서 생각보다 해도 뚝뚝 떨어지는것같은 기분이 들었다. 의암봉까지 생각보다 경사가 조금 있는 편이라, 몇 번의 고비가 찾아왔다. 총 산행 시간은 1시간이 채 되지 않았지만, 15킬로 정도의 배낭을 메고 있기 때문에 생각보다 힘이 들었다. 중간중간 밧줄을 잡고 경사를 간신히 올라갔다. 백패킹을 시작한 지 벌써 2년이 넘었지만, 낮은 산이라고 생각해서 스틱을 챙기지 않은걸 몇 번이나 후회했는지 모르겠다. 이런 걸 보면 아직도 나는 초보인가 보다.
오빠가 지도를 보면서 조금밖에 남지 않았다고 나를 달래주었다. 몇 번의 경사를 넘어 드디어 북한강이 바라보이는 언덕까지 올라왔다. 언뜻 보이는 그 느낌만 봐도 너무 멋있는데, 오빠가 전망데크까지 가면 훨씬 더 멋있다고 말해주었다. 얼마나 더 멋있을까 기대되는 마음에 살짝 힘을 얻는다.
의암봉 전망데크는 딱 텐트 한 동만 칠 수 있는 작은 사이즈의 데크라, 다른 팀이 이미 먼저 있으면 어떻게 하나 걱정하면서 다소 평탄 한길을 걸어갔다. 얼마 못 걸어 사람 말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하산하시는 중년 부부를 만났는데, 두 분께 혹시 의암봉데크에 다른 텐트가 쳐있는지 조심히 여쭤보았다. 다행히 정상 쪽에서는 텐트를 보셨는데 의암봉에서는 아직 못 보셨다고 알려주셨다.
부지런히 올라가 의암봉 전망데크에 도착했다. 역시, 사진에서 본모습보다 더 멋있는 풍경이었다. 항상 눈으로 직접 바라보는 모습보다 더 멋진 풍경은 없다는 걸 깨닫고 배운다. 그래서 어쩌면 나는 늘 떠나고 싶은 사람이 되는 걸 지도 모르겠다. 더 어두워지기 전에 서둘러 텐트부터 치고 밥을 먹기로 했다. 우리 둘은 철저한 분업화와 환상의 복식조를 자랑하는데, 오빠가 텐트를 담당하는 동안 나는 의자와 테이블을 빠르게 세팅한다.
텐트를 꺼내는 오빠의 얼굴이 어둡다. 아뿔싸. 오 마이 갓… 텐트를 챙긴 오빠가, 폴대를 두고 왔다고 한다.
이너텐트와 플라이 그리고 폴대가 텐트를 이루는 세 가지 요소인데 폴대가 없다면 우리는 어떻게 자야 할까 잠시 고민에 빠졌다. 다행히 오늘은 자립형 텐트를 챙겨 와서 가이 라인을 최대한 데크 테두리에 걸어서 텐트를 세워보기로 한다. 데크가 작아서 천만다행이었다. 이런 일에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매달리는 게 매력인 오빠의 성격이 빛을 발한다. 오빠는 멈추지 않고 죽은 나뭇가지들 중에서도 얇은 녀석들을 귀신같이 골라와서 폴대의 빈자리를 채워주고 있었다. 그 결과 우리는 우리가 하룻밤을 무사히 지낼 수 있을 만큼 텐트를 세울 수 있었고, 차갑게 식기 전에 닭갈비를 먹을 수 있었다. 닭갈비를 먹다 소리가 나서 잠깐 놀랬는데, 조금 늦게 하산하시는 등산객분이셨다. 백패킹은 처음 본다며 신기해하시는 아주머니와 잠깐 담소도 나누고, 사진도 찍어드렸다.
저녁도 맛있게 먹고 멋진 풍경을 한 참을 바라보다 텐트 안으로 들어갔다. 각자 잠깐 누워서 휴식을 취하고 해가 다 떨어지고 난 후 다시 나와서 야경을 바라보았다. 마지막으로 텐트를 한 번 더 보수 해주었다. 사실 백패킹을 와서 그렇게 대단한 일을 하는 건 아니다. 그날 하루 잠을 청할 집을 짓고, 살림살이를 들여다 놓고, 맛있게 밥 한 끼 하고, 평소 내 방 창문에서 바라보는 풍경이 아닌 다른 풍경을 잠시 바라보는 일. 이게 전부 일 수 있기도 하지만, 이 별거 아닌 일이 이상하게 좋아 2년째 푹 빠져 있다. 아 또 하나! 생각보다 일찍 자게 된다. 잠을 설칠 수는 있지만 잠자리를 가리는 편이 아닌 나는 생각보다 항상 잘 자는 편이다.
다음날 우리는 해가 떠오르기 전 5시 반 조금 넘어서 이른 철수를 준비했다. 비가 7시부터 내릴 수 있기 때문에 서둘러서 준비를 하고 여섯 시가 되기 직전 모든 정리를 다 하고 하산을 시작했다. 생각보다 비가 빨리 내리기 시작해서 하산하는 동안 서서히 굵어지는 빗줄기를 맞으면서 내려왔다. 그 덕에 잠깐 발을 헛디뎌 두 바퀴를 굴렀지만 크게 다치지는 않고 허벅지만 긁히고 멍이 들었다. (생각보다 멍이 안 빠져 일주일 동안 고생은 좀 했지만) 하산한 뒤 오빠차에서 튼 엉따가 그렇게 따뜻할 수가 없었다. 백패킹을 하고 돌아오면 일상의 작은 부분이 이렇게 소중해진다. 나는 원래도 사소하고 작은것에도 행복을 잘 느끼는 사람이었지만, 특히 백패킹을 시작하고 나서 그 부분이 더 발달된 것 같다. 오늘은 엉따가 유독 따뜻하게 느껴진 것 처럼, 하루 하루 작은거에도 감사함을 느끼면서 살아가야지 다짐하게 되는 날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