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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호우 Margaret Feb 17. 2017

마가렛의 가계 다이어리 - intro

나는 왜 가계부를 써야 했나?

나에게 가계부는 생활과 같았다.

학생 때는 워낙에 용돈이 적은 탓에 아껴 써야 했다.

2003년도 기준 대학생일 때 월 20만 원을 용돈으로 받았다. 20만 원이 큰돈은 맞다. 고등학교 때 월 3만 원에 비하면. 하지만, 그 20만 원으로 모든 걸 다 해야 했던 나에겐 - 말 그대로 모든 것이었다 - 아껴 아껴 살아야 하는 돈이었다.


그러니까 20만 원에 (2003년~2007년 기준)

월 식비: 80,000원 (한 끼 평균 4000원 잡고 * 수업일수 20일)

월 교통비: 40,000원 (편도 1000원 잡고*왕복*수업일수 20일)

월 통신비: 20,000원 ~ 50,000원(그땐 2G였으니까 지금보단 통신비가 적게 나왔다)


이것만 벌써 14만 원에서 17만 원이다.

그러니까 한 달에 고정지출만 14만 원/20만 원 *100 = 70% ~ 85%


이러니 가계부를 안 쓰고서는 생활이 안되었다.

3~6만원으로 뭔가 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신다면 큰 오산이다. 


그 나머지 3~6만 원으로, 기타 들어가는 간식비, 문구류, 교재비, 복사비(참 복사할 일이 많았다), 등등.

기타 여러 가지 하고 싶은 것과 필요한 것을 모두 해야 했다. 


이러했으니... 나에게 의복 구입과 문화생활은 사치였다. 

당시 내가 가장 부러워했던 친구들은, 

1. 원하는 대로 자기가 입고 싶은 옷 사 입고 화장품 사는 애들.

2. 원하는 대로 자신이 읽고 싶은 책이나 듣고 싶은 CD 사는 애들.

3. 원하는 대로 자신이 먹고 싶은 음식 고르는 애들.


이었다.


이렇게 쓰고 보니 나 정말 안 쓰고 살았다...

저렇게 살다 보니 당연히 외양을 꾸미는 것은 생각도 못했고 음식은 그저 죽지 않기 위한 에너지 정도로 여겼으며 책은 도서관에서 빌리고, 음악은 무료 다운로드(소리 오션 같은 P2P)로 들었다. 


원치 않는 소비와 나중에 후회할 만한 소비, 쓸데없는 소비 등을 막기 위해선 가계부가 절대적이었다.

그날 하루 소비한 것들을 적고 그 이상을 쓰지 않기 위해 열라 노력했다.


심지 어떤 때는 저렇게 쓰고도 한 달 돈이 남아서 이월까지 했더랬다. 모두 가계부의 힘이었다.

알뜰한 경제관념을 심어주신 부모님께 감사를 드리긴 한다. 하지만, 가끔은 좀... 아 제발 좀... 특별 보너스 같은 것만 주셨어도... 정말 괜찮을 법했다. 


남들 부모님 얘길 들어보면, 

1. 술 먹고 취해 들어오셔서 용돈을 턱.

2. 뭐 사고 싶다 하면 그래 사라 하고 용돈을 턱.

3. 앞에서 예쁜 짓을 좀 하면 귀엽다고 용돈을 턱.


한다는데...


1. 술 먹고 취해 들어오실 일이 없다. 워낙 자기관리가 투철하신 분들이다.

2. 뭐 사고 싶다 하면 '알았어' 하고 생각해두셨다가 몇 년이 지난 후 직접 사주신다. 가끔은 잊기도 하시는데, 절대 보채면 안 사주셨다. 보챈다고. ㅡㅡ;

3. 그렇게 컸는데 앞에서 예쁜 짓을 할 리가 있겠는가... 보고 배운 것이 있는데. 남 듣기 좋은 말 잘 못하는 부모 밑에서 크면, 그 자녀도 그다지 남 듣기 좋은 말은 못 배우는 법이다. 그런데 부모에게 아양을 떤다는 건 있을 수 없는 일.



상황이 이러니, 뭐 더 달라고 할 수도 없고 그냥 주시는 거 감사히 받아 생활했다.

아껴가면서.


나중에 직장인이 되어서야 해보고 싶던걸 하나씩 할 수 있었다. 그 얘긴 차차 하기로 하고...


여하튼 내가 가계부를 쓰기 시작했던 이유는 이거였다.

다소 씁쓸한 이유지만, 어쨌건 간에 건전한 경제관념을 갖게 되어 지금은 만족한다.


그런 가계부 얘길 좀 해보려고 한다.

거짐 나의 20대와 30대를 함께 한 가계부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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