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들이 뭐 라건 뭔 상관입니까. 내가 할 줄 안다는데.
요새 학생들의 분위기는 어떤지 모르겠지만,
우리가 영어를 배울 때 만 해도 발음 좀 굴린다 싶으면 괜히 쳐다보고 핀잔주고 그랬던 시절이 있더랬다.
그땐 그게 이상해 보였고 정말 시험에서 100점 맞아야 영어 잘 하는 줄 알았다.
그랬다.
생각해보면 우릴 이렇게 만든 건 영어의 문제가 아니라 영어에 대한 주위의 시선과 태도가 아니었을까.
영어 좀 하는 게 그게 뭐 대수라고. 단지 의사소통의 수단에 불과한 것을 우린 마치 넘사벽 인양 신성시했다.
단어 몇 마디 만을 던진다 해도 의미만 서로 통하면 되는 것을 왜 우린 꼭 배운 대로 문법 맞춰서 말해야지만이 제대로 문장을 만든 것 마냥 그렇게 서로 평가받고 평가했을까.
영어가 공용어가 아니면서 영어는 참 많이 쓰는 시대다.
거리의 간판을 보면 카페, 슈퍼, 편의점마저도 영어가 아닌걸 찾아보기 힘들 정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외국인만 만나면 긴장부터 한다.
'저 사람이 대체 나에게 요구하는 건 뭘까?'
'내가 알아들을 수 나 있을까?'
'알아듣는다 치고 뭐라 답해야 하는 거지?'
'답했다고 한들 쟤가 내 영어를 알아들을까??'
'쟤 알아들은 후에 또 질문하면 어쩌지??????'
외국인을 만나는 순간 저런 질문들이 영화처럼 스쳐 지나간다.
이 모든 질문들은
'나는 영어를 못해. 하긴 하는데 완벽하지 않아'
라는 마음에서 출발한다.
우리는 할 줄 알아도 '잘 못 합니다'라고 겸손해야 하는 동방예의지국에서 자라났다.
정말 잘 해서 주위에서 한 번 해보라고 하면, '그럼 조금만...' 이라며 또 겸손을 떨어야 한다.
'나 잘 해'라고 해서 했다가 주위의 기대에 못 미치면 '못하면서 허세다.'라는 얘길 또 듣는다.
그러지 말자 이제. 좀.
겸손한 거 좋다.
하지만, 할 줄 아는 건 안다고 하고 서로가 상대방을 인정할 줄 아는 사회가 되어야 하지 않을까.
좀 완벽하지 않으면 어떠랴. 좀 모자라면 어떠랴. 아무리 완벽한 사람도 누군가의 시선에선 덜 완벽한 사람일 수 있다. 그렇다고 해서 사는데 지장 있는 건 아니지 않나.
하물며 우리나라의 국어나 공용어도 아닌 외국어, 영어인데 못하는 게 당연하고 어려운 게 당연하다.
그걸 인정하고 발음하고 말하고 의미가 전달되는 것만으로도 대단한 일이 아닌가.
전달이 잘 되는 거 같지 않으면 노력하면 되는데 그만큼 노력하지 않으면서 왜 못 알아듣는지 모르겠다고 말하는 건 정말이지 도둑 심보다.
이제 겸손은 그만. 아는 건 안다고 말하자. 못하면 어떠랴, 노력하면 된다.
모르는 건 죄가 아니지만 알려고 노력하지 않는 것은 죄악이라고 본다.
그리고 상대방이 할 줄 아는 것은 인정해주는 문화가 자리 잡았으면 좋겠다.
완벽하지 않아도 좋다. 우린 모두 한낱 인간에 지나지 않는다.
우리말도 제대로 못하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데. 영어가 완벽하지 않다고 기죽지 말자. 잘하는데 겸손도 떨지 말자. 영어가 유창한 사람도 좋지만, 못해도 자신감 있는 그대가 더 보기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