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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성일 Feb 17. 2024

내 안의 저편으로 떠나는 여행

어느 자유인의 베트남 푸꾸옥 여행기 2

때로 여행은 기억 저편의 어떤 장면을 소환한다. 이번 푸꾸옥 여행은 특히 그랬다. 2가지 색깔의 과거 여행이랄까. 세상을 살다 보면 많은 사람을 만나고 여러 곳, 여러 나라를 여행하게 된다. 지금까지 가장 친근한 나라는 어디일까. 업무 출장과 개인 여행을 합해 가 본 30여 개 나라 중 돌아보니, 일본과 베트남이다.      


사람을 만나는 데 인연이 작용하는 것처럼 여행도 비슷하다. 두 나라 모두 비교적 가까운 나라라 자연스럽게 오갈 일이 많다. 그래도 이유가 있을 것이다. 최근 한국인의 인기 여행지 1, 2위에 꼽힌 나라라면.      



알고 보면 무서운 나라 베트남     


1990년대 처음 방문했을 때 베트남은 한창 개혁 개방 정책에 박차를 가하던 시기였다. 대우그룹이 '세계경영'으로 잘나가던 시절, 호텔과 자동차 등 대규모 사업을 벌이면서 한국은 현지 젊은이들에게는 선망의 대상이었다.      


우리 출장팀 중 최상급자는 베트남 파병부대원 출신이었다. 우리는 호찌민 시 주변의 ‘구찌터널’을 방문했다. 1960년대 베트남 전쟁 당시 베트남 공산주의 세력이 미군과 남베트남 기습공격용으로 파놓은 무려 200km에 이르는 땅굴이다. 안에는 병원과 식당, 침실, 회의실 등이 설치돼 있다. 베트남인들의 집요함과 치밀함에 놀랐다. (요즘 시대엔 살짝 철 지난 ‘안보’ 관광지.)      


지금 베트남은 활기와 의욕이 넘치는 곳. 평균 연령이 30대 초반의 젊은 나라다. 마치 한국의 1970~1980년대처럼 국가 차원의 과감하고 야심 찬 개발 프로젝트를 밀어붙이며 역동적인 에너지를 내뿜는다. 경제성장률이 8% 안팎에 이를 정도로 급변하는 곳이다.     



푸꾸옥 남부 썬그룹이 조성한 해상 케이블카와 선셋타운 풍경



한국인을 신처럼 모시겠다는 곳     


푸꾸옥 또한 ‘베트남의 하와이’로 만들겠다는 베트남 정부의 강력한 의지가 작용했다. 2011년 ‘베트남의 삼성’으로 불리는 빈그룹이 북부, 2014년 썬그룹이 남부, CEO그룹이 중부 지역의 개발을 각각 시작한다. 2020년 3월에는 작은 섬이 시(市)로 승격되고 2021년 11월에는 '국제관광 시범 여행지'로 프로모션을 전개한다.


특히 베트남 관광청은 “한국 관광객을 신처럼 모실 것”이라는 말까지 하며 주 타깃이 어디인지 분명히 한다. 베트남 전쟁 당시 적국으로 서로 총부리를 겨누었던 사이 아닌가. 흐르는 세월과 함께 ‘영원한 적도 영원한 친구’도 없는 국제관계의 현실을 되새기게 한다.     


베트남은 날카로운 발톱을 숨기고 있는 나라다. 프랑스의 식민 지배를 받았으나 2차 대전 이후 미국, 프랑스, 중국 등 강대국과의 전쟁에서 모두 승리했다. 이제는 후발 개발도상국으로 아시아의 4마리 용(한국, 대만, 싱가포르, 홍콩)을 이을 차세대 성장국가로 꼽힌다. 구찌터널에서 확인한 그들의 놀라운 게릴라정신부터 거침없고 실용적인 관광 개발의 면모까지 베트남의 진짜 얼굴은 다양하다. 후발국가지만 절대 만만한 나라가 아니다. 우리가 마냥 가성비 좋은 여행 국가로만 봐서는 안 되는 이유다.      



푸꾸옥 북부 빈그룹이 조성한 그랜드 월드. 베네치아가 떠오르는 풍경이다.



물속에서 떠난 어두운 과거로의 여행     


베트남 개발 프로젝트의 대명사인 푸꾸옥, 6일간 머문 리조트 내에서 오랜만에 수영을 했다. 근 6년 만이다. 아늑한 물속에 잠기면서 내 인생의 과거 여행을 하게 됐다. 수영을 하면 기분이 금세 달라지며, 살아있는 생명체의 원초적 쾌감 같은 게 느껴진다.      


옷을 갈아입을 때 조금 번거롭고, 처음 물에 들어갈 때의 낯선 느낌은 금방 바뀐다. 적당한 온도의 물은 우리의 살갗과 기분을 부드럽게 어루만진다. 꿈속 같은 순간에 빠져드는 이런 기분, 얼마나 편안하고 좋은가.

    

하지만 오랫동안 내게 물은 본능적인 두려움과 금기의 대상이었다. 어릴 적 집 앞에는 상당히 큰 저수지가 있었다. 시골의 아이들에겐 산과 들을 쏘다니고 여름엔 물가에서 노는 게 놀이다. 저수지에선 가끔 익사 사고가 났다. 깊은 물에 들어가면 물귀신이 다리를 잡아당긴다는 무서운 이야기가 돌았다. 부모님은 "절대 물가에 가지 말라."고 명령(?!)하시곤 했다.      


중학교 때, 친구들과 저수지 가에서 놀았다. 더운 여름이라 물속에 잠깐 몸을 담그며 더위를 식혔다. 그러다 갑자기 발밑이 허전해지면서 순식간에 나는 정신을 잃고 허우적거렸다. 아마 바닥이 푹 파인 곳이 있었던 듯, 그때의 아찔한 느낌과 짧은 순간의 공포가 여전히 생생하다. 때마침 옆에 있던 친구가 나를 구했다. 구사일생, 물은 내게는 더욱 무섭고 두려운 곳으로 남았다.     


 

금기와 트라우마를 벗어나기까지     


30대 후반에 떠난 영국 연수, 학교에는 근사한 스포츠센터가 있었다. 수영장에 다니던 사람들을 보며 수영을 배우고 싶었다. 마침 옆집 후배가 초등 수영선수 출신이라고 했다. 물속에서 숨쉬기, 눈뜨고 가위바위보 하기를 하며 왕초보의 수영 강습이 시작됐다. 조금씩 자신감이 생기면서 본격적으로 배울 마음이 커졌다.      


귀국한 후 새벽마다 집 근처 스포츠센터에서 수영 레슨을 받았다. 어찌어찌해서 배영과 접영까지 진도가 모두 나갔다. 내가 이렇게 수영하게 될 줄이야, 믿을 수 없을 만큼 대견하고 꿈만 같았다. 비로소 나의 오랜 트라우마를 벗어났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은 주변에 수영장이 많이 늘었다. 대규모 신규 아파트 단지엔 편의시설로 들어서기도 한다. 이제는 아이들에게 ‘생존 수영’을 가르쳐야 한다는 공감대도 강하다. 언제나 혼자서도 손쉽게 할 수 있는 게 수영이다. 나이 들어선 ‘아쿠아로빅’ 같은 운동도 건강 관리에 아주 좋으니 시도할 만하다.      



푸꾸옥 노보텔의 수영장 풍경. 왼쪽으로 보이는 비치에서도 수영한다.



여행에서 만나는 진정한 나     


여행은 새로운 세상을 만나며 또 다른 우리 자신과 조우하게 한다. 문득 아득한 어린 시절의 어두운 과거에 빠져들기도 한다. 여행이란 낯선 ‘장소’로 우리를 인도하지만 거기에서 우리는 수많은 사람과 인생, 미지의 시간과 이야기를 탐험한다. 나는 베트남 푸꾸옥을 여행했는데 거기서 문득 과거의 나와 추억을 만나게 됐다. 이런 무궁무진한 매력이 우리가 늘 여행을 꿈꾸는 이유가 아닐까.







*사진 ⓒ김성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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