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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성일 Mar 03. 2024

섞여야 신박하다

어느 자유인의 베트남 푸꾸옥 여행기 3

에스프레소 같은 아메리카노     


푸꾸옥에 6일간 머무는 동안 베트남 커피에 푹 빠졌다. 리조트에서 조식 뷔페를 먹으면서 다양한 커피도 함께 맛볼 수 있었다. 베트남 커피의 원두는 '로부스타', 세계 유통의 80%를 차지하는 ‘아라비카’가 아니다. 하지만 우리가 평소 애용하는 원두가 아니라고 가볍게 보면 곤란하다.         


로부스타 커피는 카페인 함량이 높고 맛과 향이 강하다. 진하고 쓴 커피를 선호하는 내 입맛에 기대 이상으로 맞았다. 아메리카노인데 에스프레소처럼 양도 적고 맛이 아주 강해서 물을 희석해 먹어야 한다. 아침 식사 끝 무렵에 2잔을 연거푸 마시는 날이 늘었다. 그러다 차츰 베트남 커피의 매력에 빠져들게 됐다. 1일 1 카페를 순례하려던 계획에도 흥미가 더해졌다. 찾아본 카페 중엔 남부 선셋타운의 RuNam이 기억에 남는다. 뷰맛집으로 손색이 없는 곳이다.     



에스프레소가 아니고 아메리카노라고? 선셋타운의 뷰맛집 RuNam에서. 사진 ⓒ김성일



알고 보면 커피의 나라


베트남은 브라질에 이어 세계 2위의 커피 생산국이다. 자연스레 커피는 그들의 독특한 음식문화를 보여준다. 원산지가 에티오피아인 커피가 베트남에서 재배된 건 프랑스와 깊은 관련이 있다. 1857년 프랑스의 선교사에 의해 처음 유입된 후, 오랜 시간을 거쳐 점차 일상적인 음식문화로 자리 잡았다고 한다.       


후발주자인 베트남이 세계적인 커피 생산국으로 부상한 것은 비교적 최근이다. 재배에 적합한 기후와 자연조건을 갖춘 데다, 1986년 개혁개방정책(도이모이)에 힘입어 커피 산업의 육성이 탄력을 받았다. 마침 세계적으로 커피 생산량의 잦은 변동과 가격 상승은 국내 재배와 투자 확대로 이어졌다. 커피 가공 기술 개선을 통해 '로부스타' 종에 대한 수요가 높아진 것도 생산 증가의 요인으로 작용했다.      


베트남의 커피는 그들의 삶이 담겨 다양한 종류와 맛을 자랑한다. 베트남식 핀 드리퍼로 원두를 내린 뜨거운 블랙커피부터 달걀 크림을 넣어 먹는 '카페 쭝'까지. 특히 연유를 넣어 마시는 커피가 인기다. 가장 유명한 ‘카페 쓰어 다’는 커피에 연유와 얼음을 넣어서 쓴맛과 단맛, 시원한 느낌이 잘 어우러진다. 덥고 지칠 때쯤 한 잔 마시면 아주 진한 커피와 강한 단맛에 정신이 번쩍 든다. 연유를 넣은 커피는 프랑스인들의 카페 오레에서 유래를 찾아볼 수 있는데, 우유와 생크림 대신 보관이 비교적 용이한 연유를 사용하면서 널리 퍼졌다고 한다.      


지역 특산물인 코코넛도 음식 메뉴에서 빼놓을 수 없다. 얼음과 함께 시원하고 달콤하게 마시는 코코넛 커피가 유명하고, 부드럽고 달달한 코코넛 아이스크림도 인기다.      



푸꾸옥 그랜드월드에서 맛본 코코넛 아이스크림. 뒷쪽은 블루베리 아이스크림. 사진 ⓒ김성일

 


교류와 혼종의 음식문화     


베트남은 역사적으로 이웃 국가인 중국과 함께 프랑스의 제국주의 식민 지배(1887-1945) 영향을 많이 받았다. 속 깊은 프라이팬을 사용하여 볶거나 튀기는 요리, 면이 많고 젓가락을 사용한다. 프랑스에선 빵과 커피가 이식되어 베트남의 새로운 음식문화로 자리 잡았다.      


베트남 음식도 다양하게 발달했다. 쌀국수, 라이스페이퍼, 떡 같은 쌀 가공품이 많다. 바게트를 '쌀'로 만들고 각종 야채나 고기류를 곁들인 ‘반미’는 길거리 간편 음식으로 유명하다. 한 번에 손으로 잡고 먹기 좋을 만큼 크기가 적당하고 맛도 좋다. 이렇듯 베트남의 음식 문화는 오랜 역사와 다양한 문화가 섞이면서 그들의 방식대로 새롭고 참신하게 재창조된 셈이다.        



베트남식 바게트. 보기만 해도 바삭한 느낌이 풍긴다. 사진 ⓒ김성일



날아가는 쌀의 매력     


베트남은 남북이 긴 국토로 인해 지역마다 기후와 물산에 차이가 있다. 특히 메콩강 하류로 세계적인 곡창지대인 남부는 1년에 서너 번 벼를 재배할 수 있다. 동북아의 ‘자포니카’와 달리 동남아와 인도 지역에서는 ‘인디카’ 품종의 쌀을 먹는다. 세계적으론 인디카 쌀이 90% 정도로 다수를 차지한다. 흔히 ‘날아가는 쌀’이라고도 하는데, 볼품도 찰기도 없이 길쭉하게 생긴 쌀이 맛이나 영양 측면에서 떨어져 보인다.      


하지만 자꾸 먹다 보면 폴폴 날리는 쌀의 매력에 조금씩 빠지게 된다. 특히 카레나 볶음밥같이 걸쭉한 소스나 토핑, 특유의 요리법과 만나면 “어쩌면 이렇게 잘 맞을까?” 하고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음식문화란 자연과 거기 사는 사람들의 취향이 어우러져 다양한 형태로 발전한다는 걸 실감한다.     



역사를 바꾼 향신료, 후추


푸꾸옥의 특산물로 후추를 빼놓을 수 없다. 향신료의 왕이라고 불리는 후추는 인도 남부가 원산지로, 주로 적도 부근 열대지방에서 재배된다. 특히 서양 요리에선 빠질 수 없는 필수 양념으로, 예전에는 상류층에서만 사용할 수 있는 고가의 향신료였다. 이슬람 세력에 의해 향료 무역길이 막히자, 새로운 항로를 향한 유럽인들의 대항해를 촉발할 만큼 후추는 세계사를 바꾸는 역할을 했다.     


베트남은 전 세계 후추 생산량의 50% 이상을 차지해, 커피보다 후추 생산 비율이 높다. 톡 쏘는 향과 맛이 강해서 스테이크 등 요리에 아주 좋다. 세계 최고의 품질에 가격까지 저렴해서 귀국 시 선물용으로 인기 만점이다. 흥미로운 사실은 대부분의 후추가 푸꾸옥에서 생산된다는 점. 우기가 짧고 1년 내 고온이 유지되는 날씨 덕분이다. 푸꾸옥 섬의 주민 40% 이상이 후추 재배 농가에서 일을 한다고 한다.            


         

우리와 다른 것을 주목하기     


인디카 쌀이나 로부스타 커피 품종은 우리가 평소 애용하는 게 아니다. 낯선 곳을 여행하면서 우리는 현지 사람들의 식성과 삶의 모습을 이해하게 된다. 음식문화에 담긴 독특함과 다양성은 이렇듯 자연스럽게 사람들의 살아가는 이야기로 다가온다. 알고 보면 음식과 요리야말로 인류의 거대한 교류와 혼종의 역사라는 걸 실감하게 되는 순간이다.


나와 다른 걸 보고 느끼며 경험하는 것이야말로 여행의 진정한 묘미가 아닐까. 내 안이나 주변에만 머물던 시선이 장소가 바뀌면서 세상을 보는 다른 시각을 얻는 것, 이럴 때 여행은 우리에게 스승이다. 푸꾸옥 여행은 내게 휴식과 치유의 시간뿐만 아니라 우리의 삶세상을 바라보는 색다른 기회를 제공했다. 갈수록 여행이 선물처럼 느껴진다. 이제 다음 여행은 어디로 떠나볼까.      




커피가 있는 아침 풍경. 푸꾸옥의 노보텔에서. 사진 ⓒ김성일






*표지 사진은 푸꾸옥의 노보텔 리조트 가든 풍경. 사진 ⓒ김성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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