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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성일 Jul 08. 2024

제주에서 천국과 지옥을 맛본 여행

친절이란 무엇인가

지난 5월에 아내와 제주를 다녀왔다. 최근 들어 매년 제주를 찾는다. 우리 부부의 여행법에 조금 특색이 있다면 3가지다. 1) 차량을 렌트하지 않고 뚜벅이 스타일로 이동하며, 필요할 땐 버스나 택시를 이용한다. 2) 여행 일정 내내 웬만하면 한 곳에 머물며 관광이나 체험보다는 ‘휴식’ 위주로 즐긴다. 3) 숙소 위치를 매년 오른쪽으로 이동하면서 제주를 조금씩 알아간다. 최근 애월, 함덕을 거쳐 올해는 카페와 서핑으로 유명한 구좌읍의 '월정리'에 머물렀다.


비행 편이 지연 출발해 제주에 도착한 시간은 저녁 6시가 넘었다. 숙소까지는 근 1시간이 걸리는 거리, 식사를 위해 찾은 공항 4층의 푸드코드는 제주 특유 메뉴가 다양했다. 매콤한 게 당겨 주문한 고등어조림이 한참을 기다려도 소식이 없었다. 의아한 마음에 종업원에게 물었더니 우리 음식이 다른 테이블에 잘못 서빙됐다는 것이다. 당황스러운 순간이었다. 외국인들이 많아 주문한 음식이 뭔지도 모르고 수저를 댄 모양이었다. 1차 잘못은 얼빠진 서빙 태도인데 어쩌랴. 음식이 나오기까지 한참을 더 기다려야 했다. 숙소까지 가는 시간을 생각하니 마음이 급해졌다. 아니다 다를까 밖에 나오니 택시 기다리는 줄이 장사진이다.



택시란 무엇인가, 친절이란 무엇인가


이번 여행에선 유난히 택시기사 운이 나빴다. '해녀들의 부엌' 공연에 다녀올 때는 괜찮았는데, 공항에서 숙소를 오가는 두 번의 택시가 최악이었다. ‘친절이란 무엇인가’를 생각하게 한 끔찍한 시간이랄까. 기다렸던 택시에 탑승하니 기사는 조폭이 연상되는 큰 덩치에 말투 또한 퉁명스럽기 짝이 없었다. 프로야구 중계를 틀어놓은 채 운전을 건성으로 했다. 월정리라는 행선지를 듣더니 우리 부부 면전에서 “볼 것도 없는데 사람들이 거긴 왜 가는지 모르겠다.”고 아주 황당한 말을 내뱉었다. “제주 사람들은 바닷가 말고 중산간을 좋아한다.”며 태연하게 말을 이었다. 한 공간에 있는 것 자체가 불편함을 유발하는 사람이었다.


돌아오는 날은 숙소에서 공항으로 갈 때 카카오택시를 불렀다. 외지에서 온 초보(?)들은 “제주에서도 카카오택시 콜이 될까?”고 묻는다는데, 답은 “카카오 본사가 제주에 있다.”라고 한다. 결론적으로 콜택시도 실패. 머리가 희끗희끗해 일흔은 족히 넘어 보이는 기사는 ‘날렵한 체구에 모사꾼(?)’ 같은 이미지를 풍겼다. 앞 유리가 가로로 길게 금이 간 상태의 택시는 첫눈에도 뭔가 분위기가 싸했는데, 극한의 ‘총알택시 운전’을 선보였다. 과속 질주에 빈틈만 보이면 차선 바꾸며 끼어들기, 급정거와 급출발은 예사였다. 속이 어지럽고 울렁거릴 정도의 곡예 탑승 체험이 따로 없었다.

* 불친절한 택시 대처 팁 – 가능하면 콜택시를 이용하고 후기나 피드백을 남긴다. 운전 중에는 최대한 정중하게 안전 운전을 요청하고, 트러블은 피한다. 나중에 관광 불편 신고 등 별도의 조치로 후환을 털어낸다. 실제 제주를 방문한 관광객들의 불편신고 분석 결과 교통분야가 40% 정도로 가장 많았다고 한다.



제주에서 최고로 친절한 사람을 만나다


첫날에 밤 10시가 임박해서 숙소에 도착했다. 월정리 해변에서도 동쪽 끝 한적한 곳에 위치한 펜션, 우리가 제주에서 가장 친절한 사람을 만난 곳이다. 올해 초 신축이라 그런지 모든 게 깨끗해서 처음부터 기분이 좋아졌다. 침구는 최고급 호텔 못지않게 깔끔하고 단정했다. 머무는 내내 2층에서 바라본 창밖으로는 아름다운 제주 바다가 꿈결처럼 아득히 펼쳐져 있었다.



2층 숙소에서 바라본 제주 월정리 앞바다 풍경



문제는 밤에 일어났다. 여행 한 주 전에 아내가 독감으로 고생하고, 완전히 회복하지 못한 상태. 사실은 여행을 갈 수 있을까 고민했는데, 우리는 이번 여행을 온전히 ‘휴식’에 초점을 두기로 했다. 그런 아내가 밤에 잠을 설쳤다. 평소에 침대에서 자주 뒤척이는 나의 잠버릇 탓도 있었지만, 결정적인 건 출입문 위쪽의 ‘비상구 표시등’이었다. 완전 소등상태의 한밤중에도 불빛이 밝아 방안이 훤한 까닭이었다. 뜻하지 않게 숙면을 방해한 복병이랄까. 독감 후유증으로 고생하던 아내의 컨디션은 급격히 다운되고 말았다.



친절은 과연 타고난 것일까


다음날 나는 급히 도움을 요청했다. 펜션의 여주인은 규정상 있어야 하는 비상등인데, 등에 암막을 설치해 보자고 했다. 즉시 사다리를 가져와 검은 비닐을 이용해 등 전체를 씌우니 거의 완벽한 해결. 소파나 바닥에서 자는데 필요한 여분의 덮는 이불도 바로 가져다준다. 타월도 여유 있게 제공하고 불편한 점이 있으면 언제든 불러달라며 웃는다.


부드럽게 미소 짓는 표정은 상대를 기분 좋게 하는 법. 하소연을 들어주고 응대하는 그녀의 반응이 정말 상대의 마음을 헤아리는 듯 우리에게 와닿는다. 펜션을 드나들 때마다 뭔가 도와줄 것이 없는지 맞이하는 자세가 친절이 몸에 밴 듯하다. 직업적인 것과는 다른 자연스러운 진정성이 느껴졌다.



제주에서 휴식과 치유의 시간을


제주에 머무는 동안 우리는 ‘서핑의 성지’라는 월정리 해변을 자주 걸었다. 여행하기 딱 좋은 계절, 자연이 주는 아름다운 풍경과 청량한 기운은 사람을 느긋하고 행복하게 한다. 여기저기 걷다가 카페와 식당, 소품 가게 등을 기웃거리며 맘에 드는 집 문을 열고 들어갔다. 바닷가와 반대쪽으로 발길을 돌리면 집과 담장, 밭과 들이 평화롭게 펼쳐졌다. 우리는 제주의 일상 속으로 천천히 들어간 듯 사람들의 사는 모습과 체취를 하나둘 기억 속에 담았다.


소박한 맛집도 몇 군데 찾아 즐겼다. 사람들이 북적북적, 관광지 느낌이 물씬한 지난해의 함덕과 달리 월정리는 번화하지 않고 여유와 편안함이 느껴졌다. 식당의 음식 가격도 합리적이고 대체로 분위기는 정갈했다. 1만 원 대 솥밥 메뉴에 빠져 두 번이나 찾은 집도 있었다.



전복 솥밥 한 그릇에 정성스러운 제주의 맛이 담겼다.



모든 여행은 특별하다


이번 여행의 하이라이트는 공연과 식사를 한꺼번에 제공하는 종달리의 ‘해녀의 부엌’. 가격이 조금 있는 패키지라 미리 시간을 예약하고 가야 한다. 실제 해녀들의 고단한 삶을 담은 공연과 직접 채취한 싱싱한 재료로 만든 식사. 다른 곳에선 경험할 수 없는 특별한 순간을 만들 수 있어 오래 기억에 남는다. 척박한 현실을 헤쳐온 해녀들의 삶을 보면 진정으로 제주를 지키는 사람들은 누구일까,라는 생각이 절로 든다.


여행에서 우리는 많은 사람을 만나고 다양한 일을 겪는다. 잊을 수 없는 최고의 멋진 순간이 있지만, 불편하고 피곤한 상황들도 마주친다. 이 모든 순간이 모여 우리의 여행을 만든다. 여행의 의외성은 우리의 삶을 활기차고 역동적으로 만들기도 한다. 변화는 늘 예측불가능한 법, 천국과 지옥의 친절을 맛본 이번 제주 여행은 그래서 특별하지 않을까.




5월의 아름다운 월정리 바다와 서핑하는 사람들





* 사진 ⓒ김성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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