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혐오하던 좀비영화는 어떻게 관객을 사로잡았을까
올해는 유달리 볼만한 영화가 많지 않은 것 같다. 예년에 비해 영화 관객이 크게 줄었다는 뉴스도 이어진다. 그래도 영화관 나들이를 즐기는 우리 부부는 매달 한 번 정도는 볼만한 영화가 없는지 뒤적인다. 사실 현실과는 거리가 있는 판타지형 영화를 그리 좋아하지 않는다. 보기에 섬뜩해 혐오감이 일어나는 공포영화, 특히 피비린내가 심한 좀비 영화는 질색이다.
근데 그런 영화를 봤다. 마침 새로 나온 좀비 영화의 인기가 심상치 않다는 소식이 눈에 띄었기 때문이다. 공포와 코미디가 적당히 섞인 영화려니 했다. 딱히 큰 기대는 없었다. 우연한 선택이 뜻밖의 횡재를 불렀을까, 영화관에서 우리는 최고의 시간을 보냈다. 오랜만에 재밌는 영화, 감동적인 영화가 무엇인지를 실감했다.
영화의 초반부는 좀비물 특유의 액션과 공포가 바짝 긴장감을 유발한다. 중간중간 코미디적인 요소와 웃음 폭발의 코드에도 흥겹게 빠져든다. 하지만 후반부로 갈수록 이야기는 전혀 다른 결로 흐른다. 점점 위기와 극단으로 치닫는 상황 속에서 좀비가 된 딸과 아버지가 마음을 나누는 장면은 관객의 눈시울을 붉힌다. 나도 모르게 대책 없이 눈물이 흘러내린다. 영화가 끝난 뒤에도 좀비 영화에서 느끼는 피와 공포, 단순한 생존 서사보다, 서로를 끝까지 붙잡은 두 사람의 이미지와 애틋한 감정의 깊이가 오래 여운으로 남는다.
배우들의 연기도 뛰어나다. 여름 극장가 흥행 보증수표가 된 조정석은 슬픈 상황과 위트를 능숙하게 넘나들며 시종일관 영화를 이끈다. 몸에 어떤 리듬을 간직하고 있는 듯 관객에게 즐거운 몰입감을 선사한다. 할머니(이정은)와 약사 친구(윤경호)는 웃음과 정겨움으로 우리 마음을 따뜻하게 한다. 정과 공동체가 살아있는 바닷가 마을 모습이 도시와 대비돼 효과는 한층 배가된다. 딸(최유리)과 애용이(야옹이)까지 연기 호흡이 척척이다. 모든 것을 총괄하며 영화의 재미와 완성도를 높인 필감성 감독의 역량에 감탄하게 된다.
영화는 우리에게 가족의 진정한 의미를 담담하게 묻는다. 특히 ‘사랑하는 사람을 어디까지 지킬 수 있는지’ 깊이 생각하게 한다. 영화 속 아버지는 좀비로 변한 딸을 살리기 위해 끝까지 포기하지 않는다. 대다수 사람이라면 각자의 생존이나 외부의 두려움 때문에 망설이는 순간이 있지 않았을까. 자연스레 가족이 과연 생물학적 의미를 넘어 ‘끝까지 함께하는 사람’인지 돌아보게 된다.
영화의 흥행 포인트는 좀비물이라는 껍질 속에서 인간미 넘치는 서사를 길어 올린 점이 아닐까 싶다. ‘가족이란 무엇인가’라는 의미의 확장성도 보여준다. 가족 영화 팬이 많은 이유다. 등장인물 다수는 알고 보면 혼자 살아가는 사람이다. 하지만 눈앞에 닥친 위기와 어려움 앞에서 그들은 하나로 뭉쳐 ‘조건 없는 사랑’을 실천한다. 행동은 무모하고 비이성적으로 보여도, 사랑이란 끝까지 함께하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란 것을 말한다.
영화나 드라마에서 좀비는 어떤 존재일까. 낯선 공포의 얼굴을 한 좀비는 우리가 피하고 싶은 두려움과 혐오의 상징이다. 문명의 붕괴와 인간성 상실, 현대사회의 극단적 병리 현상을 은유한다. 영화 <부산행>(2016)이나 드라마 <킹덤>(2019)처럼 좀비는 생존과 이기심, 권력과 부패, 인간의 어두운 욕망을 드러낸다. 또한 피와 공포가 난무하는 대규모 감염과 추격신, 섬뜩한 액션 장면이 이어지는 게 보통이다.
<좀비딸>은 다르다. 좀비는 어쩌면 우리에게 친근한(?) 존재다. 나의 소중한 가족이 좀비가 되고 그 좀비는 우리와 일상을 공유하며 살아간다. 이는 우리 주변에 가깝게 다가온 장애·질병·소수자에 대한 사회적 시선을 떠올린다. 코로나를 거치며 우리는 누구나 감염자가 될 수 있다는 것을 체험했다. 더 이상 좀비가 낯선 존재가 아니다. 영화에서 피와 액션 장면은 최소화하고 인간적인 교감과 밀도 있는 관계가 부각되는 이유다.
이 영화는 좀비라는 장르적 도구를 통해 가족의 본질과 우리 사회의 혐오 메커니즘, 그리고 인간관계의 가장 순수한 형태를 동시에 탐구한다. 좀비로 변한 딸을 지키려는 아버지의 모습은 비현실적이면서도, 어떤 의미에서는 우리 모두가 바라지만 감히 실천하기 어려운 사랑의 이상형처럼 보인다.
영화는 일단 재밌다. 지루하지 않다. 다양한 맛을 섞어놓은 듯한 만족감을 느낄 수 있다. 장르 팬이라면 색다른 시선을, 가족 영화 팬이라면 놀라운 감동을 경험할 수 있다. 무엇보다 하나의 질문이 오래 남는다. 나는 사랑하는 사람을 어디까지 지킬 수 있는가.
*표지 사진: 영화 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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