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을 읽고 5년만에 브런치 글 발행을 다시 시작했다
최근에 하고 싶은 게 2개 생겼다:
브런치에 꾸준히 글 발행하기
Karpathy의 Neural Networks: Zero to Hero 완주하기
나는 종종 하고 싶은 게 생겨서 신나게 시작했다가 이내 식어버리곤 한다. 최근을 되돌아보니 회사 일 외에 무언가를 완료한 기억이 잘 안 떠오르더라. 어떤 일이 하고 싶은 마음이 강렬해져서 이런저런 상상을 하며 신나하다가도 주말이 지나고 평일에 열심히 일을 한 뒤 다시 주말이 찾아오면, 지난 주의 뜨거웠던 열정은 이미 식어버려서 관둬버린다. 지난 몇년간 이런 일들이 수없이 반복된 것 같다. 매년 회고를 해보면 기억에 남는 건 관둬버린 것보단 해낸 것이다. 이젠 관두기보단 해내고 싶다.
과거의 실패 경험이 있다보니 이번에 하고 싶은 게 생겼을 때도 두려움이 앞섰다. '지금은 신나있는데 다음 주가 되면 식어버리면 어떡하지? 그래서 또 관둬버리면 어떡하지?' 더 이상 실패 경험을 반복하고 싶지 않았다. 작은 성공 경험을 쌓고 싶었다.
어떻게 하면 하고 싶은 걸 끈질기게 하면서 만족스러운 성과를 낼 수 있을까 고민해봤고, 실행력/꾸준함에 대한 팁을 좀 찾아볼까 하고 있던 차에 예전에 읽을 목록에 넣어뒀던 <시작의 기술>이 눈에 들어왔다. 저걸 읽으면 하고 싶은 걸 잘 해낼 수 있게 되지 않을까 하는 기대가 생겼다.
그렇게 <시작의 기술>을 읽게 되었다.
시작의 기술은 실용서다. 나는 구체적인 목적을 가지고 실용서를 읽는다. 책을 완독하는 것보다 목적을 달성하는 게 중요해서 책을 순서대로 읽지 않는다. 문장 하나하나를 열심히 읽지도 않는다.
목차를 둘러보고 내 문제를 잘 해결해줄 수 있을 것 같은 장(Chapter)을 골라서 먼저 읽어봤다. 내 눈에 들어온 장은 [Chapter 6. 만약 당신이 늘 아무 망설임 없이 눈앞의 과제를 공략한다면]였다. 하고 싶은 걸 하기 전에 망설이고 있는 상황이라서 썩 마음에 들었다. 뭔가 내게 영감을 주는 이야기가 있을 것 같았다.
모든 문장을 읽기보단 각 문단의 첫 문장을 읽으면서 빠르게 책을 훑기 시작했다.
6장을 읽으면서 인상깊었던 구절을 정리해봤다:
당신은 당신의 생각이 아니다. 당신 머릿속에 있는 것이 당신을 규정하는 게 아니다. '당신이 뭘 하는가'가 당신을 규정한다. 당신의 행동 말이다.
이 문장이 장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다. 진부하게 들릴 수도 있는 메시지인데, 저자는 반복적으로 '생각보다 행동이 중요하다'라는 메시지를 던지면서 행동의 중요성을 상기하게 만들었다. 장을 읽을수록 '그렇지. 행동이 중요하지. 잡생각은 떨쳐버리고 움직여야겠다'라고 생각하는 스스로를 발견할 수 있었다.
물론 올바른 기분이나 마음가짐을 가진다고 해서 나쁠 것은 전혀 없다. 하지만 가만히 앉아서 완벽한 기분이 되기를 기다린다면 아무것도 시작하지 못할 것이다. ... 어떤 영감이나 동기부여가 가끔씩 먹힐 때도 있지만 그런 것들은 변덕스런 친구와 같아서 당신이 원할 때 늘 나타나준다고 기대할 수는 없다
무언가를 하려고 책상에 앉았다가도 '오늘은 뭔가를 하기가 정말 싫다. 유튜브 보면서 리프래시를 좀 하고 시작해야지'라는 생각으로 1~2시간을 보내는 경우가 많았다. 도중에 의지가 생겨서 하려고 했던 일을 해낼 때도 있지만, 대개 '오늘은 컨디션이 영 안 좋네. 쉬는 날엔 쉬어야지'라며 책상을 정리하고 쉬러 가는 경우가 많았다.
간단히 말해, 행동을 하게 되면 다른 것을 생각할 시간이 없다. 무언가를 하느라 바쁘면 내면의 걱정과 부정적인 말에 집중하기가 힘들다. 중요한 것은 계기다. 일단 움직이기 시작하면 계속 움직이는 것은 어렵지 않다. 엄두가 안 나게 길어 보이던 길도 일단 속도가 나기 시작하면 흐릿하게 보인다.
돌이켜보면 기꺼이 할 마음이 없었음에도 타의로든 자의로든 일단 시작하니까, 몰입해서 계속 하는 스스로를 발견한 적도 있었다. 가장 쉬운 예는 운동이다. 헬스장에 가기 전에는 운동을 하기가 정말 귀찮았는데, 막상 헬스장에 도착하고나면 빨리 운동을 시작하고, 운동을 하다보면 지칠 때까지 하면서 운동을 잘 마무리하게 되고, 이내 무척 상쾌한 기분을 만끽하게 되는 경험. 운동을 해본 사람이라면 느껴봤을 것이다.
가만히 앉아서 완벽한 기분이 되기를 기다린다면 아무것도 시작하지 못한다. 당장 기분이 안 나더라도 일단 시작해야 한다. 그러면 우리는 계속 움직이게 된다.
다음번에 혹시 조금이라도 부정적인 생각을 경험하거나 느끼게 되면 즉시 다음 행동으로 옮겨가라. 그 생각과는 독립적으로 행동하라. 더 구체적으로는 자동으로 떠오르는 생각이나 느낌에 지배되지 말고, 당신에게 가장 도움이 되는 방식으로 행동하라.
실용적인 행동 지침이다. 무언가를 하려고 할 때 오만가지의 생각이 떠올라서 시작이 지연되는데, 그럴 때마다 생각을 잠시 묻어두고 일단 행동하는 게 중요하다. 행동할 때 비로소 변화가 시작된다.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의심과 공포가 생긴다. 행동하면 자신감과 용기가 생긴다. 두려움을 정복하고 싶다면 집에 앉아서 생각만 하지 말고, 나가서 바쁘게 움직여라." -데일 카네기
어떤 일을 하려고 할 때 그 일을 하지 않을 이유들이 자꾸 떠오르다가, 이내 그 일을 할 필요가 없다고 느끼게 된다. 시작도 못하고 관두게 된다. 나는 그런 경험을 많이 했다. 생각을 그만하고 일단 움직이는 용기가 필요하다.
좋아하는 영화 <인턴>의 시작 파트, 은퇴한 노인인 벤의 이야기가 떠올랐다:
"The problem was, no matter where I went, as soon as I got home, the nowhere-to-be thing hit me like a ton of bricks. I realized the key to this whole deal was to keep moving. Get up, get out of the house, and go somewhere. Anywhere."
문제는 제가 어딜 갔든 집에 도착하면 제가 존재할 곳이 없다는 사실이 충격을 준다는 거예요. 이 문제를 해결하는 데 중요한 것이 계속 움직이는 것이란 걸 깨달았어요. 일어나서, 집 밖으로 나가서, 어디로든 가는 거죠.
중요한 것은 계속 움직이는 것이다. 잡생각이 나를 지배하게 하면 안 된다.
6장을 읽다보니 어서 움직여야겠다는 마음이 샘솟았고 조금 고양된 상태로 다음 장을 살펴봤다. 다음 장은 [Chapter 7. 아무도 모른다. 당신이 뭘 할 수 있고, 뭘 할 수 없는지]였는데 부단함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것 같았다. 꾸준함에 대한 내용을 다룰 것 같아서 더 읽어봤다.
부단하기 위한 핵심 열쇠는 눈앞의 문제에 집중하는 것이다. 거기에 온 관심을 집중시켜라. 모든 걸 잃은 것처럼 보일 때조차 앞으로 전진하는 사람이 되라. 그런 후에 다음 장애물로 넘어가면 된다. 그리고 이번에는 그 장애물이 해결될 때까지 거기에 온 관심을 집중시켜라. 그런 후에 다음 장애물, 다음 장애물, 다음 장애물이 있을 것이다. 이렇게 한다면 내가 어디로 가고 있는지 의문을 가질 필요가 없다. 앞으로 몇 마일을 더 가야 하는지 걱정되지도 않을 것이다.
눈앞의 과제를 할 때는 딴 생각하지 말고 과제에만 집중해라. 한 번에 하나의 일만 함으로써 생산성을 높이는 할일 관리 프레임워크인 GTD(Get Things Done)의 철학과 비슷한 결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A를 하는데 B, C, D에 대한 생각을 하고 있으면, A를 끝낼 수가 없다. 무언가를 부단히 해내려면 당장 눈앞의 과제에 집중해야 한다. 내가 하고 싶은 걸 완수하지 못하는 이유도 다양한 잡생각이 엄습하기때문인 것 같다. A를 하다보면, B도 하고 싶고, C도 하고 싶고, ... 그러다보면 그냥 D를 하는 게 낫겠다며 A를 관둬버린다. 이런 걸 반복하다가 돌아보면 결국 아무 것도 해낸 게 없다는 걸 깨닫게 된다. 과거의 순간들이 주마등처럼 지나간다.
왜 다른 생각을 하게 되는 걸까? 어찌 보면 자연스럽다는 생각도 든다. 나는 한정된 시간을 최대한 잘 쓰고 싶다. 그런 마음에 A를 하면서도 '사실은 B, C, D가 더 좋은 선택지가 아닐까? A를 끝내고 나서 후회하면 어떡하지? 시간을 잘 써야 하는데...'하는 걱정이 드는 것이다. 이렇듯 기회비용에 대한 생각을 떨쳐내는 건 어려운 일이다. 하지만 기회비용을 걱정하다가 아무 것도 안하는 것보다는 뭐라도 하는 게 낫다는 생각으로 하나에 집중해보는 수밖에.
체육관에 한 번이라도 가본 사람이라면 운동의 결과가 즉시 눈에 보이지 않는다는 것을 안다. 런닝머신에서 30분을 뛰었다고 딴 사람처럼 보이지는 않는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당신이 하고 있는 일이 효과가 없다는 뜻은 아니다. 당신은 발전하고 있다. 운동을 한 번 할 때마다, 한 걸음 내디딜 때마다, 한 번 움직일 때마다, 한 번 행동할 때마다 당신은 조금 더 좋아지고, 조금 더 가까워지고 있다. 그렇게 운동을 이어오던 어느 날, 문득 거울을 보며 이렇게 생각하게 될 것이다. '와!'
단기간에 성과가 나지 않더라도 꾸준히 하는 게 중요하다는 메시지. 고개가 끄덕여지는 부분도 있지만 주의해야 할 부분이 있다. 애자일 이야기 블로그의 달인이 되는 비결에서 이런 이야기가 나온다:
"달인이 되는 비결은 매우 단순합니다. ...매일 세수하고 양치하듯이 꾸준하게 반복하는 것이 바로 그것입니다."
어떤 취지의 이야기(전문성 획득에 있어 반복의 중요성)인지 이해가 갑니다만, 한번 좀 삐딱한 시선에서 바라보도록 하겠습니다.
왜 우리는 (거의) 평생 동안 세수와 양치질을 꾸준하게 반복했건만 세수와 양치의 달인이 안되고, 예컨대 10년이 지나도 여전히 양치질을 제대로 못해서 치과에 갈까요("이 쪽 이빨은 하나도 안닦으시나 봐요" 같은 소리를 듣고요).
무언가를 그냥 매일 한다고 해서 나아지지 않는다. 만약 매일 헬스장에 가서 동일한 무게를 들면 근육이 커질까? 그렇지 않다. 매일 더 높은 무게를 들어야 근육이 커진다. 위 글의 저자인 김창준님의 페이스북 포스팅에서 매일 무언가를 하면서 나아지고 있다는 마음을 '허황된 안심'이라고 표현한 걸 본 적이 있다. 잔인한 말이지만 진실이라고 생각한다. 꾸준하게 반복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피드백을 받으면서 의도적으로 노력하는 것도 중요하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의도적 수련에만 너무 집착하는 것도 경계해야 한다. 의도적 수련이란 걸 알게 된 후부터 무엇을 하든 의도적 수련을 시도하는 경향이 생겼는데, 낯선 주제에 대해서 의도적 수련을 하는 건 정말 어려웠다. 그래서 결국 시작도 못하고 관둬버린 적이 여럿 있다. 처음부터 의도적 수련을 하려고 하면 난이도가 너무 높아져서 시작부터 관둬버리게 되더라. 허황된 안심을 경계하는 건 중요하지만, 처음에는 일단 꾸준히 반복하는 게 중요하다. 그렇게 해서 익숙해지고 나면 의도적 수련을 통해서 더 나아갈 수 있다.
문득 '내가 이 책을 왜 읽고 있었지? 무엇을 얻으려고 읽은 거였지?'라는 생각이 들었다.
내 목표는 이거였다:
실행력을 높이고 싶다. 구체적으로는 최근에 하고 싶어진 '브런치에 꾸준히 글 발행하기', 'Karpathy의 Neural Networks: Zero to Hero 완주하기'를 하기 위한 실행력을 얻고 싶다.
일단 이 책의 리뷰를 브런치에 올려야겠다고 생각했다. 리뷰를 쓰려고 하니 이런저런 생각이 떠올랐다:
'아직 6,7장밖에 읽지 않았는데 나머지 장을 읽어야 하나?'
'어떤 전략으로 리뷰를 쓰지?'
'타겟 독자는 어떻게 해야 하지?'
벌써부터 잡생각이 많아진다는 걸 인지하고, 일단 글쓰기를 냅다 시작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쓰다보면 책을 더 읽어야 할지 이대로도 충분할지 알 수 있지 않을까? 하면서. <시작의 기술>을 읽은 덕분에 생각보다 행동을 먼저 하게 된 것 같다. 그렇게 쓰다보니 글을 완성하게 되었다. 나머지 장을 읽을 필요가 없었고, 타겟 독자나 전략 같은 것도 중요하지 않았다는 걸 깨달았다. 내 목표는 높은 퀄리티의 글을 쓰는 게 아니고, 일단 글을 다시 발행해보는 거였고, 그러려면 글을 완성하는 게 가장 중요했다.
강의를 생각하니 또 생각이 잔뜩 떠올랐다:
'다른 더 좋은 강의가 있지 않을까?'
'기본적인 수학을 알아야 한다는데, 수학 다 까먹었는데 수학부터 다시 공부해야 하나?'
'최근에 강의 완주한 기억이 없는데 완주하기 위한 좋은 전략을 찾아봐야 하나?'
이런 생각할 시간에 일단 1강을 들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생각이 나를 지배하기 전에 행동을 하는 게 중요하다.
<시작의 기술>이 던지는 메시지는 간단하다. '생각보다 일단 행동하는 게 중요하다'. 이런 간단한 메시지를 얻기 위해 책을 읽었어야 했을까? 잘 모르겠다. 하지만, 책을 읽고 나는 이 글을 발행하게 되었다. 브런치에 마지막으로 글을 쓴 게 5년 전이고, 지난 5년간 '블로그 써야 하는데'라는 생각만 수없이 했는데, 이번엔 실제로 글을 발행했다. 이 책은 내게 변화를 만들어주었다.
이 책의 영향력이 얼마나 오래 지속될지 모르겠지만, 브런치 발행의 첫 걸음을 떼게 만들었다는 점에서 만족스럽다. 이번 발행을 계기로 계속해서 글을 쓰고 싶다. NN 강의도 완주하고 싶다.
생각이 아니라 행동이 나를 규정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