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의 시선과 비난, 그리고 외로움
코로나 시대에 많은 사람들이 지쳐가고 있다. 빨리 치료제와 백신이 개발되어 다시 예전의 세상이 왔으면 하지만, 현실은 빨라야 내년 후반이고 항체형성이 어려워 백신개발도 어렵다는 소식이 들리고 있다. 어쩜 지금의 이 비정상을 정상으로 인식하고 살아야 할 지 모른다. 그게 무섭다.
유발 하라리가 개인정보의 보호와 건강 중에서 강제로 택하는 사회가 도래했다고 하더라. 누구나 건강을 택하겠지만, 그래서 내 체온까지도 국가기관에서 검열을 하게 되는 이 현실은 썩 유쾌하지만은 않다. 나의 개인정보 보호는 나의 자유를 위한 것인데, 건강이라는 이슈에 가려져 강제로 열려지고 있다. 필요하다면 그래도 된다. 하지만 그걸로 인해 모든 사람들이 나를 비난한다면 나는 왜 그들 앞에서 희생양이 되어야 하는 것인가?
희생양이 되어 그들의 안주거리로 씹혀져서 이 병이 없어진다면 다행이라도 될 듯. 하지만 씹혀지고 버려지고 잊혀질 뿐이지 이 상황이 나아지지 않는다. 그것이 대다수의 우울증이나 스트레스를 푸는 방법이 될 수 있을까? 하지만 혐오와 비난은 더 짜증을 유발할 뿐이지 카타르시스로 이어지지는 않더라. 여기서 얻어지는 건 '나는 저런 사람은 아니다'라는 안도감이다. 남을 혐오하고 비난해서 얻어지는 안도감이 어찌 행복할 수 있으리. 나도 저 상황이 되면 비난 받을 것이 뻔한데.
신천지가 그랬고, 대구가 그랬고, 이태원이 그랬고, 동성애가 그랬고, 교회가 그랬고, 인천의 강사가 그랬고, 방문판매업자가, 택배가 특히나 쿠팡이 그랬다. 이들은 누군가의 부모이고, 자식이고, 손주일 뿐이었고, 그냥 지나가는 사람이었고, 옆에서 밥을 먹었을 뿐이었다. 그 누구도 코로나에 걸리고 싶어서 걸린 게 아닌데 늘 비난은 그 '개인'으로 향한다.
'왜 그런 곳을 갔대'
'좀 이럴 때는 집에 있으면 안되나?'
'탁구는 왜 치러 가는데?'
'학생이 놀러다니고 말이야'
주말에 특별한 일이 없으면 그냥 집에만 있는 나로서는 좀 억울한 노릇일 수도 있다. 나는 이렇게 방콕하는데 누군 저렇게 다니고 말이지. 하지만, 내가 방콕하는 건 코로나를 퍼뜨리지 않기 위해서가 아니라 나를 보호해서이다. 그게 왜 다른 사람과의 비교가 되고, 다른 사람을 욕하는 근거가 될 수 있을까? 적어도 나는 방콕을 해서 안전하지 않은가?
코로나에 걸린 지역이 우리 지역 근처까지 오고, 슬슬 코로나가 내가 사는 권역으로 다가올 수록 언젠가는 걸리겠구나 라는 생각이 그치질 않는다. 만약 걸리면 나 뿐만이 아닌, 가족들까지 다 피해를 볼 텐데. 아니 내가 다니는 회사까지 피해를 줄텐데 그 모든 것을 어찌 감당해야 한단 말인지. 코로나보다 더 힘든 건 바로 그런 것들에 대한 걱정이다.
실은 내가 코로나에 걸린 건 내가 부주의 하기 때문이 아닌데.
사람들은 그걸 왜 내가 부주의해서 걸렸다고 생각할까?
아. 오해는 하지 말자. 내가 코로나에 걸렸다는 이야기는 아니니. 다만, 이 생각을 모두가 한다면, 이제 그런 비난들은 멈춰야 하는 게 아닌지. 학교에서 코로나 걸리면 학교를 멈춰야 하고, 교회에서 걸리면, 대중교통에서 걸리면, 택배회사에서 걸리면 모두 멈춰야 한다면, 내가 걸렸을 때 나를 지우는 것도 다들 용인할 지도 모른다. (하긴 격리병동으로 옮기는 순간이 지우는 것이긴 하네) 왜냐하면 우리는 우리의 건강이 중요하니까. 이게 과연 민주주의고 최대다수의 행복일까?
어쩔 수 없다고? 아니. 비난과 혐오가 언젠가 나한테 돌아올 수도 있다고 생각하면 쉽게 행동하지 않을거다. 내가 그런 상황에서 받고 싶은 걸, 우리 모두가 지금 해야 하지 않을까? 코로나에 걸린 사람에 대한 안타까움과 연민과 격려, 그리고 잘 치료될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 지금은 그런 것들이 좀 더 필요할 때다. 내가 환자라면 그런 걸 받고 싶었을 것 같다. 지금의 나부터, 과거의 흔적은 잊고, 다시 시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