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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영환 Oct 26. 2020

밟지마라! 꿈틀한다.

열등감과 수치심으로 가득했던 마음의 공간

아버지 서운하시다.



소파에 앉아 있다가 봉변을 당했다. 그냥 멍하니 천장만 바라본다. 좀 전까지 나와 깔깔깔 웃으며 장난치던 딸이 갑자기 펑펑 울기 시작했다. 팔이 아프다며 제 엄마를 부른다. 아내가 놀라 황급히 달려온다. 엄마 품으로 쪼르르 달려가서는 아빠가 팔을 세게 잡아서 아팠다며 일러바친다. 나는 억울하다. 가만히 소파에 앉아 책을 읽고 있었는데 내 목덜미에 올라타고선 먼저 장난을 걸어온 건 딸이었다. 나는 거기에 반응해주려고 팔을 살짝(?) 잡아당긴 것뿐인데 난처한 상황에 처했다. 아내가 나를 노려본다. 그러고는 한 마디 잔소리를 한다.

"아빠! 딸이잖아요. 좀 섬세하게 대해 주시라고요. 우악스럽게 하지 말라고요."

요지는 내가 딸의 마음을 제대로 읽지 못한다는 거다. 나도 장난친 거라고 (항변해 보지만 소용없다.)


그때 아버지도 이렇게 서운해하셨다. 초등학교 시절, 저녁이면 퇴근하시는 아버지를 현관문 앞에서 기다리곤 했었다. 초인종이 울리면 제일 먼저 달려가 아버지를 맞이했다. 아버지가 퇴근길에 사 오신 야식 봉지를 받아들고선 강아지 새끼처럼 폴짝폴짝 뛰어다녔다. 야식은 나의 입을 항상 즐겁게 해주었다. 아버지의 인쇄소가 있는 충무로에는 찹쌀순대, 찐만두, 계란빵 등 맛있는 야식거리가 아주 많았다.

언젠가부터 아버지의 귀가 시간이 들쭉날쭉하기 시작했다. 늦은 밤까지 기다려도 아버지를 못 보고 잠드는 날들이 이어졌다. 오랜만에 야식 봉지를 들고 귀가한 아버지. 기다림에 지친 나는 환영 의식(?)을 모두 생략하고 아버지 손에 들린 야식 봉지를 홱 낚아챘다. 봉지 속에는 생과자 몇 개만 덜렁 들어 있었다. 나는 눈동자만 데굴데굴 굴려댔다. 나의 뾰로통한 반응에 눈치를 보던 아버지가 면도도 하지 않은 꺼칠한 턱을 내 볼에 비비며 장난을 걸어왔다. 사포질 당하는 느낌이었다. 나는 그악스럽게 비명을 질러 벌이고 말았다.

분명 그때 아버지도 서운해하셨다. 아빠가 되어보니 이제 알겠다.




사내들의 세계에서 최상위 포식자가 되기 위해선 피비린내 진동하는 숱한 싸움에서 살아남아야 한다.


중학교 때와는 달리 고등학교는 한동네에 사는 아이들만 모아 놓은 곳은 아니었다. 처음에는 서로서로 낯설어했다. 각자 출신 중학교를 중심으로 그룹을 지었다. 중학교 때 싸움 꽤 했다는 애들은 자신의 세력을 확장하기 위해 군소 그룹들을 흡수하기 시작했다. 점심시간이면 힘의 이동을 가름할 수 있을 정도였다. 한동안 나는 어느 그룹에도 속하지 못했다. 같은 중학교 출신의 아이들은 나를 불편해했고, 다른 중학교 출신들은 왠지 모르게 경계했다. 그렇다고 수백 명 학생 중 딱 두 명 밖에 없는 재수생, (나 말고 또 다른) H와는 절대 손을 잡을 수는 없었다. (착해 보이는 얼굴에 잠자리 안경을 쓴 H는 얼핏 보면, 굉장히 공부 잘하는 모범생처럼 보였다. 실제로 성격은 정말 착했지만, 성적은 내가 좀 더 위였다. 미안! H.) 그것은 H와 나, 둘 모두에게 좋은 일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냥 서로의 존재만으로 이 험난한 학교생활에 위로가 되어주자는 마음으로 H와는 늘 거리를 두었다.


혼자만의 시간이 길게 이어졌다. 마음 착한 짝꿍을 만나 운 좋게 점심시간에 혼자 밥먹는 신세는 겨우 면할 수 있었다. 그런데 평소 나에게 심드렁하던 애들도 다른 태도를 보이기 시작했다. 먼저 내 옆에 와서 소풍 가는 날 동행을 청하기도 하고, 저가 싸 온 간식을 같이 나눠 먹자면서 살갑게 다가왔다. 그들의 호의가 처음에는 당황스러웠지만, 나도 외로웠던 터라 참으로 오랜만에 소속감을 느낄  있어서 좋았다. 알고보니 그러는 데에는  이유가 있었다. 나에 대한 이상한 소문이 시작이었다. 소문에 따르면, 내가 원래 공부를 잘했는데 중3 초에 큰 싸움에 휘말려서 학교를 거의 못 나갔고, 그러면서 급격히 성적이 떨어져 고입선발고사를 망쳤다는 거다. 싸울 때 주먹도 잘 치긴 하는데 그것보다 발차기가 아주 예술이라는 거다.

소문의 내용을 들어보니 딱히 부인하고 싶진 않았다. 스토리에서 뭔가 전설의 싸움꾼 같은 냄새도 나고, 그 때문에 다른 애들이 쉽게 시비를 걸어오지 않을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더군다나 쭈구리 중학교 시절과는 달리 고등학생이 된 나는 반에서 키가 가장 컸다. 누구도 소문의 진위를 따지려 들지 않을 거라 생각했다.


내 예상은 보기 좋고 빗나갔다. 소문은 소문이 아닌 실제가 되어 나를 곤란한 상황으로 몰아넣었다. 싸움 꽤 한다는 놈들은 모조리 나를 못마땅하게 생각했고, 최상위 포식자가 되려는 놈들은 나의 피 냄새를 맡기 위해 대놓고 시비를 걸어왔다. 한 살 어린 동생들(그중에는 중학교 후배도 있었다.)에게 "에이 왜 그래? 그러지 마 친하게 지내자 우리!"라며 비굴하게 굴 수도 없는 노릇이고, 강하게 맞붙자니 지금껏 싸움이라곤 주일학교 친한 친구 S와의 말싸움이 전부였던 나로서는 주먹다짐만큼은 정말 피하고 싶었다. 고민이 깊어졌다. 학교를 그만두고 검정고시를 볼까도 생각했지만 우리집 형편을 생각하면 그것은 좋은 선택사항이 아니었다. 일단 시빗거리를 만들만한 상황을 최대한 피했다. 늦잠을 자서 지각을 할 것 같은 날에는 아예 학교 주변을 빙빙 돌다가 늦게 교실에 들어갔고, 수업 시간 사이마다 있는 10분 쉬는 시간에는 엎드려 잠을 자는 시늉을 했다. 그렇게 포식자들의 시야에서 벗어나나 싶었는데 올 것이 오고야 말았다. 체육 시간에 농구도 같이하고 나름 친분이 있다고 생각했던 C가 느닷없이 나에게 주먹을 날렸다. "형이면 다야 이새끼야?"라며 엎드려 자고 있던 나를 두들겨 패기 시작했다. 영문도 모른 체 맞고 있는데 재수생 H가 갑자기 나타나 뒤엉킨 C와 나를 뜯어말렸다. 때마침 쉬는 시간이 종료되어 과목 선생님이 교실에 들어오셔서 각자의 자리로 돌아갔다. 나는 분하고 쪽팔려서 고개를 들 수가 없었다. 수업 시간 내내 고개를 책상에 묻고 진정하려 했지만 할 수가 없었다. 맞은 부위는 불에 덴 듯 화끈거렸고, 온몸은 격한 노동을 마친 뒤처럼 푸들푸들 떨고 있었다. 오만가지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나 같은 초식성 인간에게 도대체 왜?" 조용히 흐르는 눈물을 닦았다. 수업 시간이 끝나고, 쉬는 시간을 알리는 종이 다시 울리자, 심장으로 가는 혈관이 수런거리기 시작했고, 손바닥에선 땀이 차올랐다. C는 이번엔 나를 확실히 때려 눕히겠다는 듯 달려들었고, 나도 가만히 맞고 있을 수만은 없어 녀석을 향해 사자후를 내뿜었다.

"지렁이도 밟으면 꿈틀댄다고 이새끼야!"

나는 달려오는 C를 향해 거침없이 하이킥을 날렸다. '퍽' 묵직한 타격음이 노래방 에코처럼 울려 퍼졌다.


학교를 마치고 C와 나는 화해를 했다. 나의 입술은 '달려라 하니'의 고은애처럼 부풀어 있었고, 녀석의 코는 코주부원숭이를 생각나게 했다. C는 포식자가 되기 위해 나를 노린 것이 아니었다. 나에 대한 소문은 들어본 적도 없다고 했다. 그저 내 말에 갑자기 화가 나서 주먹이 나간 거라고 했다. 나는 어떤 말이 녀석을 화나게 한 것인지 알 수 없었다. 우린 둘 다 서로의 상처는 각자 치료하자고 말하고 헤어졌다.

집에 와보니 아버지가 벌써 와 계셨다. 시선을 피해 방으로 들어가려는데 아버지가 나를 불러 세웠다.

"얼굴이 왜 그래? 싸웠냐? 아버지가 물었다.

"아뇨, 농구 하다가 상대편 팔꿈치에 맞았어요. 괜찮아요." 나는 퉁명스럽게 대답하고 방으로 들어갔다.

잠시 후 아버지가 노크도 없이 방문을 열고 들어오셨다. 아버지의 손에는 작은 약상자가 들려있었다. 나는 그 상황이 너무 어색하고 불편해서 두 손으로 마른 세수를 했다. 질량을 가진 고요가 아버지와 나 사이에 내려앉고 있었다.




퇴근길 매일 아버지 손에 들려있던 야식 봉지가 사라진 이유를 나중에 알게 되었다. 아버지는 사업이 어려워지면서 빚더미에 앉자, 어떻게든 가장으로서 살아보겠다는 마음으로 밤마다 대리운전을 하셨다. 어린 나는 대리운전이 뭔지도 제대로 모르면서 그냥 느낌만으로 아버지를 창피하게 생각했었다. 어느 순간 아버지도 그걸 느끼셨던 것 같다. 아버지와 나는 꽤 오랜 시간 서로를 불편해하며 살았다. 아버지를 향한 나의 시선이 전방위적이었다면 좋았겠지만 안타깝게도 나는 매우 제한적인 시선으로 아버지를 보면서 살았었다. 나 역시 자랑스러운 아들이 아니었는데도 말이다. 그래서 아버지께 죄송하다. 너무 오랜 시간을 그렇게 흘려보낸 것 같아서...

세상에 밟히지 않기 위해 꿈틀대는 모습은 경이로운 것이다. 그것이 최소한의 움직임일지라도 꿈틀댈 수 있다는 것은 아직 살아있다는 희망이기 때문이다.


딸은 아빠 껌딱지. 그래서 난 딸바보 아빠다. 딸을 위해서 아빠는 세상의 밟힘에 꿈틀댈 준비가 되어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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