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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eurat May 26. 2018

<스탠바이, 웬디>,우리 모두의 이야기

우리는 각자의 "스탠바이"를 외친다

*브런치무비패스 시사회 관람 후 작성한 후기입니다.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영화를 보기 전 영화에 대해 검색해봤다. '덕후 소녀'의 이야기라는 평이 많았다. 이 영화는 '덕후 소녀'의 이야기라기보다는 그냥 우리 모두의 이야기다. 


웬디는 요일별로 입는 옷을 정해놓는다. 엄청난 '스타트랙' 팬이라서 대본을 통째로 외우고 있다. 사람들과 눈을 마주치는 것을 꺼린다. 현재 그는 재활센터에서 생활중이다. 영화 초반까진 그가 굉장히 '특별'(Stand out)하게 그려진다.


하지만 영화를 볼수록 그가 '특별'하다는 생각이 흐려진다. 그의 모습에서 자신의 모습을, 친구의 모습을, 주변 사람들의 모습이 보인다. 그저 똑같은 사람일 뿐이다. 자신이 정한 룰에 맞춰 생활하고, 좋아하는 것을 위해 혼자 여행을 떠나고, 돈을 벌고 일상을 채우기 위해 아르바이트도 한다. 그저 남들보다 눈 마주치기가 좀 더 힘들고,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재주가 있으며, 생각을 정리할 때 반드시 메모장에 글로 남겨야 하는 사람일 뿐이다.  


웬디는 자신이 좋아하는 스타트랙 팬 시나리오 공모전에 작품을 내기 위해 '무모한 여행'을 홀로 떠난다. 샌드위치와 물을 챙기고, 꼭 필요한 메모장과 아이팟을 챙기고서. '절대 건너지 말라'라고 들은 마켓 거리 건너편을 건너 LA로 가는 버스를 탄다. 영화는 웬디가 용기를 내지 않았다면 절대 경험하지 못한 일들로 채워진다. (좋은 일도, 위험한 일도, 화나는 일도 있다.) 






웬디의 여행이 주는 메시지는 간단하다. 여행을 떠났다면, 그 자체가 중요하다는 점. 영화의 마지막에서 웬디는 작품전에서 결국 떨어진다. 영화 초반에는 웬디가 반드시 그 상을 탈것만 같고, 타야만 할 것 같다. 하지만 웬디의 여행을 함께하면서(보면서) 점점 '수상'에는 관심이 적어진다. 그 여행 과정 자체에 집중하게 된다. 영화 막바지에 탈락을 알리는 편지가 내레이션으로 깔린다. 하지만 그다지 실망스럽지도, 슬프지도 않다. 


과정 자체를 즐기면 비교적 결과에 덜 연연하게 된다. 웬디 또한 탈락 소식을 듣고 크게 실망하지 않는다.(내가 느낀 바로는) 그런데 만약 웬디가 제시간에 원고를 우편으로 보낼 수 있었고, 마냥 기다렸다면 "채택되고 싶다"란 마음이 너무 커서 크게 실망하고 좌절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일이 잘 안 풀려서(?) 제시간에 보내지 못했고, 무모한 여행을 떠났기 때문에 그녀는 수상 대신 다른 것들을 얻었다. 친언니와 서로 진심을 확인하기도 했고 혼자서도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얻기도 했다. 낯선 이들과 소통하는 법도 배웠다. 


그토록 보고싶던 조카도 만난다



<스탠바이, 웬디>는 우리 모두의 이야기다. 웬디가 재활센터에서 생활한다는 점, 조금 특이한 행동을 한다는 점을 보면 그가 자폐증을 가지고 있다고 짐작할 수 있다. 하지만 영화 내내 '자폐'라는 단어는 단 한 번도 나오지 않았다.(내 기억엔) 웬디는 그저 우리처럼 원하는 것을 위해 무모한 일을 벌일 줄 아는 사람일 뿐이다. 






영화의 원제는 <Please stand by>다. "Please stand by"는 웬디가 발작을 일으킬 때, 심하게 긴장했을 때, 호흡이 가빠질 때 외치는 일종의 '주문'이다. 


웬디가 혼자 여행을 떠나는 모습을 보면서 우리는 우리의 모습을 본다. 살면서 우리는 오롯이 혼자 떠나야 하는 순간들을 맞이한다. 면접을 보러 가는 길, 중요한 미팅을 가는 길, 혼자 유학을 떠나는 길, 큰 시험을 보러 가는 길 등 수없이 많다. 정말 오롯이 '나'에게 달린 그 순간들. 엄마도, 친구도, 애인도 그 어떤 타인도 날 대신할 수 없는 그런 순간들. 그런 날이면 만원 버스에서도  홀로 있는 기분이 들곤 한다. 그 중압감과 부담감, 외로움을 견디게 하는 힘은 우리 안에 있다. 


취업, 합격 등 각자가 원하는 것, 좋아하는 것, 이루고자 하는 것을 위해 우리는 "please stand by"를 외치며 숨을 고른다. 우리는 모두 각자의 '주문'이 있다. 누군가는 부모님을, 신을, 혹은 무언가를 찾는다. 웬디처럼 자기 자신에게 말을 걸기도 한다. 


주문을 외쳐도 두렵고 외롭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선조들의 철학에서 그 힌트를 얻어본다. 유아독존 개인의 자아를 강조한 서양철학과 달리 동양철학은 '생명 원리를 품은' 인간의 '자연과의 합일'을 궁극적인 선으로 봤다. 인간은 혼자여도 혼자가 아니다. 내 안에 우주가 있고 우주의 모든 생명체는 연결되어 있다. 


문득 박지원의 <연암집>의 '독락 재기獨樂齋記'가 떠오른다. 박지원은 '독락 재기'에서 이렇게 말했다. 


"우주 전체는 하나로 소통되어 있다. 사람의 몸과 마음은 생명 원리를 머금고 있다. 강건 불식한 생명의 기운을 나의 몸의 기운으로, 세상을 내려다보거나 하늘을 우러러보거나 부끄러움이 없다. 비록 홀로 서있다 하더라도 두렵지 않고, 그 이치가 마땅히 그러하고, 진실로 지극한 성실성을 홀로 따를 뿐이다."


그리고 그는 "이런 사람은 어딜 가서 무얼 하든 즐겁다(樂)"고 했다. 즐거운 이는 진정한 본성을 향해, 오로지 자 자신의 실현을 위해 힘쓸 수 있다. 그리고 나아가 진정한 즐거움은 '독락(独;홀로 독樂)'이 아니라 '중락(衆;무리 중樂)'이라고 말한다. 홀로 당당하고 즐거운 사람은 더불어 누리는 즐거움도 누릴 수 있다. (혹은 만든다.) 스스로 두려움 없이 이치를 행한다면 경계가 사라지고 밖으로 나가 타인과 어울릴 수 있다는 이야기다. 






매일매일 우리는 홀로 여행을 떠난다. 등교도, 출근도 혼자 하는 여행의 시작이다. 문득 외롭고 두려울 땐 "스탠바이"를 외치자. '무모한 여행'을 훌륭히 마친 웬디를 떠올리면서. 











*개인적인 해석이 담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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