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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eurat Jun 17. 2018

<아직 끝나지 않았다>, 누군가에겐

영화 <아직 끝나지 않았다(Jusqu'a La Garde)>

*브런치 무비 패스를 통해 시사회로 만나본 작품 리뷰입니다.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저는 오늘 꽃을 받았어요

-폴레트 켈리(Paulette Kelly)

저는 오늘 꽃을 받았어요.
제 생일이거나 무슨 다른 특별한 날이 아니었어요.
우리는 지난밤 처음으로 말다툼을 했지요.
그리고 그는 잔인한 말들을 많이 해서

제 가슴을 아주 아프게 했어요.
그가 미안해하는 것도,
말한 그대로 뜻하지 않는다는 것을 전 알아요.
왜냐하면 오늘 저에게 꽃을 보냈거든요.

저는 오늘 꽃을 받았어요.
우리의 결혼기념일이라거나

무슨 다른 특별한 날이 아닌데도요.
지난밤 그는 저를 밀어붙이고는 제 목을 조르기 시작했어요.
마치 악몽 같았어요.
정말이라고 믿을 수가 없었지요. 온몸이 멍투성이가 되어 아침에 깼어요.
그가 틀림없이 미안해할 거예요.
왜냐하면 오늘 저에게 꽃을 보냈거든요.

저는 오늘 꽃을 받았어요.
그런데 어머니날이라거나 무슨 다른 특별한 날이 아니었어요.
지난밤 그는 저를 두들겨 팼지요.
그런데 그전의 어떤 때보다 훨씬 더 심했어요.
제가 그를 떠나면 저는 어떻게 될까요?
어떻게 아이들을 돌보죠?
돈은 어떻게 하구요?

저는 그가 무서운데 떠나기도 두려워요.
그렇지만 그는 틀림없이 미안해할 거예요.
왜냐하면 오늘 저에게 꽃을 보냈거든요.

저는 오늘 꽃을 받았어요.
오늘은 아주 특별한 날이었어요.
바로 제 장례식 날이었거든요.
지난밤 그는 드디어 저를 죽였지요.
저를 때려서 죽음에 이르게 했지요.
제가 좀 더 용기를 갖고 힘을 내서 그를 떠났더라면
저는 아마 오늘 꽃을 받지는 않았을 거예요.      


13년간 가정폭력에 시달리다 도망친 미국 여성의 시다. 마지막 문단에서 오늘이 자신의 '장례식'이라고 말하며 자신의 비극적인 상황을 담담하게 서술한다. (실제로 이분은 도망쳐서 가정폭력을 당하는 여성들을 돕는 일을 하셨다.) 가정폭력은 우리와 아주 가까운 곳에서 일어나는 끔찍한 일 중 하나다.  그리고 지금도 아직 끝나지 않았다. ('끝난 적이 없다'란 표현이 더 맞을지도 모르겠다)










<Custody, 2017>




이 영화는 끝나지 않은 이야기를 담고 있다. 영화 초반에는 이혼 소송 중인 부부의 모습을 보여주면서 어느 쪽 진술이 사실인지 갸우뚱하게 만든다. 분명한 건 아이들이 아빠를 몹시도 두려워하고 싫어한다는 것. 아이들이 계속 거짓말을 한다는 것. 그렇게 영화는 어딘가 잘못된 가족의 모습을 차분히 보여준다. 


남편은 아내와 아이들을 사랑한다. 아이들을 보고 싶어 하며, 아내와 지냈던 옛날을 그리워한다. 하지만 아내는 남편과의 접촉을 극도로 꺼린다. 아이들은 아빠와 보내는 시간을 두려워한다. 


영화가 진행될수록 관객들은 남편의 폭력성을 깨닫게 된다. 남편이 아내와 아이들을 대하는 방식이 무언가 잘못되었음을 느낀다. 남편의 관심과 사랑도 결국 폭력임을 목격한다. 점점 나도 모르게 남편의 등장에 겁이 난다. 


영화는 부부의 양육권과 관련한 재판 장면으로 시작한다. 양측의 이야기와 아이들의 이야기를 듣는다. 관객은 마치 판사의 입장에서, 어느 쪽이 진실을 이야기하는지 마음속에서 저울질하게 된다. 법원은 결국 남편에게 접근금지명령을 내리지 않으며, 아이들을 따로 만날 시간을 허락하기도 한다. 영화가 진행될수록 남편의 폭력성을 목격하게 되면서 과연 법이 우리 생활 모든 곳곳을 보호할 수 없음을 다시금 깨닫는다. 법률과 합리성이 최우선시되는 사법체계에서 어쩌면 '진실'은 무시되는 경우가 많다. 아내와 아이들이 맞아왔다는 사실, 앞으로도 남편이 가족을 크게 해할 수 있다는 '진실'을 법원은 볼 수 없었다. 법원은 그들의 공포를 '끝내지' 못했다. 


영화 막바지의 롱테이크로 촬영된 장면은 극도의 '두려움'을 느끼게 한다. 심지어 장총을 들고 와 현관문에 구멍을 내고 부수는 남편이라니. 아니, 더 이상 이 사람을 '남편'이나 '아버지'로 불러도 되는 걸까. 그리고 어둡고 좁은 욕실 욕조에서 파르르 떨고 있는 아내와 어린 아들. 한밤중에 남편이 불쑥 찾아와 벨을 눌러 잠에서 깼을 때부터, 관객들은 그들이 느낄 공포를 함께 경험한다. 사정없이 벨을 누르고, 계단을 올라와 문을 두드리고, 소리를 지르고, 결국 총을 쏴서 문을 부숴버릴 때까지 관객들은 이 모든 광경을 지켜보는 건너편 집 노부인의 심정이 된다. 지금 당장 내가 전화해서 경찰에 신고해주고 싶을 정도다. 공포에 떨고 있는 아내를 계속해서 달래주고 상황을 보고받는 전화 건너 경찰에는 안도감과 동시에 간절함을 투시한다. 


그리고 결국, 위험한 바로 그 순간 나타난 경찰에 긴장이 풀리고 안심을 하게 된다. 남편이 이송되고, 경찰들이 아내와 아이들을 챙긴다. 하지만 마지막 카메라를 바라보는 아내와 아이의 눈에서 공포는 아직 사라지지 않았다. 마지막 장면은 복도 건너편에서 현장을 바라보는 앞집 노부인의 시각으로 보인다. 노부인의 점점 닫히는 문에도 여전히 그들은 두려운 표정을 하고 있다. 마치 "아직 우리의 공포는 끝나지 않았다"라고 말하는 듯하다.


영화의 제목인 <아직 끝나지 않았다>와 마지막 장면이 일맥상통한다. 영화에서 다루고 있는 가정폭력 문제는 영화가 끝났다고 끝나지 않는다. 현실에서 계속되기 때문이다. 혹은 영화에서도, 그 뒤가 어떻게 될지는 아무도 모른다. 남편이 감옥에 가지 않는다면? 감옥에 간다 해도, 출소하게 되면? 직접적 폭력이 없어도, 그동안 상처받은 아이들의 미래는? 아내의 트라우마는? 이들은 평생 공포에 떨며 살지 않을까?


하지만 앞집 노부인이 점점 문을 닫았듯, 대부분의 사람들은 타인의 '아직 끝나지 않은' 이야기들에 서서히 관심을 끊을 수밖에 없다.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내 일'이 아닌 이상 끊임없는 관심을 쏟기는 어렵기 때문에 우리는 수많은 '아직 끝나지 않은' 문제들, 사건들, 사람들의 상처에 무관심해진다.  


바단 가정폭력뿐만 아니라 이 세상의 많은 문제들이 아직 끝나지 않고 진행 중이다. 언론에서 반짝 화제가 되어 잠시 대중의 관심을 받았어도 사실 당사자들은 여전히 고통받고 있는 일들도 많다. 혹은 오랜 시간 사람들의 관심을 받았지만 그래도 여전히 진행되고 있는 문제나 사건들도 있다.


한 젊은 사람이 '세월호 리본'을 가방에 달고 있는 것을 보고 어느 할아버지가 "언제 적 일인데 아직도 이걸 달고 있나"며 호통을 치는 것을 봤다는 친구의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그 할아버지에겐 '끝난'일일지 모른다. 하지만 유가족들을 포함한 수많은 사람들에게 그 일은 아직 끝나지 않은 일이다. 아니, 평생 끝날 수 없는 일이다. 자식을, 친구를, 형제를 잃은 일이 어떻게 완벽히 '끝날' 수 있을까. 나에겐 '끝난'일이 누군가에는 '여전히 진행 중'일 수 있다. 하지만 우리는 일상 속에서 이 사실을 자주 잊는다.  


언젠가 넷플릭스에서 <팔려가는 소녀들: 추악한 진실(원제 : Jane Doe)>이라는 다큐를 봤다. 온라인을 통해 아동 성매매의 노예가 된 미국 소녀들의 실화를 다룬 굉장히 무겁고, 참담한 다큐였다. 다큐의 마지막은 결국 온라인 성매매 단속 법안이 통과되지 않았고, 여전히 싸움을 해나가고 있다는 식으로 끝났다. 


나는 이 다큐를 굉장히 진지하게 봤다. 보고 나서도 한참은 마음이 무거웠다. 명백한 범죄를 눈감고, 자본의 논리에 잠식돼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는 사법부에 대한 불신과 분노가 몰아쳤다. 하지만 이러한 감정이, 상태가 오래가진 않았다. 내가 취한 액션은 다큐와 관련한 외신 기사들을 찾아 읽거나, 주변 사람들에게 이 다큐를 추천한 정도다. 그리고 그렇게 이 이야기는 나의 '인식'에서 사라졌다.


그리고 얼마 후 어쩌다 한 기사를 발견했다. (전혀 상관없는 주제와 관련 검색을 하다가)

http://news.mt.co.kr/mtview.php?no=2018022809455651971


다큐 속 피해자들이 그렇게나 간절히 싸워나가던, 그 '온라인 성매매 단속 법안'이, 결국 미 하원을 통과했다는 기사였다. 소름이 돋고 뭉클했다. 언론에 알려지고, 다큐가 나오고, 사람들에게 알려지고, 지구 건너편 내가 방안에서 그 다큐를 볼 때까지, 그 사람들의 싸움은 끝난 적이 없었다. 내가 다큐를 끝내고(다 보고), 잊었을 때도 여전히 누군가는 싸우고 있었다. 아직 끝나지 않은 이야기였다. 누군가에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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