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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oram Lee Jun 27. 2019

안녕 대한민국

미국으로 돌아왔다. 혼잡한 공항에서 빠져나와 한적한 로빈 드라이브로 들어서니 집에 온 것이 실감이 난다. 이방인 생활도 적응이 되었는지 이제 이 곳이 집 같아 몸과 마음이 편하다. 바로 출근을 하느라 아직 짐도 완전히 풀지 못했다. 짐가방은 제쳐두고 들고 온 마음 보따리부터 하나둘씩 풀어본다. 만났던 얼굴들과 기울인 술잔들을 하나하나 되새겨보니 입가에 미소가 번진다.


한국을 찾아 가족과 친구들을 많이 만났다. 그들과 맛있는 것을 먹고 노는 것은 참 즐거운 일이다. 그중에서도 내 나라의 이곳저곳을 내 두발로 거니는 일은 또 얼마나 가슴 벅찬 일인지 모른다. 사실 사람들은 이제 온라인에서도 쉽게 연락을 주고받을 수 있고 금전적 여유가 있는 친구들은 미국에서도 만날 수 있다. 내가 사는 이 곳 남가주의 한식은 한국 못지않게 맛있다. 그래서 한국음식이 사무치게 그리운 것도 아니다. 하지만 내가 살던 곳의 땅을 직접 밟고 거니는 것은 물리적으로 내가 그 자리에 가지 않는 이상 어려운 일이다.


한국에 있는 동안 시차 적응을 제대로 하지 못했다. 툭하면 꼭두새벽에 일어났다. 다시 잠을 청해보려 해도 여의치 않아 그냥 일찍이 길을 나섰다. 고요한 새벽이다. 새벽 냄새가 난다. 건조한 캘리포니아 공기만 접하다 초여름으로 접어드는 한국의 이슬 젖은 새벽 공기를 마시자니 감회가 새로웠다. 발길 닿는 곳으로 북촌 한옥마을도 가보고, 해방촌, 남산 서울타워로도 올랐다. 


네모 반듯하게 잘 정리된 애비뉴, 드라이브, 스트리트 사이로 차만 타고 다니다 구불구불 후미진 골목들과 오르막 내리막이 쉴 새 없이 나타나는 서울의 길들을 걷자니 나는 잠시 황홀경에 빠진다. 한발 한발 내딛을 때 온몸으로 느껴지는 땅의 기운이 오랜만에 온 나를 반기는 것도 같고 새침하게 쳐내는 것도 같다. 미국에서는 하도 걷지 않아 그런지 얼마 가지 않아 쉽게 발이 아파 온다. 발은 아프지만 걷고 걸으며 서울 거리를 내 발바닥으로 기억하고 싶어 열심히 또 걷고 걸었다. 


아무도 깨지 않은 빈 골목에서  나는 우두커니 서서 그 길 위에 삶들을 상상해본다. 잠시 후, 쓰레기 수거차가 다니며 널브러져 있는 종량제 봉투를 수거한다. 형형색색의 등산복을 입고 아침 일찍이 운동을 가는 사람들도 보인다. 시간이 갈수록 아침 출근하는 사람들의 빠른 발걸음들이 여기저기서 잦아진다. 아침을 여는 사람들이 보이자 반가운 마음이 든다.


길 위에서 마주친 사람들은 이 길을 나보다 자주 밟고 수도 없이 들락거리는 사람들일 것이다. 나에게는 한걸음 한걸음이 가슴 벅차지만 그들에겐 그저 갈 길에 불과하다는 듯 사람들은 바쁘게 움직인다. 그 길 위에 눈길 한번 주지 않는다. 그런 사람들이 나는 부러워 자꾸만 쳐다봤다. 그들은 이 길 위에서 시작하고 끝나기도 하고 사랑도 하고 이별도 하고 살기도 하고 죽기도 하고 여러 이야기를 남길 것이다. 나는 더 이상 그 길 위에 남길 이야기가 많이 없어 괜스레 서글퍼진다. 


나는 아직도 걷고 싶은 두고 온 길들이 많다. 같이 오르내리고 길을 걷다 막다른 골목에 들어서 막막해 보기도 하고 정처 없이 후미진 골목을 떠돌다 너를 만나 웃고 떠들며 큰길로 들어서는 그런 일상이 나는 몹시 그립다. 


다시 그 길 위에 설 때까지 안녕 대한민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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