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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대문

by 성기노


야간진사의 반경을 조금씩 넓혀가고 있습니다. 오늘은 동대문으로 돌아봤습니다. 밤이면 동대문은 전국 각지에서 모여든 도매상들로 불야성을 이룹니다. 도로마다 차가 점거해 교통체증이 유발되기도 하지만, 경제의 실핏줄같은 도매상들의 '장사 의지'를 어떻게 하지는 못합니다. 생존의 현장입니다. 급하게 야식을 먹는 사람들, 차를 기다리며 전표를 세는 사람들, 구매한 옷들을 도시별로 분류하는 사람들, '문신'이 온 몸을 뒤덮은 사람들, 급하게 명품 짝퉁 좌판을 펴는 사람들, 이불누더기를 둘러쓰고 어디론가 걸어가는 걸인, 밤샘커피를 파는 아주머니의 심드렁한 눈빛 등을 뒤로하며 카메라를 들었다 놨다 수십번을 반복합니다. 도저히 그 치열한 삶의 현장에 '한가한' 카메라를 들이댈 용기를 내지 못합니다.


그래도 미련을 버리지 못하다가, 텅 빈 수레 옆에 앉아 콜을 애타게 기다리는 몇 명의 짐꾼들을 발견하곤 이내 찍기를 접었습니다. 피곤에 쩐 그들의 모습이지만 눈빛만은 내 카메라를 집요하게 응시하는 것 같습니다. 반바지에 샌들을 신고 카메라를 손에 쥔 늙수그레한 아저씨의 유유자적이 그들에게는 탐탁치 않게 보일 것이라는, 괜한 자의식으로 카메라를 아예 숨기고 그 현장을 빠져나왔습니다. 나 또한 사진 열정만큼은 짐꾼 아저씨들의 삶에 대한 애착 못지 않다고 말하고 싶었지만, 변명같습니다.


사진에 대한 확고한 철학을 다지는 과정이 취미진사의 내공쌓기 과정같기도 합니다. 어떤 이의 칼날같은 시선에 목이 베일지라도 목숨 걸고 이것만은 찍어야겠다는 '무지막지한' 열정과, 그런 장면과 조우하면 망설임없이 셔터를 누르는 용맹한 프로의 자기확신을 갖출 때까지 아마추어 진사의 소심한 스트리트 포토는 계속될 거 같습니다. 사진찍기를 하면서 내 허술한 의지의 박약성을 발견하며 좌절할 때가 많습니다. '좋은 사진을 찍으려면 한발짝 더 다가서라'는 말이 아직은 낯설게만 다가옵니다. 사진은 어쩌면, 타인을 통해 나를 찍는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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