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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민형 May 16. 2016

[영화] 멜랑콜리아

아름다운 우울


아름다운 

우울



 아리스토텔레스는 “철학과 시, 그리고 예술에 특출 난 사람은 모두 우울증의 경향을 가지고 있다.”고 말했다. 우리가 아는 많은 예술가들이 극도의 우울증을 겪은 것처럼 우울증은 창조성을 발휘한다. 인문학이 인간을 탐구하여 진리를 찾으려고 하는 것은 인간 안에 소우주가 있기 때문이며, 소우주를 간직한 인간이 자신의 내면 깊숙한 곳으로 내려가 성찰하게 될 때 예술의 창조적인 영감을 찾을 수 있다. 그리고 인간을 그 깊숙한 내면까지 이끄는 것은 고독에서 오는 우울이다.

 영화 <멜랑콜리아>는 우울증을 단순히 현대사회가 낳은 사회적인 병폐로 치부하는 것이 아니라, 고독한 인간 내면에 자리 잡고 있는 우울증을 아름답게 그려내고 있다. 비교적 긴 러닝타임에도 불구하고, 인물들을 따라다니는 카메라의 움직임과 편집만 놓고 보면 영화의 전개가 느리다고 할 수는 없다. 하지만 인물들이 처한 상황에서 오는 답답함과 우울 때문에 영화를 보는 내내 느릿느릿하고 묵직한 느낌을 받게 된다.

 영화의 초반 8분 동안 관객을 압도하는 차갑고 아름다운 영상은 영화의 내용을 함축적으로 전달해주면서 관객들을 <멜랑콜리아> 특유의 극도로 우울한 분위기로 끌어들인다. 이 장치는 영화의 후반부에 가서도 그 힘을 발휘하는데, 멜랑콜리아 행성이 지구와 충돌하는 장면을 이미 앞에서 본 관객들은 영화 속 인물들이 어떠한 행동을 하더라도 그들의 앞날에 아무런 희망도 갖지 않게 되면서 그 우울함을 공유하게 된다. 

 1부는 동생 저스틴의 결혼식을 중심으로 이야기가 진행된다. 카프카의 소설에서 그랬듯이 결혼이라는 것은 사회제도로의 편입을 나타낸다. 저스틴은 진정한 사회구성원이 되는 것을 축하하러 온 많은 사람들이 모인 결혼식에서 오히려 엄청난 고독과 우울증을 겪으면서 비이성적인 행동을 일삼는다. 그런 그녀의 우울증을 진정으로 이해해주고 보듬어 주는 사람은 없다. 그리고 화려하고 거창한 대저택에서의 호화스러운 결혼식과 저스틴이 우울증에 잠식되어가는 모습이 교차되면서 저스틴이 느끼는 고독은 더욱 극대화된다.

 언니 클레어를 중심인물로 진행되는 2부에서는 저스틴을 잠식시켰던 멜랑콜리아 행성이 지구를 향해 다가온다. 극도의 우울증으로 기본적인 생활조차 힘들어했던 저스틴은 멜랑콜리아 행성이 가까이 올수록 평온을 찾는다. 죽음, 즉 끝이 가까워지고 있다는 것을 알아챘을 때 그녀는 진정으로 그 우울을 아름답게 받아들이고 멜랑콜리아 행성과 사랑을 나누게 된다. 세상과 동떨어진 대저택에서 그들이 죽음과 멸망을 받아들이는 모습은 가히 아름답다. 그리고 이러한 죽음이 아름다울 수 있는 것은 영화에서는 나타나지 않았지만 죽음을 통한 갱생으로 새로운 탄생을 기대할 수 있기 때문이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시학> 중에서도 <비극>만 남아있는 것은 극단적인 감정의 침식이 인류를 이끌어왔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그리고 많은 위대한 예술작품들을 보면 알 수 있듯이 우리는 우울증에 빚을 지고 있다. 우울증은 인간의 내면을 잠식시켜 불행한 죽음으로 이끄는 것이 아니다. 창조를 연유하는 자기성찰과 내면의 죽음은 바로 우울증을 통해서 이루어진다. 그렇기 때문에 우울증은 아름다운 것이다.  


2012. 05.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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