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 크리스마스 여행(뉴욕+워싱턴)
여행 Day 6.
아침 일찍 일어나 집에 갈 준비를 하려고 했으나 전날 수영의 여파인지 아이들이 좀처럼 일어나지 못했다. 작은아이는 밤새 잠꼬대를 해댔고, 그런 아이의 손과 발을 주물러주면 조금 편하게 잠들 수 있을까 싶어 밤새 아이의 손과 발을 찾았다.
집으로 가면서 우리의 계획은 두 가지였다. 뉴욕 맨해튼 오른쪽에 위치한 오이스터 베이(Oyster Bay)에 갔다가 근처 찜질방을 가는 것!
오이스터 베이를 간 이유는 그곳에 빌리 조엘 거리가 있다는 걸 알았기 때문이다. 오이스터 베이는 빌리 조엘의 고향으로 그가 오픈한 바이크샵 (21th Century Cycle)이 있다고 했다.
빌리 조엘이 문을 샵이지만 그가 앉아 있진 않을 테니 이게 다 무슨 소용인가 싶기도 하지만 그냥 여기까지 온 김에 가보고 싶었다.
사실 이번 여행에서 뉴욕 북쪽에 있는 웨스트체스터 공동묘지에 가보고 싶었다. 그곳에 김환기 화백과 김향안 여사의 묘지가 있기 때문이다.
이번 여름에 프랑스 여행을 하면서 김환기 화가의 글을 읽었고, 김향안 여사의 책을 장바구니에 담으면서 이들의 삶과 작품이 더 궁금해졌었다. 그냥 할머니 묘소에 가는 느낌으로 가보고 싶었지만 아이들에게 설명할 방법이 없어 다음을 기약해야 했다.
그에 반해 빌리 조엘 고향을 가는 건 설명하기가 쉬웠다. 큰아이를 출산할 때 18시간 진통을 하고 결국은 수술을 해야 했는데, 그 지옥의 18시간 내내 들었던 노래가 빌리 조엘의 피아노맨(Piano Man)이었다.
가사가 하나도 귀에 들어오지 않는 시간이었기에 그저 경쾌한 하모니카 소리가 나를 구해줄 것 같았고, 곧 아이의 울음소리가 들리고, 아이를 가슴팍에 끌어 안고 기쁨의 눈물을 흘리며 온 마음으로 춤을 출 것 같은 상상을 하게 만드는 노래였다. (현실은 차디찬 수술실에 들어가 하반신 마취를 하고 앙드레 가뇽의 슬픈 음악을 들으며 수술을 받아야 했지만 말이다)
오이스터 베이로 가는 길엔 차가 많아 가다 서다를 자주 반복했고, 덕분에 우리는 빌리 조엘 노래를 더 오래 들을 수 있었다.
도착하니 바이크 샵은 문을 닫았고, 빌리 조엘 거리라 쓰인 표지판과 문 닫은 샵을 사진에 담고 바로 옆 갤러리에 들어갔다.
아무 생각 없이 들어간 갤러리였는데 뭔가 ‘히피’ 느낌이 물씸 풍기는 그림이 잔뜩 전시되어 있었다. 갤러리에 있는 분이 설명하시길, 1960년대, 1970년대 히피 문화를 대표하던 밴드들의 콘서트 포스터를 전시하는 곳이라 했다. 싸이키델릭 락(psychedelic rock)이었다. 미국에 유일하게 문을 연 갤러리라고 하니 이런 즐거운 우연이 있나 싶었다.
싸이키델리 락 콘서트 포스터를 둘러보고 길 건너 중고품샵(Thrift shop)에 갔다. 우리 식구는 중고품 가게 구경을 아주 좋아한다. 수십 년 전 배경의 영화에나 등장할 만한 옷이나 그릇을 구경하는 것도 재미있고, 귀여운 소품이나 희귀한 디자인의 옷이나 액세서리를 사는 재미가 쏠쏠하기 때문이다.
어린이의 공룡 장난감 하나, 작은 도자기 소품과 스푸 그릇 두 개, 남편의 청바지 하나를 7달러 45센트에 구입했다.
오이스터 베이를 떠나 우리의 여독을 풀어줄 한국식 찜질방으로 향했다. 찾아보니 뉴저지에는 한국식 찜질방이 여러 군데 있었고, 아이들도 입장이 가능한 곳이 있어 부푼 가슴을 안고 갔다.
겨울에 찜질방과 목욕탕, 혹은 온천이 주는 즐거움이 엄청나지 않은가! 우리도 한번 즐기고 싶었다. (금전적 대가는 진심 상당헀으나 한 번쯤 해볼 만하다 싶다)
기대와 달리 우린 찐하게 즐기진 못했다. 아이들은 찜질방이 너무 덥다며 아이스룸에 가자고 했고, 찜질방에서 밥을 먹고 나니 큰 아이는 이제 더 이상 뜨거운 방에는 들어갈 수가 없다며 목욕탕에 가자고 했다.
나와 남편은 땀을 빼지도 못한 채, 이마에 두어 방울 묻은 땀을 닦으며 목욕탕으로 향했다. 다행히도 큰아이와 나는 온탕과 건식/습식 사우나와 냉탕을 조금 즐길 수 있었다. 하지만 작은 아이는 옷을 벗고 목욕탕에 들어가는 것도 힘들어했고, 온탕이 너무 뜨거워 들어갈 수가 없었고, 결국 남편과 작은 아이는 샤워만 부랴부랴 마치고 나왔다고 했다.
찜질방을 엄천 기대했던 남편은 정작 그곳에서는 땀 한 방울 제대로 흘리지 못한 채, 옷을 입고 신발을 신는 동안 땀구멍이 열렸는지 그제야 땀을 쏟았다는 슬픈 이야기를 전했다.
빌리 조엘의 고향 오이스터 베이와 찜질방을 다녀와 저 멀리 뉴욕 맨해튼이 보이는 다리를 건너며 집으로 향한다.
아무도 아프지 않고 다치지 않고, 많이 웃고, 이야기도 많이 나눈 시간을 보냈다. 뉴스를 보니 뉴욕 타임스퀘어에는 신년 카운트다운을 알리는 행사 준비로 다들 분주했다.
우리의 이번 여행은 우리가 보낸 2023년과 묘하게 닮았다. 계획했지만 계획대로 되지 않았고, 계획하지 않았지만 즐거웠고, 울다가 웃었고, 웃다가 진솔한 이야기를 나눴다.
내년에는 또 어떤 일들이 펼쳐질까. 나도, 아이들도 얼마나 자랄까. 기대된다.
한 시간만 더 달리면 집이다. 잘 놀고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