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아멜리 Amelie Jun 21. 2024

02. 한국 스쿨존도, 미국 스쿨버스도 필요한 건 하나

미국에서 겪은 스쿨버스 관련 법규... 아이들이 안전하면 어른들도 안전해

도로 위에서 마주한 스쿨버스와의 첫 만남


자동차로 아이의 등교를 도와주고 집으로 돌아오는 날이었다. 삼거리에서 좌회전해서 집을 향하는데 반대 차선에 스쿨버스가 정차해 있었다. 등교 시간이니 아이들을 태우는 중이겠거니 생각하며 스쿨버스를 지나쳐 집으로 향했다.


스쿨버스를 지나가자마자 '빵' 하는 경적이 들렸다. 반대 차선에 있는 스쿨버스가 나를 향해 소리를 내지른 것 같은 느낌, 내가 뭔가 잘못한 것 같았다(직감이 이렇게 무섭다). 집에 도착하기 전까지 계속해서 내가 뭘 잘못했기에 그랬을까, 생각하고 또 생각했다. 그때 어렴풋이 남편이 나에게 미국에서 운전할 때 주의하라고 해준 말이 생각났다. 바로 '스쿨버스!!!'


싱가포르에서 차 없이 5년을 살았기에 미국 보스턴으로 이사를 하며 아주 오랜만에 운전대를 다시 잡았다. 그 무렵 남편은 미국에서 운전할 때 유념해야 하는 점 세 가지를 알려줬다. 


첫째 미국에는 비보호 좌회전이 많다. 둘째 STOP(스톱) 사인이 보이면 일단 무조건 멈춘다. 마지막으로 스쿨버스! 정차하는 스쿨버스가 내 앞에 있거나 반대 차선에 있는 경우 무조건 정차한다.


스쿨버스가 내 앞에 정차해 아이들을 태우거나 내려준다면 거리를 두고 정차해야 한다. 반대 차선에서 다가오는 스쿨버스가 정차할 경우도 마찬가지다. 스쿨버스 위쪽에 달린 라이트가 깜빡깜빡하고 STOP(스톱) 사인이 표시된 푯말이 버스 운전자 쪽에서 열리면 스쿨버스가 곧 정차하고 아이들이 타거나 내린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렇게 스쿨버스가 정차하면 이내 아이들이 내려 길을 건너 집으로 향하거나, 길 건너편에 있는 아이가 버스 쪽으로 이동해 탑승하기에 주변 모든 차량이 스쿨버스가 다시 움직일 때까지 그대로 서 있는다. 


동네를 다니다 보면 수시로 ‘STOP’ 사인을 만날 수 있다. 멈춘 후 속으로 하나, 둘, 셋 세고 다시 출발하는 일상에 익숙해졌다.


그러니까 그때 나는 스쿨버스 관련 법규를 어긴 셈이었다. 나의 반대편 차선에 스쿨버스가 정차해 STOP(스톱) 푯말을 펼치고 있었으니 아이가 탑승 또는 하차하고 있다는 뜻이었고, 나는 반드시 멈춰 서서 스쿨버스가 다시 움직일 때까지 기다렸어야 했다. 이런 기본적인 규칙을 어긴 채 '쌩' 하고 달려가 버렸으니 "빵" 하는 소리를 들을 수밖에.


이날 이후 아이들 등하교 시간 무렵 스쿨버스가 눈에 띄면 다른 운전자들이 어떻게 행동하는지 유심히 살펴봤다. 버스를 따라오던 차들은 아주 여유 있게 차량 간 간격을 두고 정차했고, 반대 차선을 달리던 차들도 모두 정차한 후 스쿨버스가 이동하는 것을 보고 움직였다. 


스쿨버스가 멈추면 바퀴가 달린 모든 이동 수단은 정지


이 일이 있고 난 뒤 미국 스쿨버스 관련 법과 스쿨버스 승하차 관련 사고에 대해 찾아봤다.


매사추세츠주 Malden police 홈페이지에서 찾아볼 수 있는 스쿨버스 안전 관련 법규


매사추세츠에서는 "SCHOOL BUS"라는 문구가 적힌 표지판이 있고 전면과 후면이 번갈아 깜박이는 빨간색 신호등이 장착된 차량에 접근할 때" 추월하는 것이 불법입니다. 위반 시 최소 $250의 벌금이 부과됩니다. 반복 위반자는 최대 $2000의 벌금이 부과되고 면허가 정지될 수 있습니다.

스쿨버스나 통학 차량이 적색등이 깜박이고 정지 표지판이 확장되어 있으면 완전히 정지해야 합니다. 그것은 법입니다. 도로의 어느 쪽을 여행하고 있는지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표시등이 깜박임을 멈추거나 정지 신호가 접힐 때까지 정지 상태를 유지하십시오. 이 법의 유일한 예외는 스쿨버스가 통행 방향 사이에 견고한 장벽이 있는 분리된 고속도로의 반대편에 정차한 경우입니다. 이 경우 중지할 필요가 없습니다.


미국의 스쿨버스 승하차 사고 현실


미국의 스쿨버스 관련 이슈를 이야기하는 스쿨 플릿(School Fleet)에 따르면, 2021-22학년도에 약 489,748대의 노란색 스쿨버스가 매일 학생들에게 교통 서비스를 제공했고, 약 2,050만 명의 초중고생이 통학버스를 타고 등하교했다고 한다. 


수백만 명의 미국 어린이들이 학교에 가는 가장 안전한 방법의 하나가 스쿨버스임에도 불구하고, 모든 교통사고 사망자의 1% 미만이 스쿨버스에 탑승한 어린이와 관련이 있다. 이 중 스쿨버스 인근에서 이동 중인 운전자가 정지 신호 경고를 따르지 않거나, 스쿨버스 운전자 눈에 어린이가 보이지 않는 사각지대에서 더 많은 부상과 사망이 발생한다고 한다. 


2011년부터 2020년까지 스쿨버스 관련 사고를 살펴보면, 스쿨버스 주변 보행자의 사망자가 스쿨버스 탑승자보다 많은 것을 알 수 있는데 이는 스쿨버스 승하차 시 발생하는 사고가 더 잦았음을 의미한다. 학생들이 스쿨버스를 이용할 때 가장 위험한 부분은 버스에 탑승하고 있는 것이 아닌 버스를 타고 내리기 위해 버스에 접근하는 것이 된 셈이다.


코비드로 인해 학교가 문을 닫은 2020년을 제외하면 스쿨버스 관련 사망자 및 부상자 숫자가 괄목할 만큼 줄어들지 않았음을 알 수 있다. 출처 Injury Facts


미국의 스쿨버스 관련 상황을 살펴보다 우리나라 초등학교 인근에서 일어나는 크고 작은 교통사고들이 떠올랐다. 올해 봄에도 등교를 하던 초등학생이 만취한 운전자의 차에 치여 사망하는 사건이 있었던 만큼 아이들의 등하굣길이 아직도 안심할 만큼 안전하지 않다는 생각을 줄곧 했다.


스쿨존에서 지켜야 할 내용은 운전하며 숙지해야 하는 다른 규칙들과 별반 다르지 않다. 그럼에도 학교 인근의 스쿨존에서 아이들의 안전이 보장되지 않는 이유는 뭘까. 안전에 대한 운전자들의 인식이 턱없이 부족한 것은 아닐까. 잊을 만하면 학교 근처 등굣길에서 일어나는 교통사고, 우리는 왜 아이들의 생명을 지키기 위해 법을 만들어 놓고도 이 법을 지키지 않는 것일까?


2018년 이후 스쿨존내 어린이 보행 사망자수는 줄어들었으나 부상자수는 큰 변화가 없는 것을 볼 수 있다.


정지는 말 그대로 멈추라는 것


미국 도로교통안전국의 불법 스쿨버스 추월 방지 캠페인 포스터


차 중인 스쿨버스를 보고 정지하지 않고 통과하는 운전자들의 인식 개선을 위해 미국 연방 기관은 올해 새로운 캠페인을 발표했다. 스쿨버스는 안전한 교통수단 중 하나이지만 불법 스쿨버스 추월은 어린이와 보호자에게 심각한 위협이기에 스쿨버스 불법 추월 방지가 주요 메시지이다. 


도로 위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정지(STOP) 표지판과 스쿨버스의 정지(STOP) 표지판의 의미가 같다는 것, 정지(STOP)는 말 그대로 주행을 멈추는 것을 의미한다는 것, 스쿨버스의 정지(STOP) 표지판이 보이면 즉시 주행을 멈추라는 것 등을 캠페인 포스터를 통해 알 수 있다. 


미국 도로교통안전국의 불법 스쿨버스 추월 방지 캠페인 포스터


스쿨버스의 관련 법규가 50개 주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매년 이런 캠페인을 진행하는 것을 보면, 여전히 스쿨버스를 추월하는 운전자들로 인해 스쿨버스 관련 사고가 줄어들지 않는다고 할 수 있겠다.  


법과 규칙에는 사회 구성원들의 상식과 원칙이 깔려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아이들의 등하굣길은 세상이 무너져도 안전해야 한다는 상식이 깔려 있어야만 모든 구성원이 그 공간이라도 지켜낼 수 있다. 아이들의 교통사고를 미연에 방지하겠다는 어른들의 의지가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요즘은 텅 빈 스쿨버스가 지나가도 괜히 의식하게 된다. 사회적으로 합의하여 제정되는 법과 규칙이 사회에서 가장 약자이고, 가장 보호받아야 하는 이들을 향한다면 사회 구성원 모두 언제 어디서나 안전해질 수 있다.


남의 아이가 안전하면 우리 아이도 안전하다. 아이들이 안전하면 동시에 어른들도 안전할 수 있다. 이미 만들어진 법과 규칙을 어떤 마음으로 지켜야 하는지 그리고 생명을 보호할 수 있는 안전장치는 더 없는지 살펴볼 때이다. 


한 학년을 마무리하는 오늘, 아이는 스쿨버스를 타고 하교했다. 스쿨버스 운행도 마지막이기에 스쿨버스 운전자와 짧게 손인사를 나눴다. 이제껏 무탈하게 스쿨버스를 타고 등하교했다는 생각에, 이것만으로도 다행이다 싶었다. 드디어 아이들이 기다리고 기다리던 여름방학이 시작되는 순간이다.


* 2023년 6월 오마이뉴스에 기고한 글입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01. 미국 보스턴에서 아이를 키웁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