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를 더 많이 알게 됐어" 책을 읽는다는 건 다른 사람을 이해하는 일
나는 책벌레다. 글자를 깨우치고 여섯 살 무렵, 버스를 타고 외할머니집에 갈 때, 버스 창문에 코를 박고 차창 밖에 흘러가는 간판에 적힌 글자를 읽고 또 읽을 수 있어 즐거웠다. 하늘 아래 끝없이 펼쳐지는 글자들은 놀이공원의 놀이기구보다 더한 짜릿함을 선사했다.
초등학교를 다닐 무렵 아랫집에 살던 봉석이네 거실에 앉아 벽장 가득 들어찬 전집들을 읽었던 오후들, 여름방학마다 학교 도서관에서 열린 독서 교실, 고등학생 시절 입시 공부 대신 대학생 삼촌들이 추천한 책을 탐닉했던 여름들, 취업에 실패하고 좌절할 때조차 손에서 놓지 않았던 소설들, 서울에서 고독하게 자취하던 시절 가장 가까운 친구도 책이었다. 고리타분한 주례사의 한 대목처럼 ‘즐거울 때나 기쁠 때나 외로울 때나 슬플 때나’ 책과 함께 했다.
애서가(愛書家)와 글을 읽지 않는 이의 만남
이토록 책을 사랑하는 나는 평생 읽은 책을 손가락으로 셀 수 있는 남자를 만나 결혼을 했다. 학교 다닐 때 책 좀 읽고 글 좀 쓴다며 허세부리던 남자들을 자주 봐서였을까, 굳이 나처럼 책을 좋아하는 사람을 반드시 만나고 싶다는 생각을 하지 않았다. 그러나 이렇게까지 책과 거리가 있는 사람을 만나게 될 줄은 몰랐다.
결혼 후 십 년 동안 남편에게 책을 권해볼 생각을 해본 적은 있다. 하지만 세상 모든 일은 자신이 하고 싶어야 하는 것이지 누가 제안한다고 재미를 붙일 수 없다는 것을 알기에 그런 말조차 꺼내지 않았다. 내가 계속 책을 읽으니, 남편도 언젠가 책에 관심을 보이지 않을까 하는 마음에 남편이 먼저 나에게 책을 추천해달라고 묻기를 기다렸다고 하는 게 맞을 것 같다.
기다리는 사이 십 년이 흘렀다. 남편은 여전히 자신을 위해 책을 읽지 않았지만, 아이들 책은 누구보다 재미있고 진지하게 아이들에게 읽어주었다. 성대모사도 하고, 없는 이야기도 지어내고, 아이들에게 소소한 질문도 던지는 책 이야기꾼이 되었다. 이 정도도 충분하다 여겼기에 책을 읽으라는 말을 입 밖으로 꺼내지 않았다. 다만 가끔 읽고 있는 책의 재미있는 대목에 대해 두런두런 이야기하거나, 아이들을 재우려 온 식구가 다 같이 누워있을 때 좋아하는 시를 읊어주거나, 남편이 좋아하는 주제와 관련된 글을 따로 보여주는 정도로만 책과 관련된 메시지를 흩뿌리고 다녔다.
해외살이가 시작되고 천 권이던 책을 백 권으로 줄이고, 그 백 권이 알을 낳듯 오백 권으로 늘어날 때마다 남편은 이삿짐을 싸고 푸는 노동에 힘들어했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것이 책이란 것을 알았기에 마당에서 책을 태워 없애거나 나 몰래 갖다 버리는 수준의 만행(?)은 저지르지 않았다. 그러나 빼곡히 책이 들어앉은 책장을 보며, 내가 쉼없이 사다 나르는 책더미를 보며 고구마를 먹다 목구멍이 막힌 사람처럼 갑갑해했다.
아이들을 모두 재워놓고 잘 준비하던 어느 밤이었다. 남편이 꺼낸 한마디에 자려고 눕다 말고 벌떡 앉았다.
“나도 책을 좀 읽어볼까?”
“갑자기, 아니 어떻게 그런 생각을 했어?”
“일할 때, 가끔 머리가 잘 안 돌아간다는 느낌이 들 때가 있거든. 어릴 땐 눈치도 빠르고, 하나를 배우면 정말 열을 알게 되는 느낌이 있었는데 지금은 가끔 바보가 된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 내가 책을 읽지 않아서 이렇게 느끼는 것 같기도 하고.”
“그래? 그럼 이참에 책을 읽어보자. 꼭 일을 잘하게 된다는 보장은 없지만, 뭔가 새로운 것을 느낄 수 있는 자극제는 될 것 같아. 너무 욕심내지 말고 자기 전에 20분씩 읽어보자.”
우연하게 시작한 부부의 밤 독서
그렇게 우리의 밤 독서가 시작했다. 아이들에게 굿나잇 키스를 하고 우리 방으로 돌아와 침대에 비스듬히 앉아 각자 읽을 책을 꺼내 든다.
노래도 틀지 않고, 밖에서 들려오는 바람 소리와 빗소리가 우리의 숨소리와 뒤섞이고, 책장을 넘기는 소리가 불규칙적이지만 기분 좋은 추임새가 된다. 20분을 읽자고 시작했는데 날이 갈수록 책을 읽는 시간은 길어지고 어떤 날은 한 시간이 훌쩍 흘러 둘이 마주 보고 깜짝 놀란 날도 있었다.
나는 남편에게 맞춤형 큐레이터가 되었다. 최재천 교수의 <최재천의 공부>를 시작으로 한강 작가의 <소년이 온다>, 김소영 작가의 <어린이라는 세계>, 박준 작가의 <계절 산문>, 박상영 작가의 <대도시의 사랑법>, 백수린 작가의 <눈부신 안부>, 나이키 창업자 나이트필의 <슈독>까지 3개월 동안 남편은 여섯 권의 책을 읽었다. 한 달에 한 권을 읽겠다는 목표가 있었는데 목표 달성률이 200퍼센트가 된 셈이다.
남편은 책을 읽다 피식 웃기도 하고, 미간에 힘을 주기도 하고, 어느 페이지에 머무르기도 하고, 책장을 덮고 가만히 있기도 하고, 작은 한숨을 내쉬기도 한다. 나는 그런 남편을 곁눈질하며 그가 이야기 속 어디에 머무르고 있는지 상상한다. 어떤 날은 내가 읽는 책보다 책을 읽는 남편 관찰이 더 재미있기도 했다.
남편과 단둘이서 마주 보고 앉아 점심을 먹는 날이었다. 책장에서 책을 골라 건네면서 책을 추천하는 이유는 설명했지만 책을 읽고 난 후 특별히 책에 대한 이야기를 한 적이 없었기에 프로젝트를 점검하듯 남편에게 물었다.
“요즘 책 읽어보니 어때? 뭔가 달라졌다고 느껴지는 게 있어?”
독서를 하고 부자가 되었다는 사람들이 유튜브에 차고 넘치는 세상이어서였을까 나의 남편에게 그런 기적 같은 일이 일어나길 바라기라도 하듯 질문을 던졌다.
“글쎄, 처음엔 20분도 집중 못할 것 같다고 생각했는데, 내가 한 시간씩 집중해서 책을 읽을 수 있는 사람이라는 사실이 가장 놀라울 뿐이야.”
“그치, 집중해서 책을 읽다 보면 몰입의 즐거움이 찾아오긴 해. 그럴 때 뇌가 엄청나게 활성화된다고 하더라.
“그리고 책을 읽으면서 하나 더 얻은 게 있어. 너를 더 많이 이해하게 되었어.”
글 속에 사람도 있고, 사랑도 있다.
책을 읽으면서 작가나 세상이 아니라 나에 대해서 더 이해하게 되었다니, 무슨 말인가 싶었다.
“너랑 결혼하고 같이 살면서 너한테 미안할 때가 많았어. 너는 책을 이토록 좋아하는데 나는 읽지 않으니까 우린 온갖 이야기를 다 나누면서 살지만 책 이야기는 나눠본 적이 없잖아. 네가 좋아하는 것을 나도 같이 하면 좋을 텐데 하는 생각을 하면서도 난 읽는 게 너무 힘들었거든.
네가 추천해 준 책 곳곳에서 너를 발견해. 네가 하는 생각들, 네가 좋아하는 장면들, 네가 사랑하는 사람들까지 모두 책 속에 있더라. 네가 건네주는 책을 읽으면서 네 생각을 더 많이 해. 그리고 너를 더 많이 이해하게 된 것 같아.”
나는 여기까지 듣고 속으로 눈물을 흘렸다. 지금 이대로, 무엇 하나 더하거나 빼지도 않고, 살아있는 모습 자체로 인정받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누군가 나의 존재 자체를 인정한다는 것, 이게 사랑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머릿속에 번쩍였다.
책벌레가 할 줄 아는 것이라곤 책을 건네며 한번 읽어보자고 청한 것뿐이었는데, 책 속에서 유영하듯 이야기의 물결을 따라다닌 남편은 그 속에서 자신이 아닌 나를 찾았다. 책을 통해 한 인간을 더 많이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는 독서 리뷰를 전하는 그에게서 나는 사랑을 느꼈다. 내가 그에게 독서를 권할 때 상정했던 목표에 없었던, 값어치를 매길 수도 없는 독서 후기였다.
박준 작가의 산문집에 실린 <어떤 셈법>이란 시가 있다.
네 형편 모르는 것도 아니고. 그러니 내가 칠만 원을 줄게.
너는 오만 원만 내. 그러면 십이만 원이 되잖아. 우리 이 돈으로 기름 가득 넣고 삼척에 다녀오는 거야.
네가 바다 좋아하잖아. 나는 너 좋아하고.
이 시의 마지막, “네가 바다 좋아하잖아. 나는 너 좋아하고.”는 식구들 사이에서 가장 많이 변주되어 노래가 되는 구절이다. 이렇게.
‘우리 놀이터 가자. 너 놀이터 좋아하잖아. 나는 너 좋아하고.’
‘우리 레고 놀이하자. 너 레고 좋아하잖아. 나는 너 좋아하고.’
‘우리 빈티지 샵 가자. 너 빈티지 쇼핑 좋아하잖아. 나는 너 좋아하고.’
남편이 나에게 하는 말, 사랑이다.
‘우리 책 읽자. 너 책읽는 거 좋아하잖아. 나는 너 좋아하고.’
책을 읽기 시작했는데 사랑에 빠져버린 날들이다. 설상화가 언 땅 위에 뽀얀 얼굴을 드러냈다. 곧 냄새마저 다른 봄바람이 불어올 테고, 우리는 조금 더 환하게 웃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