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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pecial J Dec 20. 2017

시칠리아 #4

태어나서 처음으로 공항을 접해보는 이에게 공항은 별천지인 곳이다. 다양한 머리색, 피부, 눈동자의 색을 가진 다국적의 사람들이 하나같이 짐을 엎어매거나, 혹은 끌면서 어디가를 향하는 곳. 서로 가는 곳과 가는목적은 달라도, 설렘과 기대, 혹은 두려움이 공존하는 곳, 출발점과 목적지의 중간에 있는 마치 공기에 떠있는 듯한 곳, 그곳이 공항이다. 그에게 공항은 이런 별천지다.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해외로 하루동안 간다는 것,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생업 이외의 일을 하고 있다는 것, 자신이 어렵게 만든 처음의 기회를 가진이들이 공항을 누빈다는 것이 그에게는 놀라웠다.


그리고 다들 능숙해 보였다. 비행기가 처음인 그는 인터넷으로 어떻게 해야하는지 철저히 조사해 왔다. 어떻게 짐을 붙이는지, 티켓을 받아야 하는지, 일본에서 중국으로 중국에서 로마로 로마에서 카타니아로, 어떻게 환승을 할 것인지. 고등학교 때가 생각 났다. 처음 도쿄, 아니 츠바로 이사왔을 때, 도쿄의 고등학교로 전학 갔을 때가 생각났다. 자신과 다른 말투를 쓰며 세련되어 보이던 그들을 보던 그 이질감이새삼 떠올랐다.


짐은 붙이지 않았다. 이번 여행을 위해서 산 20리터 배낭을 샀다. 기내에 가지고 탈수도 있는 사이즈 중 가장 큰 사이즈였다. 이탈리아는 도보가 캐리어를 끌기에 적합하지 않다고 인터넷 블로거는 말하고 있었고 그는 그냥 배낭을 매기로 했다. 그리고 지중해의 햇빛을 막아줄 챙이 긴 벙거지 모자도 챙겼다. 면바지에, 편한 긴팔 체크셔츠를 입었다. 여름인 나라로 가지만 반팔은 입지 않았다. 무언가 모르게 격식을 조금이나마 차리고 싶었기에 긴팔 셔츠를 골랐다.


출입국 심사를 할때는 세삼떨렸다. 출입국 심사를 하는 이들은 무엇을 조사하는 것일까? 그냥 대충 여권을 드려다 보고는, 잘가라는 듯이 도장을 쾅 찍어 주었다. 미소도 없었고, 언짢아 하는 기색도 없었다. 그냥 도장을 찍기위해 여기 있는 사람입니다라는 느낌을 풀풀 풍겨주었다. 그도 그냥 여행을 가는 사람입니다라는 뉘앙스를 풍겨주었다.


시간이 아직 한시간 이상이 남아있었다. 그럼에도 그는 면세점이나, 공항을 돌아보는 대신에 게이트 앞에 가서 기다리고 했다. 시간이 많이 남아 있어 그런지 10명 남짓한 사람만이 기다리고 있을 뿐이었다. 다시 면세점있던 코너로 갈까? 했지만 그냥 여기있게 나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혹시나 모를 상황에 대비해서다. 비행기가 갑자기 조금 빨리 출발을 할수도 있지 않은가? 정말 만약에 말이다.


전화기를 꺼내들어서 집에 전화를 할까 하다가 하지 않기로 했다. 전화를 해봤자 조심하라느니, 안전한 곳만 가라느니 라는 말을 할 것이 뻔했다. 항상 집을 떠날 대 어머니가 하던 말이다. 대신 문자를 남기기로 했다.


"잘다녀올께요, 걱정마세요. 안전한 곳에만 갈꺼예요"


갑자기 예전 여자친구가 떠올랐다. 지금은 헤어진 여자친구였다. 대학교 때 카페에서 알바를 하면 만났던 친구였다. 함께 해외여행을 가자고 약속했었는데, 결국 그 약속을 지키지 못했다. 약속을 못지키기는 커녕, 함께 있어주지못했기에 헤어져야 했다. 지금에서야 보니 이렇게 어려운 일도 아니었는데. 여권을 만들고 비행기 티켓만 사면 되는 일이었는데. 그녀의 티없는 미소가 떠오르면서 그는 머리가 지끈거리는지 긴의자에 기대 눈을 감았다. 


다시 사랑을 할 수 있을까? 라는 생각이 꼬리를 물고 늘어질때 쯤 그는 깜빡 잠이 들었다. 눈이 떠보니 긴 탑승줄이 보인다. 드디어 탑승할 때구나 하고 그는 줄을섰다. 줄은 길었지만 승무원들은 신속했다. 거의 맨뒤에 섰던 그도 탑승을 하고 나니 비행기의 안내방송이 나온다. 중국항공기라 그런지, 중국사람이 80 %이상은  되어 보인다. 방송도 중국어가 나오는 것이 벌써 중국에 와있는 느낌이다.  비행기는 천천히 자리를 잡아서 이륙을 한다. 그는 바같풍경을 보기위해 창가에서 붙어서 떨어질 줄은 모른다. 


멀리서 본 도쿄는 아름다웠다. 자신이 바둥바둥하면 살아온 흔적은 보이지 않았다. 그의 슬픔도, 서러움도 보이지 않았다. 대신 반짝이기만 했다. 그는 그런 야경이 마음에 들었다. 남이 봤을 때 자신도 그랬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자신이 아둥바둥 살아온 사람이 아닌 여유를 가지고 느긋하게 살아온 사람처럼 보이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서러움 대신 행복과 자신감이 가득한 사람처럼 보이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지난날들은 이제 색이 바래고 새로운 색들이 자신에게 씌워지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가는 여정은 길지만 힘들지 않았다. 처음 해보는 비행기 환승은 피로라기 보다 신기함이었다. 무려 2번의 환승을 거쳤다. 중국에서 한번, 로마에서 한번. 본이 아니게 처음 가본 외국이 중국이 되어버린 셈이다. 로마 공항에서 잠시 머문뒤 다시 유럽의 저가항공으로 환승했다. 환승할 때 저가항공은 말만 저가 항공이지 오히려 돈을 더 낼뻔하게 만들었다. 가방 규격에서 조금만 벗어나도 엄청난 벌금을 매긴 것이다. 다행히 가방을 조금 눌러서 겨우 규격에 맞추었다.


방송이 흘러나왔다.


"This airplane will be arrived at Catania Airport soon"


이제 시칠리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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