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현은 침대에 몸을 뉘였다. 그녀가 쌓아온 많은 것이 무너지는 느낌이었다. 그녀가 쌓아온 단단하고 견고한 벽이 무너지는 느낌, 아니 그 벽은 견고해 보였지만 사실 툭치면 넘어지는 나무판자였을지도 모른다. 어디에 이가 맞지 않는 벽돌이 놓여진 걸까?
카타니아 공항에 내릴 때만 해도 그녀는 들떠 있었다. 카타니아 공항은 이탈리아 자국 관광객들로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었다.
"역시 여행은 이런곳을 가야되, 이게 진짜지"
그녀는 혼자 중얼거렸다.
하지만 가족, 연인과 여행온 이들은 수현의 외로움을 자극하기에도 충분했다. 그녀는 핸드폰을 재빨리 켰다. 남자친구에게 온 문자를 확인하고 싶었다. 외교부에서 온 안전알림 문자가 먼저 도착했다. 공항 와이파이를 연결해 카톡을 확인했다. 남자친구에게 온 카톡에3 이라는 숫자가 떠 있었다.
'비행기 탔어? 미안해...ㅠㅠ 전화받을 상황이 아니었어'
'조심히 꼭꼭 가야되요. 무슨 일있으면 연락줘야해, 여행 잘 하구와'
'자기야 사랑해'
코끝이 괜시리 찡해졌다. 벌써 그가 그리웠다. 하지만 그녀는 그가 그리운 것인지, 또는 극대한된 그리움에 사람이 그리운 것인지는 정확히 알 수 없었다.
공항에서 나와 공항버스를 타기위해 밖으로 나왔다. 그녀가 탈 공항버스는 그녀의 호텔 근처를 간다. 카타니아에서 제일 활발한 거리인 에트나 거리에 그녀를 내려 줄것이다.
"에트나 거리라.."
Etna, 그것은 시칠리아를 더욱 특별하게 만들어 주는 것이었다. 카타니아 외곽에 위치한 에트나는 활화산이다. 현재까지도 세계에서 활발히 활동하는 화산 중 하나이며, 그리스 사람들은 제우스가 괴물 티몬을 에트나 화산에 가두었다고 믿었다고 한다. 시칠리아의 대부분의 건물은 17세기 이후에 지어졌는는데, 17세기에 에트나가 크게 폭발했기 때문이다. 시칠리아 사람들은 에트나와 함께 사람아가는 사람들이다.
버스가 지나가는 에트나 거리는 수현이 드디어 시칠리아 땅에 왔음을 다시 상기시켜주었다. 피렌체나 로마보다 거칠었지만 세련되지 않았다는 뜻은 아니었다. 벽의 페인트는 바랬지만 그것이 시칠리아를 더 특별하게 만들어 주었다. 벽에 적힌 Refugee welcome (난민들을 환영한다.) 라는 낙서는 여기가 지중해의 아름다운 관광지이기도 하지만, 시리아 전으로 인해 많은 난민들의 유럽행 루트가 되고 있다는 걸 다시 한번 상기시켜주었다. 난민을 환영해 주는 도시는 왠지 수현에게도 친절할 꺼라는 기분 좋은 예감이 들었다.
에트나 거리의 한 곳엔 광장이 있었다. 그리고 야자수, 화산섬임을 증명하는 거믓한 돌로 만들어진 고풍스런 건물과 길들. 그리고 여유로워 보이는 사람들. 그래 여기가 카타니아다. 이곳은 가로등 조차도 헛으로 만들지 않았다. 아름다웠다.
그녀는 구글맵을 꺼내들고 예약했던 숙소로 향했다.
"네? 제 방이 없다구요?"
인터넷의 호텔예약 대행 사이트를 이용해 철저히 예약했다고 생각했는데, 도착해보니 숙소 주인은 방이 없다고 했다. 아마 내부에서 예약시스템에 오류가 생긴것 같다고 했다.
"wait, wait , It gonne be okay"
이태리어 억양이 가득한 영어를 말하는 이 젊은 사장은 자꾸 기다리라고 한다. 여태까지 이 호텔예약 대행 사이트를 이용했었고, 이런 일은 처음 겪는 일이라 그녀는 당황할 수 밖에 없었다. 그리고 언성을 높일 수밖에 없었다. 지나가던 숙박객들은 그녀를 힐끔힐끔 쳐다 보았다. 그렇게 두시간째 그녀는 짐도 풀지 못하고 있었다. 아마 사장은 호텔의 이곳저곳으로 전화를 하는 거 같았다. 대신 방을 찾아주려고 하니 그녀도 어쩔 수 없이 기다렸다. 하지만 지금은 유럽휴가 시즌이 아닌가? 관공서 조차도 8월엔 문을 닫고 4주가량 유급휴가를 보내는 유럽이라구. 방이 쉽게 구해질리가 없었다.
그 때, 사장이 다급히 애기한다.
"다행히 바로 옆의 호텔에 손님이 안와서 취소 된방이 있어, 빨리 가야되, 바로 길 건너야, 내가 전화를 해놓았으니 다 알아서 해줄꺼야, 그리고 오늘일은 정말 미안해"
그는 그 나름대로의 성의를 다해서 사과하며 그녀를 내 쫓듯이 옆의 호텔로 보냈다. 수현은 짜증이 날때로 났기에 고맙다는 인사는 하지 않았다. 그냥 짐을가지고 말해준 곳으로 향했다.
그곳에는 수염을 더부룩하게 기른 젊은 사장이 있었다.
"oh, 수현, 네 애기는 들었어, 너도 알다시피 이곳 시칠리아는 지금 관광객으로 가득 차있어, 진짜 다행이지, 오늘 방이 하나 취소 되었거든, 방부터 보여줄께"
수현은 그냥 좋게 마음을 바꿔먹기로 했다. 그래, 노숙안하는게 어디야, 이곳에서 험한 꼴 당하지 않는 것만 해도 어디야, 휴... 이게 여행의 묘미 아니겠어? 방은 그 전 호텔급은 아니였지만, 노란색 벽을 한 아기자기한 방이었다. 단점이 있다면 화장실이 공용이라는 것과, 에어콘이 없다는 것이었다. 여기는 호텔이라기보다 호스텔 같은 곳이었다. 특히하게 이곳은 주거지와 함게 있는 아파트먼트 같은 곳이었는데, 그 아파트먼트의 구조가 'ㅁ
'자 구조였다. 테라스를 나가자 앞집 사람들의 거주지가 보였다. 마치 중세의 건물 같기도 했고, 스페니쉬 아파트먼트를 떠올리게하는 상상력을 자극하는 아파트였다.
"흠.... 특이한 구조네"
실로 유럽영화에서만 보던 특이한 구조였다. 그래서 그렇게 나쁘지 않게 생각하기로 했다. 우선 샤워를 제일 먼저 하고 싶었다. 삐걱거리는 복도 끝으로 가니 샤워실이 있었다. 샤워실은 어찌나 좁은지 팔을 피기도 힘들었다. 그래도 이 따뜻한 물에하는 샤워가 그리웠다. 샤워를 하고나니 조금 살 것 같았다. 침대에 누워서 남자친구에게 카카오 보이스를 걸었다. 지금 한국은 밤이니 전화를 받을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예상 외로 연락이 되지 않았다.
"치......무슨 일 생기면 연락하라더니, 연락도 안되네"
한국에서도, 이탈리아에서도 그는 항상 이랬다. 그녀는 세상에서 제일 한가한 사람 같았고, 그는 세상에서 제일 바쁜 사람이었다. 서운함, 섭섭함이 갑자기 겹쳐져 눈물이 나려고 했다. 이런 순간이 닥칠 때마다 그녀는 사실 고민했다.
'오빠가 바쁜 걸 못참으면 내가 헤어지면 되는거야, 하지만 사귈려면 이정도는 감수해야지' 라는 생각으로 2년을 만나왔다. 하지만 만남이라는 관성을 헤어짐으로 멈추는 것은 쉬운일은 아니었다. 그 때 카톡이 왔다고 울렸다.
'수현아 미안해, 학회 준비때문에 연락이 힘들 것 같아, 이탈리아 여행잘하고 와, 사랑해'
사랑한다는 다정한 말이지만 그의 말에서 애정을 기대할 수없었다. 그가 원망스러웠다. 갑자기 이 조그마한 방에 에어콘도 없이 덜덜 거리며 돌아가는 선풍기에 의지하는 더위 쫓는 자신이 처량해졌다. 다시 또 그 고민을 끄집어 내야 할 때가 되었다고 생각하니 변한 것이 하나도 없는 것 같아 무기력하게 느껴졌다. 2년 이란 시간을 만난 그와 헤어지는 건 쉽지 않을 것이다. 자주 만나지 못했지만 쌓아온 추억들, 내년엔 결혼까지 하자고 암묵적으로 생각하고 있었기에 더더욱 그랬다.
헤어짐을 가정하니 앞이 깜깜해진다. 결혼적령기인 그녀는 자신이 새로운 사랑을 시작하기가 두려웠다. 그리고 번거로웠다. 누군가를 새로 알아가야하고 또 맞추어 가야 한다는 것이 번거로웠다. 귀찮고 성가실 것이다. 머리가 복잡해졌다. 항상 스스로 독립적이라고 생각했지만 그가 차지하고 있던 공간이 컸던거 같다. 갑자기 몸이 구멍이 슝 하고 난 것 같았다.
한국으로 다시 돌아가고 싶었다. 하지만 그럴 수 없었다. 계속 여행을 해야 한다. 조금 자고 나면 괜찮아 질 것 같았다. 조금만 자고 저녁을 먹으러 나가야 겠다고 생각했다. 복잡한 생각이 들었지만 비행이 너무 피곤했나 보다 그녀는 곧 잠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