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홍유빈 Sep 29. 2018

Good Bye, Amazon

아마존과 함께한 2년 5개월을 돌아보며

[2017년 9월 29일 작성, 2018년 9월 29일 발행한 글입니다.]


2015년 2월, 반포 메리어트 호텔 방에서 장장 4시간 짜리 면접을 보았던 기억이 난다. 긴장한 탓에 점심을 거르고 들어간 면접 끝물에 나는 탈진 일보 직전이었고 호텔을 나설 때엔 이미 밖은 깜깜해져 있었다. 그리고 2015년 5월 11일, 부푼 마음을 안고 삼성동 트레이드 타워로 첫 출근을 했었다.


그리고 2017년 9월 29일 오늘, 2년 5개월동안 함께했던 정든 두 번째 직장 아마존을 떠난다.


한국에서 처음으로 사업을 시작하는 조직에 운 좋게 founding member 로 조인하게 되어 말 그대로 ‘Build the business, from the scratch’를 제대로 경험할 수 있었던, 짧지만 굵었던 아마존에서의 2년 5개월을 돌아보며 기억에 남는 순간들을 꼽자면..


조인 하자마자 국내 오픈마켓 판매자들에게 무작정 콜드콜을 돌렸던 날들 - 진짜 입에서 단내 날 정도로 전화해서 머리가 띵했던 기억. 똑같은 질문 하루에 몇 번씩 대답하고 있으려니 내가 자동응답기인지 뭔지 모르겠었던 그런 시절들이 있었다. 회사에서 헤드셋을 working tool이라고 나눠줬을 땐 오 이거 신박한데 하면서도 좀 슬펐다. 이때부터 였던거 같다. 이 모든 과정들을 비대면 채널로 자동화시키고 싶다는 나의 강렬한 욕구가 내면에서부터 샘 솟았던 것은…! 그래서 기를 쓰고 셀러 튜토리얼이나 도움말 번역을 누구보다도 제일 먼저 했다. 한 번 번역하면 계속 두고두고 쓸 수 있으니까.


그 때까지만 해도 한국어 지원이 되지 않아 도움말 페이지 수십 페이지를 직접 번역하다가 안되겠다 싶어 로컬라이제이션을 도와줄 인턴을 채용하기로 했는데 HR 리소스가 없어 직접 채용 공고부터 resume, phone screening까지 다 했던 기억도 난다. 이 때 하도 주변에 사람 없냐고 들들 볶아서 지인들이 아마존에서 셀러 리쿠르팅 하는 줄 알았는데 이젠 직원도 리쿠르팅 하냐며 놀렸더랬다.


셀러를 위한 제대로 교육 자료 하나 없던 와중에 미국에서 동영상으로 된 셀러 튜토리얼이 나왔다. 이름하야 셀러 유니버시티! 너무 기뻐서 ‘우리도 한국어로 더빙한 비디오 만들어줘!!’라고 시애틀 본사에 요청했더니 ‘이 마이크 사서 직접 녹음하면 돼’라고 아마존닷컴 구매 링크를 보내주는 본사 동료 이메일에 이 회사의 Leadership Principle, Frugality를 다시 한 번 체감했다. 게다가 그 와중에 “Insist on the highest standard” 해야 한다면서 그 전에 인턴들이 녹음했던 비디오들 레코팅 퀄리티 안 좋다고 다 지우고 새로 녹음하라고 했던 동료(...인지 원수인지)는 이름이 아직도 기억난다.


그래서 낮에는 스크립트 한국말로 다 번역하고 (구글 translator 없었으면 절대 다 못했다. 늦었지만 구글느님 사랑합니다.), 밤이면 텅 빈 회의실에서 문 잠그고 튜토리얼 스크립트 녹음하고, 녹음한 파일 다시 비디오에 무비 메이커로 얹는 작업까지 직접 했었다. (마이크로소프트 무비메이커님도 사랑합니다. 윈10엔 무비메이커 없어져서 슬펐어.) SSD도 아닌 랩탑으로 무비 메이커 랜더링 기다릴 때면 랩탑이가 과부하로 사망하는건 아닐까 조마조마 했던 때가 한 두번이 아녔다.


우리 사업이 뭔지 소개하는 변변찮은 한국어 웹사이트 하나 없던 시절이라 웹사이트 좀 만들어줘..라고 본사에 요청했더니 ‘오 그거 네가 직접 만들면 돼’ 란다. '응? 홈페이지를? 내가? 개발자 지원 안해죠? 에이전시 안줘?' 그랬더니 누가 테크 기업 아니랄까봐 웹디자이너나 개발자가 아니어도 웹사이트를 직접 만들 수 있게 internal site building tool을 만들어서 쓰고 있는거였다. 그리고 그 툴 튜토리얼 던져주면서 나보고 직접 만들래…심지어 툴 이용 권한 받으려면 테스트도 봐야해... 팔자에도 없는 웹사이트 만들기 + 초등학교 컴퓨터 시간에 배우고 한 번도 안 쓴 HTML을 기억을 더듬어가며 쓰고 있는데 나는 도대체 뭐하는 사람이지??? 싶었지만, 그래도 우야둥둥 웹사이트 하나를 만들어냈다…(물론 혼자 한 건 아님) 모바일 최적화 하나도 안 되어 있는 말도 안되는 졸작이지만 그래도 내 손 닿은 거라고 이 못생긴 애가 예뻐 보이고 막 사람들이 찾아오니까 기쁘고 그랬다.


그 다음으론 mass mailing이 하고 싶었지. 그 전까진 아웃룩 bcc에 셀러 메일 주소 넣구 수신거부용 링크도 없이 메일 보냈었다 (위험천만...이제는 그러지 않습니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 회사에 mass mail 툴이 없단건 말도 안된다고 생각해서 또 한참을 회사 위키를 들쑤셨더니 아니나 다를까 사용하는 메일링 툴이 있었다. 그치만 사용 권한 얻으려면 또 테스트 봐야함 (무려 세 번). 공부하고 꾸역꾸역 시험 통과해서 사용권한 받으니 이게 뭐라고 한국에서 최초로 mass mailing할 수 있는 권한 획득했다고 혼자 신났었다. 로컬 법무팀이 없어서 직접 국내 개인정보보호법 독학하며 disclaimer 만들 적엔 피앤지 다닐 땐 그렇게 맞닥뜨리기 싫었던 법무팀이 너무 그리웠다.


아마존 내부 직원끼리 묻고 답하는 일종의 ‘네이버 지식인’ 사이트를 오픈했을 때, 해외 오피스 직원이라 느끼는 소외감이 싫어서 답을 아는 질문에는 괜히 더 열심히 답변을 달았었다. 그러다가 얼떨결에 유저 상위 1%에 들어서 해외 오피스 직원으로는 처음으로 community moderator가 되었었다. 네이버로 치면 태양신정도...? 네이버 지식인 등급은 뭔지도 모르는 내가 이런 것도 다 해보고 오래 살고(?) 볼 일이다 싶었다.


돌아보면 2년 5개월이라는 기간 동안 어느 한 순간도 Day 1 같지 않은 날이 없었던 것 같다. 매일 새로운 챌린지가 생겼고, 그래서 해결하기 위한 새로운 방법을 고민해야했고, 자원이나 리소스를 요청하고 기다리기보단 일단 내 손에 흙을 묻히며 뭐라도 매일매일 해야했던 나날들을 뒤로하고 떠나는 마음은 누구라도 그렇겠지만 복잡미묘하다. 풀고 싶었던 문제들을 비록 다 풀지 못한 채 떠나지만 풀기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모든 것들을 다 해보았기에 후회는 없다. 그리고 오래오래 남을 소중한 인연들도 만날 수 있었기에. 감사하고 충만한 2년 5개월이었다. :)


안녕, 나의 두 번째 직장 아마존.


2017. 09. 29.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