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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유빈 Dec 12. 2017

도시락 편지

2018년, 만 60세가 되는 엄마에게 보내는 선물

엄마가 처음 편지를 썼던 때는 94년 봄, 언니가 초등학교 3학년이 되어 학교에 처음으로 도시락을 싸 간 날이었다. 그리고 그 편지는 이듬해 엄마가 파트타임 간호사로 출근을 시작하며 '식탁 위 편지'가 되었다가, 급식을 먹게 되어 학교에 수저만 싸 들고 다니게 되었을 때엔 '수저통 편지'가 되었다. 형태야 어찌되었건, 처음 시작은 '도시락 편지'였기에 나와 언니, 우리는 '도시락 편지'라고 부른다.


안 그래도 신나는 점심시간, 수저통 지퍼를 슬며시 내렸을 때 하얀 종이가 보이면 그렇게 기분이 좋았을 수가 없다. 어릴 적 작가가 꿈이었던 엄마의 편지에는 계절의 변화가 주는 감상에 젖은 소녀 같은 엄마, 글씨를 못 쓰거나 학습지를 밀린 딸을 혼내는 무서운 엄마, 어린 딸을 두고 일하러 나온 죄책감에 미안한 엄마 등 다양한 엄마의 면면이 등장한다. 그 엄마와 함께 어린 나도 컸다. 생각해보니 그 때의 엄마와 지금의 나는 몇 살 차이도 나지 않는다. 그런데 그 당시 엄마는 딸이 둘이나 있는 “엄마”였다니... 나는 아직 내 몸 하나 간수도 버거운 철부지인데 말이다. 엄마도 엄마가 처음였을텐데, 그 스트레스와 책임감이 말도 못했을 것 같은데 그 때의 나는 당연히 엄마의 마음을 몰랐다. 내 나이 서른이 되어 다시 편지를 읽으니 엄마의 그 당시 고민이 전해져서 괜히 마음이 시리다. 엄마는 그 때 그 어린 딸이 비록 엄마를 이해하지 못한다 해도, 이렇게 이십년 후에 뒤늦게 깨달을 걸 알고 편지를 썼던걸까?


그 때 엄마로부터 받은 도시락 편지를 차곡차곡 모아 이사할 때도 버리지 않고 갖고 다니기를 20년, 문득 2018년이면 만 60세가 되는 엄마에게 어떤 선물을 줄까 고민하던 중 이 편지들이 떠올랐다. 작가가 꿈이었던 엄마에게 엄마 이름이 지은이로 적힌 책을 만들어주면 어떨까. 그리고 그 책의 내용은 바로 20년 전에 엄마가 나와 언니에게 보냈던 편지라면. 안그래도 이 도시락 편지들을 디지털 아카이브 시켜두어야겠다는 생각이 들던 차 였던지라 바로 핸드폰으로 차곡차곡 편지들을 스캔하여 저장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오늘에서야 드디어 180장의 편지들을 전부 디지털 이미지로 저장했다.


출간을 위해서는 30개 이상의 매거진 글을 써야 한다. 엄마의 자필 편지 전체를 담아 책을 만들것이기 때문에 이미지 그대로를 나누어 올릴거지만, 종종 좋은 문구나 떠오르는 에피소드들이 있는 편지에는 곁들인 이야기를 함께 쓸 예정이다. 책을 만드는 자체도 의미있지만 이렇게 옛날을 곱씹으며 엄마와 우리의 추억을 다시 생각할 기회가 생겨서 기쁘다. 아무쪼록 부쩍 체력이 부쳐 힘겨워하는 엄마에게 조금이나마 힘이 될 수 있기를 바라며.


'도시락 편지' (엄마 김경희 쓰고, 딸 홍화정,유빈 엮음),

시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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