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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유빈 Dec 24. 2017

도시락 편지: 나의 국민학교 첫 소풍

엄마 없이 다녀온 나의 첫 소풍에 얽힌 추억

우리 엄마는 결혼하기 전까지 큰 병원의 간호사로 일했다고 한다. 그러다 아빠를 만나 결혼하면서 '자연스럽게' (도대체 왜 결혼 후 일을 그만두는 것이 '자연스러운' 일이었는지 아직도 나는 의문이지만.) 일을 그만두었고, 바로 언니를 낳았고, 서른 살에는 나를 낳아 쭉 전업 주부로 지냈다. 그러던 차에 우연히 지인으로부터 간호사 자격증이 있으면 파트타임으로 일 할 수 있다는 대한적십자사 혈액원 간호직이 있다는 말을 듣고 지원했다가 덜컥 붙어버렸다고 한다. 10년 만에 경단녀였던 엄마의 커리어가 다시 시작되는 순간이었다! 이 드라마틱한 일생일대의 변화를 엄마는 어떻게 시작하게 된 것이냐 물었더니 의외로 엄마의 진지하지 않은(?) 답변에 놀랐었는데, 일단 언니를 학교에 보내고 나까지 학교에 입학하게 되면 조금은 무료할 것 같은 본인의 일상에 변화가 필요하다고 느꼈다나? 오히려 당시만 해도 외벌이가 보편적이었어서 아빠의 월급을 알뜰살뜰 모아 살았기 때문에 경제적으로 엄마의 지원 사격이 필요했던 것도 아니라고 한다. 


엄마가 상대적으로 가벼운 마음으로 일을 다시 시작했다면, 비록 파트타임였지만 엄마가 아침 일찍 출근을 하고, 6시 이후에나 집에 돌아오는 경험은 어린 나나 언니에게는 아무래도 새롭고 쉽게 익숙해지기는 어려운 일이었다. 실제로 엄마한테 들어보니 주 2회, 많으면 4회 정도를 출근했다고 하는데 내 기억 속에선 거의 매일매일 엄마가 출근했던 것 같으니 말이다. 지금 전업 워킹맘인 분들이 들으면 '아니 뭘 저런 걸 갖고..'라고 말할만한 환경에도 우리 모녀들은 눈물 콧물 다 빼는 드라마를 여럿 만들어냈었다. 몇 가지 이야기가 있는데, 그중 오늘은 나의 첫 소풍 이야기를 할까 한다.


초등학교 선생님으로 재직 중인 친구나 언니들 이야기를 들어보면 우스갯소리로 1학년은 '사람'이 아직 덜 된 존재로 표현하는데 아직 화장실을 혼자 못 가거나, 엄마가 보고 싶어 학교에서 울거나, 한 자리에 10분 이상을 앉아있지 못하는 등등 아직까지 보호자 1대 1 케어가 더 많이 필요하기 때문이란다. 그래서인지 내가 다닌 학교의 첫 소풍은 아이들과 선생님만 가지 않고 부모님이 함께 가는 방식였는데, 말이 부모님이지 그냥 그 당시에는 엄마들이 일을 하지 않고 집에 있다는 전제 하에 짠 프로그램일 것이다. (요즘도 이렇다면 큰일인데...)


아무튼 파트타임 근무를 이제 막 시작한 우리 엄마는, 하필 작은 딸의 소풍날과 딱 겹쳐 나온 근무 스케줄을 통보하는 과장님께 한 마디 반항도 하지 못하고 나 혼자 소풍을 보내게 되었다. 다행히 같은 아파트 다른 층에 사는 같은 반 친구 어머니께서 흔쾌히 나를 돌봐주시겠다고 해서 엄마는 안심하고 보냈다고 한다. 게다가 그 집은 아들내미 첫 소풍이라고 할머니 할아버지까지 같이 소풍에 따라오셨다.


소풍 장소에서 오전 활동을 마치고, 점심은 각자 가족들과 먹는 일정였는데 왜인지 나는 소위 '엄마가 못 온 아이들' 그룹에 다른 아이들과 함께 선생님 앞에 모여 쪼그리고 앉아있었다. 울 엄마 부탁을 받은 내 친구 어머니는 한참 나를 찾다가 그 그룹에 있는 나를 발견하고 데려오셨다. 그러고는 잘 기억이 나지 않지만 그래도 울지도 않고 친구랑 그 식구들이랑 잘 놀고 왔던 것 같다. 잘 노는 내 모습을 사진 찍은 친구 부모님이 나중에 사진을 뽑아서 엄마에게 나눠 주셨는데 엄마가 예쁘게 나왔다며 좋아했었다. 


근데 어느 날 엄마가 집에 오니 내가 그 사진 속 내 얼굴마다 볼펜으로 문질러 못쓰게 만들어 놓았단다. 엄마가 왜 그랬냐고 물으니 그냥 입만 삐죽였다고. 기억을 더듬어보면 나는 그냥 남들은 다 엄마가 소풍에 따라왔는데 왜 우리 엄마만 오지 못했던 걸까에 대한 심통이 났던 것 같다. 그래서 설렐법한 학교 첫 소풍도 잘 기억도 나지 않고, 괜히 싫고. 엄마가 동현이랑 동현이 엄마랑 같이 밥 먹으면 된다고 신신당부를 했는데도 굳이 '엄마가 오지 않은 아이들 그룹'에 가 있던 것도, 글쎄 어차피 엄마가 못 올 바에야 거기든 여기든 무슨 상관일까 싶었던 걸까. 이 기억이 사실 나는 잘 나지 않는데, 엄마는 이맘때 얘기를 하면 항상 나의 첫 소풍 이야기를 한다. 


소풍날 김밥과 함께 넣어준 엄마의 편지 속 미안함이 아직도 엄마에게 남아있나 보다.


사랑하는 유빈에게

목적지는 즐겁게 도착했는지

엄마는 멀리서 너를 생각한단다.

소풍 따라가지 못해 미안하다

엄마도 유치원 졸업식때 외할머니

께서 오시지 못해 울던 기억이 난다.

우리 유빈이는 똑똑하고

자기 할 일 스스로 잘 하니까

엄마가 믿고 보낸다

김밥 맛있게 먹고 즐거운 소풍이

되길 바란다

이따가 만나자


95. 4. 19 아침

- 엄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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