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침표를 찍어야 한다. 그래야 다음 문장을 쓸 수 있으니까.
책 <독립영화, 나의 스타>를 읽었다. 독립영화계에서 종횡무진 활약하고 있는 10명의 배우들의 인터뷰집이었다. 변요한, 이주승, 서준영. 세 배우의 인터뷰가 읽고싶어 산 책이었지만 오히려 그 외의 배우들, 특히 눈빛이 나를 사로잡았던 다른 세 배우의 인터뷰가 인상깊었다. 이상희, 윤금선아, 그리고 바로 지금 이야기 하고자 하는 영화 <혜화, 동>의 주연배우 유다인이었다.
내가 연기한 인물이 어디선가 잘 살고 있을 거라는 맘이 들게 하는,
여운을 줄 수 있는 배우가 되고 싶다.
배우 유다인 처음 인지했던 작품은 <보통의 연애>였다. 유다인 배우의 이 말을 읽은 순간, 나는 <보통의 연애>의 윤혜를 떠올렸다. 그리고 생각했다. '윤혜는 분명히 잘 살고 있을 거야. 단단하고, 고요하게. 그렇게 잘.' 이라고. 유다인 배우는 그렇게 생각할 수 있도록 모든 상황을 납득할 수 있는 연기를 했었다. 인터뷰집에선 10명의 배우의 다양한 필모그래피가 소개되었는데, 그 중에서도 유다인 배우의 <혜화, 동>을 제일 먼저 찾아 본 것도 그러한 이유였을 것이다. 어쨋든, 누구든. 잘 살고 있을 것 같은 안도감이 필요한 시절이니까.
사랑을 잃고, 아이를 잃은 슬픔. 자신이 버려진 아이였다는 상처. 혜화는 그 슬픔과 상처를 유기견을 돌봄으로써, 또 수의사의 아들을 친아들처럼 살갑게 돌보아 줌으로써. 그 버려지고 외로운 생명들을 거둠으로써 상처를 덮으려 했다. 그러나 그것은 본질적인 치유가 아니었을터다. 그는 왜, 도망쳤을까. 아이는 왜, 죽어야 했을까. 나는 왜, 버려졌어야 했을까, 아이는 왜- 몰래 입양되었어야 했을까. 자신을 상처입힌 것들에게 5년의 시간이 지난 다음에서야 비로소 정면으로 부딪힐 수 있었던 혜화의 길고 길었던 겨울(冬)은 그제서야 끝이 날 수 있었다. 부딪히기 전과 후, 현실적으로는 아무것도 달라진 것이 없지만 혜화의 마음속에, 그제서야 마침표 하나가 툭, 하고 찍혔을거라 생각한다. 모든 일이 그러하다. 회피해보았자 끝나지 않는다. 부딪혀서 끝을 보아야 한다. 차마 지금보다 더 나빠진다 한들, 마침표를 찍지 않으면, 다음 문장을 쓸 수 없으니까. 아마도 혜화도, 잘 살고 있을 것 같다. 한수와 함께일지는 잘 모르겠지만, 어쨋든. 비로소 다음문장을 향해. 뒤돌아보지 않고 뚜벅뚜벅 걸어가고 있을 것 같다. 유다인 배우의 눈빛을 보면 그렇게 믿을 수 밖에 없어지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