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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구아바 Feb 04. 2023

영원을 믿는 사람, 끝난다고 생각하지 않는 사람 (1)

독립큐레이터_김소진

저는 모든 사람에게 대화의 문턱이 없는 사람, 믿고 의지할 수 있는 사람, 유의미한 가치를 끊임없이 발견하려고 노력하는 사람으로 남고 싶어요.




‌김소진은 광주를 기반으로 활동하는 전시 기획자이자 예술 콘텐츠 제작자이다. 그는 독립 큐레이터그룹 ‘장동콜렉티브’에서 2년 간 젊은 세대로서, 여성으로서, 지역민으로서의 이야기를 다양한 형태로 담아냈다. 후에 그는 1995Hz라는 그룹을 결성하여 새로운 프로젝트를 구상 중이다.
 
그를 ‘사서 고생하는 사람’의 세 번째 인터뷰이로 정한 이유는 도전을 두려워하지 않는 그의 삶의 방식 때문이었다. 그는 자주 말했다. 세상을 바꾸고 싶다고. 그는 입으로 세상을 바꾸는 사람이 아니다. 직접 행동으로 움직이며 세상을 바꾸기 위한 노력을 게을리하지 않는다. 늘 바쁘게 이곳저곳을 다니며, 여러 분야의 활동가들과 함께 대중들을 놀라게 하고 대중들에게 감동을 줄 발칙한 프로젝트를 기획한다. 이왕 태어난 거 유의미하고 가치 있는 일을 하다가 죽고 싶다는 그는 예술과 함께 그 가치를 실현하고 있다.




P. 안녕하세요. 기획자 김소진 그리고 인간 김소진에 대한 소개 부탁드립니다.


안녕하세요. 전시를 기획하고 예술 콘텐츠를 제작하는 시각예술 종사자 김소진입니다. 저는 학부에서 미술 이론과 전시기획을 공부했고 졸업 후 대학 친구와 함께 독립큐레이터 팀 ‘장동콜렉티브’를 형성해 활동해 왔는데요. 큐레이터로서 작가들에게 ‘아티스트 피’를 지급하다가 문제의식을 느끼게 됐고, 대학원에 들어와 현재는 문화 행정을 공부하고 있습니다. 지난 7월부터 주변 지인들과 함께 예술과 관련한 모든 일을 시도해 보는 프로젝트팀 ‘1995Hz’를 만들어 활동하고 있습니다.


P. 소진 님의 작업을 보면 타인의 이야기를 길어 올리고 대중에게 소개하는, 이야기 전달자, 혹은 매개자로 느껴지는데요, 이야기 전달자로서 자신의 표현 도구로 '예술'을 선택한 계기가 궁금해요.


예술은 현실과 동떨어져 있어 초월적이고 자유로운 표현 도구입니다. 보통 예술가는 작품 활동을 통해 자신의 정체성을 확립시켜 나갑니다. 대게 관람객은 예술작품을 관람하며 자신의 삶과 맞닿아 있는 지점을 발견하고 거기서 공감을 하거나 충격을 받기도 합니다. 예술작품을 관람하는 동안 관객은 정서적 환기를 통해 자신을 돌이켜보게 됩니다. 세상에는 수많은 예술가가 존재합니다. 그들 개개인의 예술성 즉 각자의 이야기를 길어 올려 대중의 관심과 이목을 집중시킬 때 저는 희열을 느낍니다. 예술은 저뿐만 아니라 모든 예술가가 이 사회에 신선하고 이로운 영향을 끼칠 수 있도록 자신을 끊임없이 자극하고 행동하게 만듭니다.



P. 소진 님은 그간 다양한 프로젝트를 진행해 왔습니다. 놀라울 만큼 연속적인 프로젝트로 활동하셨는데요. 어떤 활동들을 했는지 간단하게 소개해줄 수 있을까요? 활동을 통해서 어떤 방향과 주제를 만들어왔는지  과정이 궁금해요.


시즌제를 도입한 프로젝트는 두 가지가 있습니다. 광주 할머님들의 손맛이 담긴 레시피와 오월에 대한 이야기를 수집하여 제작한 영상 콘텐츠 <오월식탁>, 광주를 기반으로 활동하고 있는 청년 예술가를 소개하는 온·오프라인 플랫폼 <Young Artist Story-YAS!광주>. 지금 가장 마음에 걸리는 건 을지로와 세운상가를 수시로 들락거리며 영감을 받아 기획했던 <반도전자상가 재생프로젝트>입니다. 반도전자상가에 계시는 상인 분들, 청년 예술가, 광주문화재단, 동구청 등등 정말 많은 분의 이해관계가 필요했고 협력 없이는 불가능했던 프로젝트였죠. 작년에 참여자 모두가 큰 만족도를 얻었던 프로젝트이긴 하나 올해 아무것도 하질 못해 일회성에 그치게 되면 어떡하나 마음이 무겁습니다. 내년이 되었든 내 후년이 되었든 앞으로 이어나갈 방안에 대해 모색 중입니다.


P. 90년대 생으로서 80년에 일어난 518을 기록한다는 건 어떤 의미인지 궁금합니다. 태어나기 이전의 역사적 사건에 지속적인 관심을 두고 연구하게 된 계기는 무엇인지?


저는 광주에서 나고 자랐기 때문에 어린 시절부터 매년 오월이 되면 부모님을 비롯한 가족들에게 5·18에 대한 이야기를 듣곤 했습니다. 또 사회문화나 역사 수업을 들을 때마다 당시 현장에 계셨던 선생님들의 생생한 증언과 목격담을 들으며 커왔고요. <오월식탁>을 통해 광주 할머님들의 이야기를 수집하며 지금 제가 하는 일에 대한 중요성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작년에 이어 올해도 5·18을 주제로 청년 예술가들과 전시를 만들어왔었는데요. 광주의 오월을 겪지 않은 세대가 5·18을 주제로 전시를 기획하거나 영상 콘텐츠를 제작했다는 사실만으로 많은 분께 주목을 받았던 것 같아요. 하지만 요즈음 저는 제 안의 한계를 느끼기 시작했습니다. 향후 몇 년간은 광주의 오월에 대한 직접적인 창작활동은 중단할 것 같아요. 더 다양하고 새로운 방식으로 풀어내기 위해서는 5·18에 대한 역사 공부를 깊게 들어가야 하고 예술적 해석에 대해서도 끊임없이 연구해야 합니다. 제주의 4.3 사건과 여순사건 등 5·18에 비해 조명받지 못한 다른 지역의 역사적 사건들에 대해 탐구하고, 광주의 오월과 맞닿아 있는 지점들을 어떻게 미학적으로 풀어나갈 수 있을지 공부하는 시간을 가지려 해요. 그 과정에서 저는 많은 연구자와 예술가들을 만나겠죠? <오월식탁>도 매년 꾸준히 이어가야 한다는 강박관념이 있었는데 코로나로 인해서 작업이 어려워져서 흐지부지됐네요. 제게 남은 시간은 아직 많으니 자신을 재촉하지 않으려 합니다. 앞으로 30대의 김소진, 40대의 김소진이 어떤 식으로 풀어나갈지 궁금합니다.
 
P. 지역의 이야기를 꾸준히 발굴하고, 지역의 역사를 기록 및 전달하는 일에서 어떤 의미를 발견하시는지?
 
지역에 대한 이야기를 발굴하다 보면 결국 사람과 사람 간의 이야기를 발견하게 돼요. 내가 존재하지 않았던 시간에 내가 모르는 사람들이 이루어낸 업적을 파헤치다 보면 거기서 지금의 나와 닿아 있는 지점들을 발견하게 됩니다. 제가 예술가의 예술성을 발굴하고 관람객에게 전달해 주는 일에 뿌듯함을 느낀다고 했잖아요? 마찬가지로 지역의 역사성을 발굴하여 지역민에게 전달할 수 있음에 큰 만족감을 느껴요.

그리고 지금 제가 하는 일에 대해 굳이 의미를 발견하려 하지 않습니다. 제게는 그 누구도 강요하지 않은 사명감이 있어요. ‘광주 토박이인 내가 광주에 대해 이야기를 하지 않으면 쓰나?’라며 자신을 괴롭게 만드는 사명감. 괴로울 필요가 없을 텐데 늘 괴로워요. 



P. 소진 님 자신의 문제의식을 작가를 통해 이야기하면서 협업, 조율하는 과정이 흥미롭습니다. 진행하는 프로젝트마다 대화를 바탕으로 함께 공부하고 세미나 하는 과정이 포함되어 있는데요, 그 이유는 무엇인가요?
 
그토록 경계하는 ‘자기만족에서만 머무는 프로젝트’ 말고 기획자와 참여 예술가들이 유의미한 시간을 갖고 우리들만의 담론을 형성하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전시는 기획자의 의도에 맞게 형성된 담론을 시각예술로써 보여주는 작업이니까요.
 
P. 장동콜렉티브, 프로젝트에서 만나 연대한 예술인들과의 협업의 과정에 궁금합니다. 모든 프로젝트에서 같은 관심사인 예술인과 협업할 수는 없었을 것 같아요. 프로젝트를 조정하고 기획자로서 그들을 이끌어가는 과정에서 관심사가 다른 사람과 만났을 때 어떤 종류의 시너지가 있었나요?
 
이건 사람 간의 관계를 두고도 설명할 수 있어요. 일단 서로 다른 사람이 만나게 되면 서로에 대한 흥미가 생깁니다. ‘이렇게 다를 수가 있다고?’ 내적 감탄을 하며 상대에 대한 신선함을 느끼는 거죠. 그렇게 끊임없는 대화를 하다 보면 서로의 결핍과 장점을 인지하게 되잖아요. 나의 장점으로 인해 상대의 결핍을 채워줄 수 있고, 또 나의 결핍을 상대가 채우게 되면 그것보다 완벽한 시너지가 더 있을까요? 그렇게 또 관계가 이어지게 되는 거고요. 개인적으로 저는 협업하는 예술인들과 일이 끝나면 동료에서 친구가 되고자 사적으로 연락을 끊임없이 시도합니다. 술 한 잔 기울이면서 나누는 대화 속에서 또 영감을 많이 얻게 되거든요.
 
P. 그동안 협업해 온 대상 중에는 예술 향유와 거리가 먼 분들도 계셨는데요, 문화예술 향유가 일반 대중의 삶에 어떤 영향을 줄 수 있다고 생각하세요?
 
“Be kind, for everyone you meet is fighting a hard battle.”

제가 사람들을 대할 때 항상 유념하는 부분입니다. 일상 속에서 치열하게 작은 전쟁을 치르고 있을 대중들에게 ‘문화예술 향유’는 전쟁 통 속 ‘치유, 회복, 성장, 극복을 할 수 있는 힘’이 되리라고 저는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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