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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구아바 Feb 18. 2023

좋아하는 걸 하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1)

요리사_양승연

'채소는 왜 메인이 될 수 없을까. 
센터피스가 채소일 수는 없을까.'

항상 의문을 가졌던 질문에 대한 대답은 비거니즘이었어요. 비거니즘을 지향하면서 이 질문은 더 이상 질문이 아닌 과정이 되었고, 새로운 맛을 찾기 위해 채소를 다양하게 요리해보고 있어요. 더 많은 경험을 통해 저만의 채소 레시피를 계속해서 창작하고 싶어요. 




매일 음식을 먹고 자주 요리를 하고 때로 외식을 하지만, 요리를 직업으로 하는 사람과 직접 만나 대화를 나누기는 쉽지 않다. 요리사 양승연과의 인터뷰를 앞두고 유난히 많은 질문이 떠올랐던 이유는 그에 대해 참고할 수 있는 자료가 아주 적었기 때문이다. 2021년, 그는 독립 큐레이터 김가혜와 함께 독립출판물 <베지 메모vege memo>를 펴냈다. 비건을 위한 레시피를 담은 이 한 장짜리 출판물을 통해 요리사 양승연의 존재를 알았고 “저는 채소를 손질할 때가 가장 즐겁더라고요. 그래서 채소 요리를 더 공부해야겠다는 생각이 비거니즘까지 연결되었어요.”라는 문장 때문에 그를 만나고 싶어졌다.


최근 그는 ‘남의집’(https://naamezip.com/about) 프로젝트를 통해 낯선 사람들을 집으로 초대하고 프렌치 비건 레시피를 소개하는 방식으로 요리사로서의 행보를 이어가고 있었다. 인터뷰에 앞서 우리는 그가 안내하는 레시피를 따라 한 끼 식사를 만들고, 함께 만든 음식을 나누어 먹는 행위로 양승연이라는 사람을, 요리사라는 세계를 만나고 싶었다. 그렇게 2022년 4월의 어느 날, 우리는 광주광역시 북구 삼각동에 위치한 ‘남의집’에서 만나 앞치마부터 두른 채 이야기를 시작했다. 요리하는 사람 양승연의 다정하고 꼼꼼한 안내에 따라 대파를 태우듯이 굽고 느타리버섯을 길게 찢으며.




P. 안녕하세요. 소개 부탁 드립니다.


안녕하세요. 양승연입니다. 저는 요리가 좋아요. 요리를 좋아하는 저도 좋아요. 그렇다고 요리만 좋아하지는 않아요. 바다와 수영, 소파도 좋아해요. 새로운 사람과 금방 친해지지만 혼자 노는 걸 좋아해요. 아, 목표 세우는 것도 좋아해요. 제가 어떤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자주 하는데, 선한 영향력을 주는 사람이 되고 싶어요. 함부로 편견을 가지지 않는 사람. 나만의 색을 가지고 있는 사람. 좋아하는 걸 하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


P. 손님으로서 수많은 요리를 만나고 먹어 왔지만, 요리사와 직접 만나 대화한 적은 처음이라 인터뷰를 준비하면서 참 설레었어요. 언제부터 음식을 만드는 것에 흥미를 느꼈고 요리사가 되기로 결심하게 되셨나요?


살짝 창피한 말이지만, 드라마 ‘파스타’를 보고 요리에 흥미를 가지게 되었어요. 구박받으면서도 끝까지 파스타를 만들겠다는 그 의지가 멋있어 보였던 걸까요? 대학교 입학 후 이니셜이 박힌 칼을 처음 잡은 날은 어찌나 설레던지, 그 순간 ‘아 나 오랫동안 이걸 사랑할 거 같다’ 싶었어요. 하지만 현실은 요리 초보자에, 재능이 없으니 그만두라는 말도 정말 많이 들었어요. 그렇지만 그만둘 수 없었어요. 그만두기엔 제가 요리에 공들인 시간이 10년도 되지 않았고, 한 분야에서 전문가가 되기 위해서는 10년 이상은 해야 한다고 생각했거든요.


그리고 2017년, 불가리아 대회에서 “이렇게 사랑스러운 요리를 보여줘서 고맙다며 계속 요리해 줬으면 좋겠다”는 심사위원의 말에 내가 사랑하는 이 요리를 계속해야겠다 결심하게 됐어요. 아직도 그때를 잊을 수 없어요. 제 요리가 좋아진 그날을요.


P. 이력을 보면서 요리사가 단순히 요리를 만들고 연구하는 사람이 아닌 공간까지 관리하는 직업으로 보였어요. 지금의 양승연이 있기까지 그동안 주요하게 담당했던 일은 무엇인지, 업무환경은 어땠나요?


요리사는 요리만 하는 걸로 많이 비춰지는데요. 요리사는 좋은 재료를 골라 재료에 맞게 손질하고 얼마나 오래 보관할 수 있는가를 시작으로 다양한 요리 기술과 더불어 청결함과 서비스까지 좋아야 해요. 거기에 신메뉴도 개발해야 하니, 신경 쓸 게 정말 많은 직업인 거 같아요.  제가 일했던 식당은 주요 담당했던 일이라는 게 없었어요. 같이 일하는 사람들과 담당업무를 돌아가면서 맡았거든요. 그래서 문제점을 더 잘 파악하고 개선해 나갈 수 있었던 거 같아요. 직급이 없어서 말하기 더 쉬웠을 수도 있었겠네요.  일도 일이지만 함께 일했던 멤버가 정말 좋았어요. 정말 하루종일 요리 이야기 밖에 안 했어요. 아침부터 밤까지.


P. 요리사로 일하면서 '나를 위한 요리' 보다는 '남을 위한 요리'를 하셨는데, 만드는 과정에 있어서 전자와 후자의 차이점이 있나요?


저에겐 ‘남을 위한 요리’가 곧 ‘나를 위한 요리’에요. 제가 만든 요리를 제가 맛보았을 때 맛있어야 당당하게 남에게 요리를 내어주게 되더라고요. 제가 먹었는데 맛없으면 그건 완성된 요리가 아니거든요. 제가 좋아하는 재료를 활용해서 저만의 요리를 창작하는 그 과정뿐만 아니라 식당에서 일할 때 요리하던 그 순간들도 요리하는 게 좋아서 했던 거여서 결국 나를 위한 요리를 해왔던 거 같아요.


P. 지금은 요리를 매개로 사람들을 만나는 프로젝트, 매거진 발행, 요리 스터디, 갤러리 전시까지, 다양한 창작 활동을 하고 계시는데요, 특정 식당에 소속되어 일하는 셰프 대신 창작자의 길을 걷게 된 계기가 있으세요?


퇴근을 하는 도중에 교통사고를 당하게 됐어요. 운전자가 브레이크 대신 액셀을 밟아버린 사고였는데, 후유증이 크더라고요. 사고 이후 주방에서 일하기엔 몸이 좋지 않았는데, 요리는 계속하고 싶었어요. 좀 쉬면 몸이 다시 괜찮아지지 않을까 싶어 독립서점에서 일해 보았는데 거기에서 가혜 쌤을 만났어요. 그게 제가 창작자가 된 계기가 된 것 같아요. 특정 식당에서 일해야만 요리를 하는 거라고 생각했는데, 가혜 쌤을 만나면서 요리를 다양하게 풀어나가는 방법을 알게 되었거든요. 더 다양해질 제 모습이 기대돼요.


P. 재료를 선택하는 과정이 궁금해요. 레시피를 개발하고 완성하는 과정에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이 있나요?


저는 계절 채소 중 제가 자주 접해보지 않았던 재료들을 선정하는 편이에요. 절기마다 가장 맛있을 재료들을 그냥 놔둘 수 없잖아요. 토란같이 한정된 조리법으로 사용되고 있는 재료나 당근처럼 흔한 재료로 새로운 요리를 개발하는 등 도전하는 걸 좋아해요. 재료가 선택되면 그 재료를 굽고, 삶고, 튀기고, 빻아보기도 하면서 이 재료에서 나올 수 있는 다양한 맛을 찾아요. 그리고 재료의 모든 부분을 사용하려고 해요. 채소는 못 먹을 게 없거든요. 그게 채소의 매력인 거 같아요. 그 매력을 최상으로 끌어내는 게 요리사의 역할이라고 생각해요. 무엇보다도 제가 먹었을 때 만족스러워야 해요. 내가 만든 요리를 내가 먹었는데 그저 그렇다? 그건 요리라고 할 수 없어요.


P. 그동안 해오신 작업들을 보면서 ‘말을 걸어오는 사람’이라는 느낌을 받았어요. 남의 집 프로젝트로 ‘프렌치 비건 레시피’ 원데이 클래스도 하시잖아요. 그런데 요리를 만든 후 함께 먹으며 이야기 나누는 시간이 1시간이나 잡혀 있더라고요. 요리를 매개로 한 ‘대화’는 요리사 양승연에게 어떤 의미인가요?


비거니즘을 지향하는 사람이 광주에 있긴 할까 싶을 정도로 광주에 비건 커뮤니티가 없더라고요. 제 친구들도 비거니즘에 대해 잘 모르고, 같이 비거니즘에 대해 이야기 나눌 사람이 없어서 비거니즘 친구를 만나고 싶었어요. 처음에는 이걸 계기로 이야기 나누는 시간을 만들었는데, 이미 비건인 사람보다 비거니즘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오신 분들이 훨씬 많더라고요. 그러다 보니 비거니즘이란 무엇인지에 대해 알리게 되는 일이 많아졌는데 어느 순간 책임감이 생기더라고요. 더 많은 사람에게 비거니즘을 알려야겠다는 책임감이요. “완벽한 비건 1명보다 불완전한 비건 100명이 훨씬 가치 있다”는 보선 작가님의 말처럼, 불완전한 모습 그대로 충분히 가치 있는 비건 친구 100명을 만들고 싶어요.


P. 잡지 < 베지메모vegememo >를 통해 승연 님을 처음 알게 됐는데요, “어떤 식자재를 만졌을 때 가장 즐겁냐?”는 질문을 받고 ‘채소’라는 걸 알게 된 후 채소 위주의 요리를 하게 되셨다고요. 육류나 생선이 아닌 채소를 손질할 때 느껴지는 즐거움을 좀 더 자세히 소개해 주실 수 있을까요?


채소를 칼로 베어낼 때의 그 단단함과 아삭한 느낌이 참 좋아요. 형형색색의 색감뿐만 아니라 고기의 잡내, 생선의 비린내 대신 채소의 풀내음도 기분 좋아지게 만들어줘요.



<vego memo>는 더 많은 사람들에게 비거니즘을 알리고자 예술하는 청년 셋이 모여 만든 독립출판 요리매거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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