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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구아바 Feb 11. 2023

내 마음대로 쓰는 사람

작가_김보라

남이 좋다고 하는 이야기 말고 내가 좋다고 하는 이야기를, 내가 좋아하는 방식으로, 내가 좋아하는 단어를 사용하고, 내가 좋아하는 문장으로 썼으면 좋겠어요. 남이 별로라고 말하면 꺼져, 이 자식아, 하는 마음을 가지면서요.




인터뷰하는 내내 우리는 자주 웃었다. 이번 인터뷰의 자료는 주로 단편소설이었다. 아는 사람의 글을 읽으면 평소에 하는 생각과 자주 했던 행동의 이유를 알 수 있어서 더 재미있다고 하는데, 이 말에 완전히 공감한다. 엉뚱하고 귀여운 글을 읽으면서 드는 생각은 이 작가가 정말 자기 마음대로 글을 쓰는 사람이라는 것이었다.


보라를 인터뷰이로 선정하고 난 뒤 온오프라인으로 흩어져 있는 글을 수집하고 나눠 읽으며 질문지를 완성했다. 수많은 궁금증을 추리고 추려낸 질문지를 조심스럽게 건넸더니 보라는 질문을 보자마자 깔깔 웃었다. 나중에서야 그 이유를 들어보니 자신의 한 작업이 그렇게 많지 않은데 끌어모은 게 재밌었다고 했다. PADO 멤버들은 끌어모은 보라의 작품들을 모두 읽은 뒤 보라를 만났다.


한편, 보라는 ‘사서 고생하는 사람들’의 관점을 넓혀준 인물이기도 하다. 그동안 만난 사람들이 자신의 신념을 위해 추진하는 활동을 보면서 항상 에너지의 근원이 궁금해했다. 이번 인터뷰에서는 스스로를 정의하는 첫 질문에 자신이 게으르다고 말하는 대답이 먼저 나왔다. 그리고 보라와 대화를 나누는 동안 그만의 사서 고생하는 방식을 알아갔다.


마음대로 쓴다는 것은 기존의 틀을 벗어나야 가능하다. 오직 나만의 것을 지키기 위해서는 결국 자신이 진짜라고 생각하는 것을 쓰기 위해 분투하는 과정이 포함된다.




“나는 살면서 어느 순간에서도, 어느 공간에서도 중심에 있었던 적은 없었지만 전망대라고도 할 수 없이 작고 낮은, 어떤 개자식들이 야금야금 버리고 간 쓰레기들로 가득 찬 그곳에서만큼은 중앙에, 정 가운데에, 중심에 우뚝 서도 괜찮을 것 같았다. 발아래는 쓰레기로 가득했지만 그 위로는 예상과 달리 이상하리만치 상쾌하고 시원한 공기로 가득 차있어서 열 번을 아주 크게 심호흡을 했다.”
 
- 《무등산수박등》 65쪽


P. 안녕하세요. 작가 김보라 그리고 인간 김보라에 대한 소개 부탁드립니다.


안녕하세요. 짧은 소설과 시를 쓰는 김보라입니다.


P. 브런치에 연재한 <연재 실패> 시리즈를 독자로서 무척 재미있게 읽었는데요, 먼저 기획 의도대로 연재에 실패하신 걸 축하합니다.^^ 실패보다는 성공 이야기에 열광하는 세상에서, 실패를 기록으로 남기고 연재까지 하게 된 이유가 궁금합니다. (그런데 시즌1 20화, 시즌2 23화, 시즌3 16화, 그러니까 총 59화나 연재했다면 이것은 성공이 아닐까요?)


성공이라는 건 없다고 생각해요. 원주율처럼 성공에 한없이 가까워질 수는 있어도 완전한 성공은 없어요. 아주 작은 결함에도 성공은 쉽게 실패가 되잖아요. 하지만 실패는 괜찮은 것 몇 개로 막아지지 않더라고요. 그런 생각을 가지고 있으면 성공에 대해서 쓸 수 없고, 내가 겪는 모든 일이 실패인 거예요. 그래서 저와 비슷한 생각을 가진 오랜 친구 미영언니와 함께 실패를 연재하게 되었습니다. 지금은 저 혼자 번외 편을 쓰고 있지만 머지않아 다시 함께 쓸 예정입니다.


➜ <연재 실패> 시리즈를 볼 수 있는 작가의 브런치


**사진 설명 : 타이핑보다 손으로 쓰는 게 더 편하다는 작가는 요즘 종이에 쓴 글을 사진으로 찍어 올리는 방식으로 연재를 이어가고 있다. PADO 멤버 가혜는 그가 글씨 쓰는 모습을 곁에서 지켜본 적이 있는데 “자음 하나를 쓸 때도 배운 대로 쓰지 않고 자기 편한 방식으로 쓰는 모습이 참 새롭고 재미있었다”며 정말 신나게 웃었다. ㅇ과 ㅁ이 닮은 글씨체, 콜라주 작품처럼 사진을 덧붙인 작업물에서 묘한 자유로움이 느껴지지만, 가끔씩 점 6개를 꼭꼭 채워 쓴 말줄임표(……)를 발견할 때면 자신이 세운 기준은 꼭 지키는 어떤 결의(?)가 엿보이기도 하는데….



P. 실패에 대해 쓰는 일은 가장 보편적인 이야기를 쓰는 것과 닮은 것 같아요. 우리는 대부분 실패하니까. 제게도 커다란 실패 보따리가 있고 실패에 대해 이야기하자면 밤을 새워도 모자랄 것 같은데요, 작가 김보라의 실패 보따리 중에서 ‘최고의 실패’ 하나를 뽑아 소개해준다면?


솔직히 매일매일 역대급 실패를 갱신하면서 사는 것 같아요. 직장도, 수입도 없이 지내는 현재 상황이 그야말로 최고의 실패의 순간이지 않을까요. 와하하하~!


P. 저희와 인터뷰하고 있는 오늘은 최고의 순간이 아닐까 싶은데요, (^^;) 이전에 인터뷰해 본 적 있으세요?


아니요, 처음이에요. 제안받았을 때 ‘내 인터뷰 누가 보고 재미있어할까?’ 하는 생각이 먼저 들었지만, 일단 뭐든 해야겠다, 놀고 있는 사이에 데이터를 많이 쌓아놔야겠다고 생각했어요. 제가 조금이라도 잘 됐을 때 누군가 ‘김보라’를 검색하면 검색할 맛이 좀 나야 그 사람을 더 알아가고 싶어 지잖아요. 저는 그렇더라고요. ‘이 사람 괜찮은데?’ 하고 검색했는데 아무것도 안 나오면 거기서 끝이더라고요.


P. 지금의 상태를 ‘놀고 있다’고 표현하셨는데 왜 그렇게 느끼세요?


연재도 하면서 계속 글을 쓰고 있지만, 결과물에 쏟던 정성이나 퀄리티 등을 예전만큼은 신경 안 쓰고 있어서 그런 것 같아요. 형편없다고 느끼는 결과물도 일단 올리는 거죠. 쓴 글을 자꾸 다듬다 보면 아예 못 쓰겠더라고요. 시간도 너무 많이 없어지고. 지금은 뭔가를 할 때, 내가 이거 하나를 해서 정말 좋은 걸 만들어 볼 거야, 이런 생각이 크게 없는 것 같아요. 여러 개 만들다 보면 그중 하나는 마음에 드는 게 나올 테고 그 하나를 좀 다듬어보자, 하는 쪽이에요. 그래서 노는 것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하고.



P. 나 자신을 표현할 수 있는 도구는 무궁무진하지만, 작가 김보라에게는 그 도구가 ‘글’이 아닐까 싶어요. 자기만의 도구를 언제 알아채셨나요?


스스로를 잘 모르던 시기에 공부가 싫어서 돌파구처럼 찾은 게 예체능이었고 그중에 당장 시작할 수 있는 게 글밖에 없었어요. 그래서 하게 됐고요. 입시를 시작으로 대학에서 글을 배운 게 저에게는 일종의 훈련이었다고 생각해요. 지금은 그때 익힌 것들을 가지고 변형에, 변형에, 변형을 더하고 있는 거고요.


P. 현재 ‘초단편’이라고 부르는 짧은 소설과 시를 주로 쓰시는데, 짧은 글을 선택한 이유가 궁금해요.


대학에서 강제로 소설을 쓰던 시절에 ‘나 긴 글 쓰는 거 진짜 싫어한다’는 생각을 정말 많이 했던 것 같아요. 원래는 단편소설 분량을 채우려고 엄청 노력하면서 소설을 썼는데, 어느 순간에 이럴 필요가 없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분량을 맞추려다가는 한 편도 못 쓰겠다 싶어서 제 마음대로 그냥 줄여버렸어요. 이전에도 소설을 쓰면 ‘시 같다’는 얘기를 많이 들었거든요. 그러면 시랑 소설의 중간 분량으로 쓰자, A4 두세 장짜리 콩트 분량으로 그냥 써보자, 하는 생각으로 짧은 글을 쓰기 시작한 것 같아요. 긴 걸 쓰기가 너무 싫어서.


P. 2021년에 독립출판물 《무등산수박등》을 내셨는데요, 읽으면서 정말 섬세하게 일상의 물건, 감정을 표현하고 있다고 느꼈어요. 보라 쌤은 일상 속 모든 대상 또는 경험에서의 감정을 어떻게 느끼고 기록하시나요?


그냥 가만히 있으면 아무 생각도 안 드는 것 같아요. 생각도 뭘 보고, 해야 드는 거니까요. 근데 또 게을러서 뭘 잘 하지는 않고, 유튜브 많이 보고 가끔 책 읽고 하면서 마음에 드는 생각이 들면 냉큼 핸드폰 메모장에 적어둡니다. 글을 쓸 때 그걸 차근차근 읽으면서 쓸 만한 문장을 골라 시작해요.


➜ 탈서울, 탈이성애 서사 《무등산수박등》


Q. 《무등산수박등》을 읽을 땐 몰랐는데, 브런치에 연재 중인 <연재 실패>를 읽으면서 알게 됐어요. 글 쓰는 사람 김보라는 글을 정말 힘들게 쓴다는 사실을요. 저 역시도 글쓰기란 엄청난 에너지가 소모되는 일이라고 생각하는데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속 쓰시는 이유가 궁금합니다.


너무너무 화가 날 때가 있잖아요. 살다 보면. 그럴 때 뭔가를 깨부술 수도 없고 누구를 패 죽일 수도 없잖아요. 그러면 안 되는 거니까. 근데 깨부수고 싶다, 패 죽이고 싶다, 이렇게 쓸 수는 있으니까요. 그렇게 쓰다 보면 처음 생각과 완전히 다른 결과물로 글이 도출되는 때가 많은데 그걸 조금 재밌어하는 것 같아요. 많이는 아니고요. 내가 단지 있었던 일을 기록하는 게 아니라 그걸 한데 모아서 생각과 언어를 이리저리 재구성해서 만들 때가 조금 재미있어요. 역시 많이는 아니고요.


“그럼 나는 무슨 나쁜 일을 했을까. 네가 이걸 본다면 내가 했던 나쁜 짓들에 대해서 좀 말해줄래? 내 생각에 내가 저지른 나쁜 일은 침대 위에서 가루가 많은 과자를 먹은 것뿐이라서 말이야.”

- 《무등산수박등》 85쪽



P. 글 속에 ‘강’ ‘물’ ‘저수지’ 등 물의 이미지가 자주 등장해요. 강을 따라 걷거나 멍하니 바라보는 일을 좋아하는 사람으로 느껴지는데, 작가님에게 ‘강을 보러 가는 것’은 어떤 의미인가요?


대가가 없는 일 같아요. 뭘 주지 않아도 되고, 아무 말 안 해도 되고, 서로 바라는 것도 없고 나만 알아서 좋을 대로 쓱 보고 오면 되는 부담 없는 일이라서 좋아요. 강물은 나쁜 짓을 저지르지도 않고 나한테 뭐라고 하지도 않고 나만 쓰레기 안 버리고 조용히 보다가 오면 되는 거라 참 편하고 좋죠.


“저수지를 보는 게 좋다. 어디로도 흘러갈 리 없는 걸 보는 게 좋다.”

- 《무등산수박등》 9쪽


“반짝이는 강물. 반짝이는 건 다 아름답구나, 하면서 걸었어. 그렇게 한참을 걷다 다시 보니 강물이 아닌 거야. 길 아래로 펼쳐진 비닐하우스들인 거야. 비닐하우스를 강물인 줄 안 거야. 아무도 나를 속이지 않는데 왜 나는 매번 속아 넘어가는 걸까.”

- 《무등산수박등》 91-92쪽


P. 광주에서 학창 시절을 보내고, 서울에서 문예창작을 공부하다 다시 광주로 오셨어요. 저는 작가님이 광주에서 다시 활동하기 시작한 시점부터 멀리서나마 보게 되었는데요. 어느새 활동기반을 다지고 동료 창작자들과 협업하는 모습을 보면서, 어떤 에너지와 관계로 만들어졌을까 궁금했어요.


텍스트를 기반으로 작업을 하는 저는 다른 분야의 창작자들과의 협업이 절실해요. 글만 있어서 된다고 생각하지 않거든요. 메일링만 해도 글만 있다고 해서 되는 게 아니잖아요. 거기에 멋진 디자인과 다른 볼거리들이 필요하죠. 또, 분야를 막론하고 시대적 핵심 주제는 이어져있으니 여러 창작자들을 만나고 이야기하면서 제 작업에 방향을 만들기도 하고 아이디어를 얻어가기도 해요. 무엇보다 저는 동료 창작자들의 작업물을 전적으로 신뢰합니다. 타인의 결과물에 제 의견을 내세우지 않아요. 지적하거나 아쉬운 점도 말하지 않고요. (윤리적인 경우를 제외하고)작품에 문제가 있어 보이는 건 제가 그 작품을 잘 이해하지 못한 거라고 생각해요. 다 이해할 수도 없고요. 그리고 알고 보면 그렇게 작업을 한 이유들이 있더라고요. 그런 점이 좋은 협업 에너지가 되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무등산수박등》 작업할 때도 최지선 디자이너의 그림을 넣고 싶었어요. 지선의 작업 중에 ‘고민을 바라보는 엽서’라는 게 있는데, 어떤 사람의 손바닥에 무언가가 흐르고 있고 그 사람이 손바닥을 바라보고 있어요. 그런데 그게 ‘고민을 바라보는 엽서’라는 거예요. 그 생각이 너무 웃기고 재미있었어요. 《무등산수박등》에는 일러스트뿐만 아니라 그래픽 디자인도 들어가는데, 그런 점들이 되게 좋았던 것 같아요. 그림에 군더더기가 없다는 점도 좋고요.


 ➜ 최지선 디자이너 인터뷰 클릭


“책을 낸 집요한 몇 가지 이유가 있다면 함께 책을 내기로 도모한 그래픽디자이너와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서가 그 첫 번째고, 언젠가는 서울 아닌 곳에서 사는 여성의 서사를 책으로 내고 싶다는 어떤 욕심이 두 번째 이유였다.”

- 〈연재 실패〉 시즌2, 5화 ‘독립출판물 만들기 성공’ 중에서


P. ‘무해한 글쓰기’와 ‘유해한 글쓰기’라는 이름의 수업을 진행하셨는데, 두 수업의 차이가 있을까요? 참고로 저희 PADO 멤버 가혜는 ‘유해한 글쓰기’ 2년 차에 접어든 수강생이기도 한데요, 작가님의 수업이 글쓰기 실력은 물론 자존감까지 높여준다고 자랑하더라고요. 가혜를 포함한 수강생들이 수업으로 얻었으면 하는 점이 있나요?


‘무해한 글쓰기’는 독립서점 러브앤프리에서 처음 진행했던 글쓰기 수업인데요. 쓰거나 읽는 숙제 없이 글쓰기 수업을 하고 싶다는 마음으로 만들었어요. 근데 1:1 수업을 하게 되면서 숙제도 좀 생기고, 가끔 글도 읽어 와야 하고 그렇잖아요. 글을 쓰게 한다는 게 무해할 수가 없거든요. 스트레스예요, 스트레스. 아 이건 참 삶에 유해하다, 싶은 생각이 들어서 유해한 글쓰기로 말을 바꾼 거예요.


제 수업으로 수강생들이 ‘진짜’를 쓰는 마음을 얻어갔으면 합니다. 이 글을 타인이 읽으면 어떨까 하는 마음에 덧붙이는 가짜 이야기들 말고 진짜로 하고 싶은 말들을 활자로 치환하는 과정을 알아갔으면 좋겠어요. 남이 좋다고 하는 이야기 말고 내가 좋다고 하는 이야기를, 내가 좋아하는 방식으로, 내가 좋아하는 단어를 사용하고, 내가 좋아하는 문장으로 썼으면 좋겠어요. 남이 별로라고 말하면 꺼져, 이 자식아, 하는 마음을 가지면서요.


P. 글쓰기 수업 외에 협업도 자주 하시는데요, 앞으로 해보고 싶은 작업이 있나요?


책을 하나 더 만들고 싶어요. 써둔 이야기는 없지만 이번에도 짧은 소설 몇 편을 엮어내고 싶은 마음이 있습니다. 《무등산수박등》에 무언가를 바라보고, 어딘가를 걸어가는 이야기를 많이 썼는데요. 그런 이야기들을 더 많이 쓰고 싶다는 생각을 갖고 있어요. 또, 텍스트를 활용한 전시도 해보고 싶어요. 구체적이지는 않지만요.


P. 어떤 주제의 소설이 될지 너무 궁금한데요.


특별한 주제는 없고, 뭐라고 해야 하지. (‘뭐라 해야 되지’를 자주 하는 건 제 말습관인데...) 최근에 쓴 〈연재 실패〉 에피소드 중에 얼음 잔에 얼음을 넣어 놓고 커피를 붓는 얘기가 있는데, 그걸 써놓고 너무 마음에 들더라고요. 그게 되게 당연한 이야기인데, 당연한 이야기를 그냥 계속해놓으니까 되게 재미있다는 생각이 들었고, 소설도 그런 이야기를 쓰고 싶어요. 바람이 불어서 나뭇잎이 떨어지고, 그냥 그런 것들, 당연한 이야기들.


“어릴 때는 아무 감동도 느끼지 못했던 표현들이 이제야 너무 아름다워서 감당이 안 될 때가 있다. 파도가 부서진다는 말도 그중 하나다.”

- 독립출판물 《녀석이 다가온다》 리뷰 중에서


P. 작가님 브런치에서 이 문장을 발견하고 ‘파도가 부서진다’는 표현에 오래 머물렀어요. 곱씹을수록 선명해지는 눈앞의 풍경이 정말 아름답더라고요. 인터뷰를 마무리하면서, 작가 김보라가 느끼기에 "너무 아름다워서 감당이 안" 되는 표현을 몇 가지 더 듣고 싶어요.


가슴이 미어지다, 가슴이 차갑다, 가슴이 따뜻하다 같은 표현들도 참 좋아요. 정말 그 마음이 뭔지 알 것 같고 그렇잖아요. 미어진다는 게 사전적으로 ‘가득 차서 터질 것 같다’는 의미를 갖고 있는데 그걸 ‘가슴’ 뒤에 붙여서 ‘찢어질 듯이 심한 고통이나 슬픔’이 되는, 그런 것들을 생각하면 감당이 안 될 때가 있죠.


P. 모든 인터뷰이에게 공통으로 드리는 질문인데요, 작가 김보라에게 산다는 것은 어떤 일인가요?


그냥 바보 같은 거죠. 똑똑하게 살려고 해도 매번 좀 당하고, 넘어져서 발목이 삐고 그러는….


광주로 내려온 지 2년, 이 바닥에서 살아남기가 얼마나 힘든지 체감하는 중이다. 한 다리 건너면 친한 사람, 두 다리 건너면 아는 사람, 전에 같이 일했던 사람, 함께 작업했던 사람. 새로운 사람과 새로운 생각은 낄 틈도 없이 끈끈하고, 당연하면서도, 눈에 보이지는 않는 네트워크가 촘촘히 연결되어 있다. 그러니까 그 사이에 있는 몇 명의 꼰대를 마주치고 또 마주치고, 또 마주치고 하는 것이다.

그들은 작년처럼 올해를 일하고, 작년에는 재작년처럼 일했을 것이다. 이들 사이에서 낙오됐을 20대들이 얼마나 많을지 헤아려보다가 마음이 너무 아파 꼰대 사이에서 낙오된 20대들의 열정무덤을 만들어주고 싶을 정도였다. 그러나 현실은 나나 잘하자. 나도 꼰대가 되어가고 있을지 몰라. 설마 이미?!

- 인터뷰 책 《서울 아닌 곳에서 예술로 먹고 살기》 리뷰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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