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교육활동가_하리
이 세상을 함께 살아가는 존재로서, 네가 나와 다르더라도, 우리는 다 연결되어 있음을 자각하고 모든 존재를 소중히 여기는 마음으로 대화하고 싶어요.
냉기 가득한 가을 저녁, 하리를 처음 만났다. 평화, 자유, 사랑 등 다양한 주제와 연결되어 있는 하리는 주어진 하루를 온전한 마음으로 살고 싶다고 말했다. 삶의 주체로서 일상을 살아가고, 광주라는 터전에서 평화교육을 하고, 여러 지역을 여행하며 신기한 만남을 이어가는 하리는 인간 그리고 비인간과 느슨한 연대를 추구하는 사람. 그런 하리의 일상이 궁금해 인터뷰를 요청했다. 생각과 달리 마냥 평화로운 삶을 사는 것도, 화가 없는 평온한 성격도 아니었다. 하지만 불편함을 기꺼이 감수하며, 미소를 잃지 않은 채 뚜벅뚜벅 걷는 그녀의 일상은 어떤 순간에도 평화를 향해 있었다.
P. 안녕하세요, 하리. 소개 부탁드려요.
안녕하세요. 자연스럽게, 자유롭게 살고 싶은 하리입니다. 이름은 이하영인데, 하리라는 별칭을 쓰고 있어요. '하루살이'의 (제가 정한) 준말인데요. 자연스럽고도 자유롭게 하루를 온전히 잘 살고 싶다고 늘 생각하던 중, 어느 날 문득 하루만 살다 가는 하루살이를 보고서 별칭으로 정하게 됐어요. 하루를 보내더라도 내가 있는 공간과 시간에 현존하며 살고 싶어요. 여러분은 ‘하리’하면 떠오르는 것이 있나요? 별칭에 대한 뜻을 잘 소개하지 않는데, 그러다 보니 사람들이 다른 의미를 찾아주기도 하더라고요. 의미가 확장되는 것도 재밌어요. 종종 하리보를 좋아해서 하리라고 소개하기도 해요.^^ 저는 무언가 틀에 박혀있는 걸 좋아하지 않아요. 늘 열려 있고 그게 무엇이든 괜찮다는 마음으로 살고 있고 쭉 그렇게 살고 싶네요. (근데 가끔 잘 안될 때도 있어요. 저도 사람인지라...ㅎ) 너른 품을 가진 지혜로운 할머니가 꿈이에요.
P. 동에 번쩍, 서에 번쩍, 홍길동 같은 하리를 만나면 가장 먼저 묻고 싶은 질문이 있었어요. 지금은 어디에서 뭘 하면서 지내나요?
친구들과 만날 때 늘 저희가 하는 말이 있는데요. "우리는 어디에나 있고, 어디에도 없다!" 거주하는 곳은 광주광역시인데, 늘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다 보니 정작 광주에서 머무는 날이 많지 않아 농담처럼 서로 주고받는 말이에요. 여전히 다른 지역들을 오가지만, 지금은 주로 광주에서 평화교육 활동을 하며 지내고 있습니다.
P. 하리의 일상을 따라가다 보면 자연스레 '평화'라는 키워드가 떠올라요. 삶의 중심에 '평화'라는 키워드가 자리 잡게 된 때가 언제부터였는지 기억나세요?
2020년이었어요. 그 이후로 조금씩 삶이 바뀌었는데요, 2020년은 새로운 것들과 만나고 연결되면서 저의 세계가 조금 더 확장되는 시간이었어요. 일본 미야자키에서 '표주박 시장*'이라는 캠프가 열렸는데, 준비물이 텐트, 침낭, 식기, 그리고 야생의 몸과 마음이었어요. 뭐 하는 곳인지 감이 안 잡혔지만, 궁금하기도 하고 마침 시간도 되고 캠핑이 낯설지는 않아서 훌쩍 가버렸죠. 코로나 시작 전이었는데요, 숲에서 일주일 정도 지내면서 좋은 에너지와 영감을 받았어요. 알 수 없는 충만함이 있었고요.
한국으로 돌아와서 그 상태를 유지하려고 하던 일을 멈췄어요. 잠시 쉬기로 결정한 거죠. 그런데 머지않아 코로나가 등장했고, 모든 것이 다 멈추었잖아요. 지금 이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으로서 자연스럽게 나와, 타자와, 이 세상과 건강하게 연결되어 살아가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고요. 사람뿐 아니라 비인간동물을 포함한 모든 존재가 안전하게 온전히 관계 맺으며 살아가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평화'라는 키워드를 품게 됐네요.
+ 표주박 시장을 더 알고 싶다면? 클릭
P. 하리는 현재 ‘평화교육’을 매개로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고 있잖아요. 처음 ‘평화교육’이라는 말을 들으면 조금 생소하게 느껴지는데요, 하리가 만난 ‘평화교육’이란 무엇인지, 처음 평화교육을 공부하고 수업을 하게 된 것이 무엇이었나요?
평화교육을 하고 있지만, 설명하는 게 여전히 어려운데요. '평화'하면 아마 사람마다 다양한 키워드가 떠오를 거예요. 특히 학생들을 만나다 보면 전쟁을 먼저 떠올리곤 하는데요. 큰 틀에서의 전쟁과 평화도 있겠지만, 제가 하는 평화교육은 일상에서의 평화(나의 평화와 우리-공동체의 평화)에 대해 나누고 경험하는 방식의 수업이에요. 우리는 혼자 살 수 없잖아요. 타인과 함께 살아가면서 의사소통을 하게 되는데, 갈등이 생길 때 어떻게 하면 응보적 방식이 아닌 회복적 방식으로 나아갈 수 있을지 고민하고, 그것을 다양한 활동을 통해 성찰하는 방식으로 가르침과 배움을 이어가고 있어요. 평화수업은 서클 방식으로 진행되는데요. 서클은 동그랗게 앉는 걸 말해요. 누군가의 등을 바라보며 한 선생님을 중심으로 수업이 진행되는 것이 아니라, 둥그렇게 앉아 모두가 동등한 위치에서 서로의 목소리를 들으며 표현하고 나눠요. 가르치는 방식이 아니라 함께 경험하며 서로 배우는 것이 무엇보다 좋았어요. 진행자로서 저는 그들에게 활동을 안내하고, 더 나아가 질문을 하는 역할이라 생각해요.
2020년에 일을 잠시 쉬면서 프로젝트를 하던 중, 광주에서 평화교육활동을 하고 있는 '날개(별칭)'를 만났는데요. 처음엔 그분이 어떤 일을 하는지 몰랐고, 평화공부모임을 최근에 시작했다고 해서 일단 공부모임에 들어갔어요. 평소에 저는 하고 싶은 말을 누군가에게 전하는 걸 어려워하는 편은 아니었는데, 그것이 때로는 너무 직설적이거나 상대에게 상처를 줄 수도 있는 방식이라 느껴져서 어떻게 하면 내 마음과 생각을 잘 전달할 수 있을까, 마침 고민하던 때였어요. 같이 책 읽고 생각을 나누다 보면 도움이 되겠다 싶었죠. 어떤 책을 읽을지 궁금하기도 했고요. 이후에 날개가 학교에서 평화수업을 진행하는데 같이 해보지 않겠냐고 제안해 주셨어요. 이런 수업이 있다는 게 새롭고 신기하기도 하고, 직접 경험해 보니 저에게도 많은 배움이 있어서 관심을 가지게 되었어요. 이제는 진행자이자 동료로 함께 활동하고 있어요.
P. 저는 나이가 들수록 저와 비슷한 사람만 가까이하게 되고 새로운 사람을 만날 기회가 적다고 느끼는데요, 하리 곁에는 사는 지역도, 개성도 다양한 친구들이 정말 많더라고요. 그중에서도 머시기마을 친구들을 빼놓을 수 없는데요, 하리가 자주 꿍꿍이(?)를 벌이는 머시기마을은 어떤 모임인지 소개 부탁드려요.
2020년 7월에 ‘어쩌면 우린 매일 전쟁을 겪고 있는지도’라는 이름으로, 영화 <기억의 전쟁> 상영회가 있었어요. 머시기마을(@meosigi_village)은 그 뒤풀이 모임에서 시작된 커뮤니티예요. 그날 모인 사람들이 서로 다른 시선으로 베트남 전쟁을 바라봤고, 처음 만났지만 마치 살풀이라도 하는 것처럼 각자의 서사를 풀어냈어요. “어쩌면 우린 전쟁의 피해자도 가해자도 아닌 생존자로 오늘을 살아가고 있는 건 아닐까? 우리 때때로 만나 살아있음을 확인하는 자리를 가져보자” 이야기가 나왔고, 그게 현실이 되어서 정말 누구든 재미난 일이 떠오르면 이러쿵저러쿵 머시기로 꿍꿍이를 벌여 만남을 이어가게 되었어요. 그 사이 두 번째 만남에 이어 세 번째 만남까지 있었네요. 머시기마을 주민(멤버) 중 누군가 이거 해보자! 제안한다면 그 순간 네 번째 만남이 시작될 거라 생각해요.
+ 머시기마을은 이런 곳이에요 :) 클릭
P. 머시기마을의 꿍꿍이도, 하리가 그동안 해온 일들도 ‘워크숍’의 형태를 띤 경우가 많더라고요. 워크숍은 여러 사람이 모여서 공동의 과제나 고민을 ‘함께’ 풀어내는 과정이잖아요. 그만큼 혼자 해결하는 방식보다 시간과 노력이 많이 들기도 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리가 ‘워크숍’이라는 방식을 선택하는 이유가 있다면?
저는 혼자 하는 것보다 사람들과 함께 했을 때 행복하고 무언가 할 동력이 더 생겨요. 혼자라면 상상하지 못했을 또는 불가능한 것들이, 함께하면 각자의 재능과 힘이 모여 무엇이든 되더라고요. 모든 일이 다 그럴 것 같은데 저는 완벽한 사람이 아니고, 완벽한 사람이어도 그걸 다 혼자 한다면 지속할 수 없을 것 같아요. 각자 자신이 잘하는 것을 기꺼이 내어주고, 누군가 소모되지 않고 즐겁게 만들어 나갈 수 있는 방식을 지향해요. 생각이 달라서 또는 서로가 잘 몰라서 어려움도 있겠지만 그건 함께 맞춰나가기 위해 필요한 과정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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