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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될 원철이 Jan 12. 2016

없어봐야 그 존재의 소중함을 알다.

서비스 직종에 종사하는 20, 30대 평범한 내 이야기들中'

비싼 옷을 선물하고 맛있는 음식을 대접하고 좋은 영화를 보여 드리며, 무심한 듯 그렇게 특정 일에만 하는 관례인 듯 행해지는 우리네 행동들이 과연 반듯한 자세일까?

오늘의 난 어느 때와 다를 것 없이 매장에 방문하는 수 많은 고객에게  습관인 양 감정 없는 교과서적인 응대가 이루어져 갔고 오후가 되어 점차 메 마른 감정이 지쳐 있을 무렵, 생각지 않은 어느 고객 한 팀에게서 애틋한 감정과 아련함을 느끼고 팁 하나를 얻을 수 있었다.


'효[孝]'


-

어느 한 고객이 매장에 들어선다. 언뜻 살펴보아도 아쉬운 차림세에 옷가지를 애써 추스르며 우왕좌왕 하듯 갈피를 못 찾는 모습이다. 하지만 이윽고 질세라 별반 다르지 않은 어느 고객처럼  아이쇼핑이라도 하듯 소리 없는 조용한 쇼핑을 이어간다. 무엇을 찾고 계실까? '고객님 뭐 찾으시는 거 있으세요?' 내 질문에 무색하게 아들인 듯 보이는 고객은 '엄마 패딩이랑 아빠 신발 하나  사!'라고 내가 아닌 부모님께 답변을 전개했고, 이미 이리저리 제품을 살펴보시던 아빠는 적혀 있는 금액에 적잖이 놀라시며 비싸다고 아들 권유를 연거푸 거절하신다. 이래도 되냐며 엄만 내심 아들의 주머니 사정을 연신 걱정한 듯, 아들의 어깰 툭툭 치고 계신다. 아들은 이런 상황에 태연한 모습으로 웃음 기반 짜증반 어투로 말을 다시 건넸고 그런 아들의 말에 멋쩍은 듯 엄마 아빤 어색한 미소를 지어 보이고 계신다.



-

서비스를 하고 있는 내 입장으로썬 흔히 볼 수 있는 광경 중 일부에 지날 법 한 에피소드에 불과했다. 하지만 광경을 지켜보자니 왠지 그 순간 만큼은 알다가도 모를 답답함과 의문점이 문득 생겨났다.

왜 일까 왜 우리네 부모님들은 자식 앞에 당당하질 못하시고 보답받질 원치 않으실까. 답답했다.


난 일주일에 세네 번 정도 부모님과 통화를 한다. 수신이든 발신이든. 본래 하루다 멀다 하고 전화를 주시며 '그랬니 저랬니' 물어 가며 내  일거수일투족 궁금한 게 많으신 부모님이신데 언제부터인가 아들의 귀찮다는 어투의 잦은 투정으로 인해 애써 참으시기라도 한 듯, 요즘은 도통 전활 주지 않으신다. 먼저 전활 드려야 하는 옳은 행동이거늘. 늘 바쁘다는 핑계로 먼저 선뜻 전활 드리지 못한 불효를 일삼고 있다. 알고 보면 정작, 바쁘지 않은데도 말이다. [근본적으로 성격이 글러 먹었다.]

그런데도 외의는 있다. [맞을 각오] 매 끼 밥을 먹고 차를 먹고 운전을 할 때도 심지어 볼일을 볼 때도 시시콜콜 현재 상황을 카톡 하고 전화하고 갖은 애교 부리기 하루 바쁜 여자친구 말이다. 그런데 왜 하필 우리넨 부모님껜 그렇질 못하고 심지어 모질게도 무뚝뚝할까


왜 그럴까.


樹欲靜而風不止 수욕정이풍부지
子欲養而親不待 자욕양이친부대
往而不可追者年也 왕이불가추자년야
去而不見者親也 거이불견자친야

나무는 고요히 머물고자 하나 바람이 그치지 않고
자식은 봉양하고자 하나 부모님은 기다려 주시지 않네.
한번 흘러가면 쫓아갈 수 없는 것이 세월이요
가시면 다시 볼 수 없는 것은 부모님이시네.
 풍수지탄 [風樹之嘆] - (바람 풍, 나무 수, 조사 지, 탄식할 탄)


없어봐야 그 존재의 소중함을 알다.


결국, 아들의 원성을 이기지 못하시고 부모님은 그렇게 자의반 타의반 주입식 구매를 하셨고, 그래도 그런 아들의 선물이 내심 기분 좋으신 듯 연신 미소를 잃지 않으셨다. 그렇게 하루 종일 고객들과 씨름하며 지쳐 있는 감정 메마른 나 조차 미소 짓게 만들어 주셨고 나 또한 잠깐이나마 교과서 서비스가 아닌 사람대 사람 정[情]을 드릴수 있어서  천만다행이었다.


새 옷을 사신 기분 좋은 부모님만큼 내게도 흐뭇함이 함께 공존했다. 결제하고 뒤 돌아 서는 아들은 더 비싸고 값진 선물을 주지 못한 것 같아 아쉬워하였고 그런 부모님은 아들의 미안함과 든든함에 흐뭇해하시며 감춰진 웃음을  내어지어 보이셨다. 아들은 애써 이 미소가 보고 싶어 부모님께 조금이나마 위안과 보답을 드리는 것은 아닐까?


"그려 내가 너한테 투자한 시간과 돈이 얼만데

땅에 흘린 돈 보다도 못할겨! 아들 너무 고마워"


-

늘 상 드리는 물질적인 그 어떠한 것도 물론 좋지만 때때론  지금 당장 전화 한 통화, 목소리 한번 들려주는 것 또한 부모님께서 진짜 바라고 기다리시는 효[孝]가 아닐까 생각해 본다. 우린 떠나간 자식이 아닌 곁에 오래 머무는 느낌을 주는 것 말이다.



'판매직 종사 8년. 공부와  담쌓은 청년
서비스 직종에 종사하는 20, 30대 평범한 내 이야기들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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