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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도겸 Jan 24. 2022

작별하지 않는다

작별하지 않는다

한강 장편소설

문학동네

한강 작가의 책은 한 권도 읽지 않았는데 독서모임을 통해서 읽게 되었다.

처음 책을 읽었을 때 책 내용이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주인공의 행동이나 상황이 인식되지 않아서 무엇을 이야기하는지 이해가 잘 안 되었다.


제주43을 알게 된 건 몇 년 되지 않았다. 아내와 제주도 여행을 할 때 지인을 통해서 43 유적지와 식민지 시대의 비행장도 보면서 제주도의 슬픈 역사를 알게 되었다. 항상 따듯하고 이국적인 아름다운 섬이라고 생각했던 제주도가 섬이라서 도망도 갈 수 없는 곳이라는 생각에 마음이 아팠다.


이 책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제대로 볼수록 더 고통스럽다는 것'이다. 사람의 상처도 그렇고 역사도 그렇다. 제주43이라는 아픈 역사가 있었다는 사실을 인지하는 것만으로는 고통이 크지 않다. 소설 통해서 한 사람의 역사를 알아가고 제대로 들여다볼수록 더 고통스럽다.


고통이라는 것이 책을 관통하는 주제라고 생각한다. 고통스럽지만 우리가 알아야 하는 이야기들. 고통스럽다고 외면하지 않고 자세히 들여다봐야 한다는 것. 이런 고통스러운 역사를 통해서 현재를 잘 살아야 다시는 이런 고통이 찾아오지 않는 나라를 만들 수 있다는 것이다.


'눈'이라는 매개체는 살아있는 것과 죽음을 구분하기도 하고, 모든 것을 덮기도 한다. 이제 눈이 오면 눈 덮인 보리밭에서 부모님의 시신을 확인하는 자매가 떠 오를 것 같다. 시체의 얼굴에는 눈이 녹지 않는다는 것.


몇가지 상징이 등장한다.

검은나무는 제주43에서 희생된 분들의 넋을 기리기 위한 것. 2마리의 앵무새는 보살펴줘야 하는 존재와 주인공을 위로해줄 수 있는 존재. 눈은 삶과 죽음을 구분할 수 있는 것 그리고 모든 것을 덮어버릴 수 있는 것을 의미하는 것 같다.


경하는 딸을 잃은 것 같다. 소설 속에 정확하게 묘사되지 않지만, 광주 이야기를 쓰는 자신의 심리상태에 딸이 영향을 받을까 봐서 글 쓰는 작업실을 따로 구하는 섬세한 주인공이 자살하려고 마음먹는 것은 더 이상 보살피고 신경을 써야할 대상이 없어졌다는 것이 아닐까.


인선은 어린 시절 부모님을 이해하지 못했던 생각과 가출했던 기억. 현재는 손가락과 작별하지 않기 위해 참아내는 과정으로 힘든 시절을 보내고 있다.


어머니 정심은 자신과 언니만 살아남은 죄책감과 오빠의 시체를 찾지 못한 슬픔의 고통을 가지고 있는 것 같다. 아버지와 마찬가지로 홀로 살아남은 자의 슬픔을 무엇으로 이해할 수 있겠는가.


학교에서는 슬픈 역사를 가르치지 않는다. 내가 태어난 고향은 양민학살이 이루어진 곳이다. 면에서 우리 마을로 올라가는 곳에 실제 학살이 이루어진 곳이 있다. 지금은 추모관이 생겼지만 다니던 중학교 옆에 큰 무덤이 2개가 있었다. 비석은 뽑혀서 기울어지고 깨져 있었던 기억이 난다. 눈에 보이는 객관적인 사실만 알고 있었을 뿐 실제 사건의 진실을 알게 된건 어른이 되고 나서다.


작가의 말에서 지극한 사랑에 관한 이야기였으면 좋겠다고 했는데, 어떻게 보면 지극한 사랑이 맞는 것 같다. 우리가 알지 못하고 알려주지도 않는 지나간 역사에 대한 사랑이다. 비록 아름다운 사랑은 아니지만 잊지 말아야 할 사랑이다.


작별하지 않는다.

과거의 역사와 작별하지 않는다.

아픈 역사를 잊지 않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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