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만원도 채 들이지 않는 미래 지향적 디자인 툴 소개
이른바 재능을 사고파는 서비스를 둘러보면 브랜드 로고나 캐릭터는 기본이고, 심지어 웹,앱 디자인까지도 단돈 5만원에 판매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획일화된 패턴으로 클리셰에 가까운 결과물을 내는 구조이지만, 가격파괴를 무기로 나름의 시장이 형성되었다. 염가에 디자인이 양산되는 현상을 두고 많은 디자이너들은 조소를 보내거나 혹은 ㅂㄷㅂㄷ 위기감을 표출하기도 한다. 디자인의 본질이 무엇인지 그 논쟁은 차치하고 주목할 만한 점은 '부르는 게 값'이던 시장 가격에 불만을 가진, 적정한 수준의 디자인 결과물을 필요로 하는 고객이 상당수 존재한다는 사실이다.
이처럼 디자인의 중요성에 대한 인식이 대중적으로 확산되어 소규모 업체나 자영업자도 자체 디자인을 개발하려는 니즈가 있다. 앞서 살펴본 디자인 재능 판매 서비스는 그 수요에 맞춰 저비용의 디자인 인력을 공급하는 온라인 네트워크를 해결책으로 제시하는데, 이보다 더 미래 지향적인 IT 서비스는 과연 없을까?
물론 존재한다. 심지어 무료로.
그래서,
여러 그래픽 소프트웨어 회사, 대학 연구소, 스타트업 등에서 비전문가, 일반인을 위한 디자인 보조 도구라는 컨셉으로 접근하고 있다. 특히 영미권에서 개발된 서비스가 많은데, 이는 디자이너의 몸값이 상대적으로 높은 사회적 환경을 그 원인으로 짐작케 한다. 서비스 영역은 좁게는 로고 디자인에서부터 넓게는 모든 비주얼 커뮤니케이션까지 커버하고, 디자인 품질을 높이는 방식에 있어서도 잘 만들어 둔 템플릿을 제공하거나 가상의 디자인 프로페셔널 에이전트를 심어두기도 하는 등의 다양한 접근이 있다.
우선 국내외에서 가장 활성화된 서비스로는 캔바(canva)를 먼저 꼽을 수 있다. 캔바는 명실상부 가장 대표적인 온라인 그래픽 디자인 툴로서 이미 $165m 이상의 가치를 인정받았으며, 최근 시리즈A 단계에서 $15m을 투자받아 사업을 확장 중이다. 그 비즈니스 모델의 작동 방식과 사용시 장단점에 대한 리뷰는 별도로 다루기로 한다. 그 외에도 Adobe에서 제공하는 포스트(post)나 스타트업 서비스인 비즈미(visme) 등도 상용화 수준이다. 각 서비스에서 발견되는 디자인 원리와 기술적인 참신성을 따져 특징을 정리해본다.
이미 익숙하고 검증받은 디자인 스타일을 재현하면 일정 수준 이상의 디자인 품질이 보장된다. 프레젠테이션의 슬라이드 표지라던가, 페이스북 페이지의 커버 디자인을 떠올려보면 그 기능과 제한에 따라서 몇몇 특정한 레이아웃으로 분류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색상 선택에 있어서도, 원하는 감성에 맞춰 전형적으로 사용되는 주조색, 보조색, 강조색의 조합으로 컬러 팔레트(colorhunt, colourlovers)가 존재한다. 그래픽 이미지를 구성하는 서체, 사진, 기호, 장식 등의 요소도 마찬가지로 상당히 규칙적인 디자인 룰에 의해 조합된다. 요컨대 디자인 패턴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런 특징에서 고안해낼 수 있는 해법이 바로 정형화된 디자인 템플릿이다. 앞서 언급된 캔바, 포스트, 비즈미 모두 양질의 디자인 템플릿 콘텐츠를 제공하며, 이 점을 장점으로 내세우고 있다.
디자인 패턴이라는 개념을 소프트웨어 엔지니어링이나 건축학에서 사용하는 용어와 같은 맥락으로 이해해도 무리가 없다. 설계 상 어떠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오랫동안 반복되어 사용하면서 축적된 솔루션을 의미한다. 따라서 사용자는 용도에 적합한 디자인 템플릿을 선택하기만 해도 성공적인 결과물을 얻게 된다. 그렇다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디자인 패턴을 보유하고, 거기에 맞춰 아름답게 만든 템플릿을 더 많이 제공하는 게 정수일까? 수동적인 방식은 한계가 있다. 게다가 템플릿 선택 옵션이 많아진다는 것은 한 편으로 번거로움이다. 사용 맥락을 인지하고 추천하는 알고리즘과의 결합이 하나의 해결책이 될 것으로 보인다.
서두에 언급했듯이 디자인 보조 도구 서비스는 전문 에이전시 기업이나 스튜디오에 큰 비용을 들이는 기존 수요를 대체하려는 목적이 아니다. 빠른 시간에 적은 자원을 들여 적정한 수준의 디자인 결과물을 직접 보길 원하는 니즈를 파고든다. 많은 경우에서처럼 디자인의 필요성은 느끼지만 그 성과가 불확실하고 가격 기준조차 모호한 상황에서 태워버리는 돈을 아낄 수 있다. 비용은 정말 중요하니, 지출하는 금액 관점과 소요되는 시간 관점에서 모두 고려해 볼 필요가 있다.
가격 대비 성능의 수준을 의미하는 가성비 개념을 빌어서 특징을 요약해본다. 위와 같은 서비스를 활용했을 때, 외부에 디자인 의뢰 시 발생하는 비용이 절감될 뿐 더러, SaaS 개념으로 빌려 사용하는 소프트웨어라 초기 비용이 크게 들지 않는다. 그리고 커뮤니케이션을 단축하면서 시간의 효율성까지 획득한다. 특히나 타이밍이 생명인 소셜 마케터의 경우에 디자이너를 거치지 않고 콘텐츠 제작 프로세스를 단순화시키는 데 소구점이 있다. 이로써 시간을 놓치지 않게 되며, 시간을 아낄 수 있게 된다. 하이엔드 디자인을 추구하는 장인정신은 접어두고, 투자 대비 효용을 따지는 21세기적 접근이라 자위하면 모든 게 납득될 것이다.
그동안 전문가의 포토샵을 대체하려는 툴들이 번번이 나타났다 사라졌듯이, 비전문가, 일반인의 디자인을 도와주는 도구도 없었던 바는 아니다. 디자인하기 위한 디자인 개념을 실제 서비스로 구현하고 여기에 수익 구조까지 만드는 작업은 쉽지 않아 보였다. 하지만 바야흐로 비주얼 내러티브의 시대가 오면서 비주얼 콘텐츠의 수요가 크게 증가한다. 디자인이 웹이나 인쇄에만 쓰이는 기술이라는 인식에서 벗어나, 모든 커뮤니케이션에 필수적이라는 분위기가 형성되었다. 실제로 비주얼 콘텐츠가 일반 텍스트에 비해 사용자의 관심도가 최대 94% 증가시킨다는 등의 자료가 시장의 수요를 늘리고 있다.
이에 힘입어 그래픽 디자인 인접 분야에 파편화 된 서비스를 한데 모은 플랫폼 비즈니스가 비로소 가능해진다. 1,2달러를 지불하고 다운 하여 쓰는 디자인 리소스 거래소, 온디맨드 방식의 디자인 콘테스트 사이트의 개념을 한 데 모아 캔바와 같은 비주얼 콘텐츠 중심 생태계가 구축되었다. 디자이너들이 창작자로 참여하여 템플릿, 아이콘, 사진, 일러스트레이션 등을 올리면, 그 판매에 따른 로열티를 수익으로 챙길 수 있다. 또, 버퍼(Buffer)와 파블로(Pablo)의 공생 관계에서도 보듯이 비주얼 콘텐츠 저작 도구와 게재 도구, 모니터링 도구를 영리하게 묶어 극도의 편의성을 제공함으로써 사용자는 이 생태계에서 빠져나가려야 빠져나갈 수 없게 된다.
생태계의 원동력은 디자인이 아니라 사용자의 경험을 물 흘러가듯 이어주는 기술이다. 별도 소프트웨어 설치 없이 클라우드 서비스 형태로 제공되어 가볍게 접근하게 하고, 브라우저에서 바로 그래픽이 렌더링 되어 직관적이다. 알고리즘은 점점 똑똑해져 원하는 맥락에 맞는 디자인을 추천한다. 필요한 기능을 API로 연동해두어, 도구를 옮겨가며 작업하지 않아도 된다.
이쯤 되면 5만원 짜리 가격 파괴 디자인으로 촉발된 디자인의 본질 논쟁 따위는 무색해진다. 비교적 가려있던 디자인 영역에서의 정보 비대칭성을 해결하는 이런 서비스는 앞으로 점점 각광받을 것이며, 이들의 흥행에 의해 기존 디자이너의 역할이 재정의되는 상황이 예견된다. 디자인 기술에만 의존하던 공장 양산형 디자인의 가치가 떨어질 것은 뻔한 일이다.
물론 이런 도구에 의해 만들어진 그래픽 데이터와 독창성 있는 창작물로서 디자인을 그대로 비교하기엔 무리가 있다. 좋은 디자인이란 단지 시각적인 그래픽을 조합하는 기술뿐만이 아니기 때문이다. 아직은 불완전하고 시기상조임에도 불구하고, 디자인의 민주화를 목표로 진화하고 있는 이 혁신적인 서비스들에 계속 관심을 가질 만하다. 누구나 몇 번의 클릭만으로 고급진 디자인을 빠르고 편리하게 만드는 세상이 머지않아 다가올 것으로 보인다.
아, 5만원도 들이지 않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