뒤늦은 영화 감상의 소회
넷플릭스 영화의 홍수 속에서 볼 만한 영화를 고르는 나만을 위한 팁이 있다면 책이나 글쓰기와 관련된 영화를 고르는 것이다. 북클럽, 작가 일대기나 심지어 책을 만드는 일, 출판사, 편집, 혹은 기자, 취재의 영역까지 어떤 영역이든 '글을 쓰는 사람'이 나오는 영화는 보통 완전한 실패는 면할 확률이 높다. 어떤 스토리라 해도 '글을 쓰는' 마음이나 과정에 공감하거나 생각할 포인트가 한 장면은 나오기 마련이라.
건지 감자껍질파이 북클럽 또한 그렇게 고른 영화인데 생각보다 여운이 남았다. 특히, 작가가 자신 안의 스토리를 완성하기 위해 거의 '기자' 수준으로 빙의하여 고군분투하는 모습, 그리고 그렇게 완성된 이야기를 글로 쓸 수 없는 상황에 처했을 때 다른 어떤 글도 쓸 수 없어져 버린 모습이 특히 그랬다. 전자는 사실 나의 영역은 아닌데 그럼에도 보는 내내 마음이 불편했고.
소설은 보통 완전한 허구에서 나오지 않는다. 누군가의 이야기, 혹은 누군가를 소재로 한 이야기에서 시작되기 마련인데 보통 현실에 존재하는 이야기일수록 진정성이, 그리고 그 디테일이 맞아 쓰는 작가에게도 확신을 주기 때문일 테다. 그러니 결국 작가는 타인의 이야기 실마리를 자꾸만 쫒게 되는데 그 과정의 무례함이나 무지함은 결과물로 퉁쳐버린다. 누군가에겐 '삶'인 그 이야기를 탐하는 과정에서 저지르는 무례, 그것만이 문제는 아니다. 그 이야기에 공감해가는 동안 작가는 자신이 무엇에 발들이고 있는지도 모르는 채 점점 그 이야기로 빨려 들어간다. 그러나 어떤 이야기는 작가의 삶을 송두리째 바꾸는 파괴력을 가지는데, 그렇다 해도 이미 발들인 이야기로부터 작가는 벗어날 수 조차 없는 것이다. 그런 끝이 해피엔딩인 건 드라마에서나 등장할 법한 요행에 가깝다고 본다.
그리고 후자, 마음에 가득 들어차 있는 글을 토해놓지 않고서는 다른 어떤 글도 쓸 수 없는 상황은 사실 최근의 나의 상황과 닮아서 마음에 남았다. 내가 겪고 있는 일들이 마음에 가득 차 있는데 거기에 대해 글을 쓸 수 없다면 다른 어떤 글도 쓸 수 없는 거다. 사실 이건 아직 진행형이라 조만간 새로운 글 쓰는 자아(?)를 하나 팔까 싶기도 하고.
어찌 되었든 글을 쓰는 작업은 생각보다 나를 많이 드러내고, 나를 던져내어야 하는 일인 듯싶다. 내 사진이 덤덤하거나 이성적인 인간이 아닌데 어찌 그런 글이 나올까. 있는 그대로의 나를 드러내면서도, 혹은 내 삶을 던지면서도 쓸 수 있는 사람이 되는 길, 언젠가는 그 답을 찾을 수 있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