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형 세단 시장에 지각 변동이 감지된다. 그랜저 하이브리드 풀옵션을 고려하던 소비자들이 유사한 가격대의 볼보 S90으로 눈길을 돌리는 현상이 두드러지고 있다. 5천만 원대 후반에서 6천만 원 초반의 예산으로 그랜저 최상위 트림을 구매할 수 있지만, 조금만 더 투자하면 한 체급 위인 대형 플래그십 세단을 소유할 수 있다는 인식이 확산되며 가격 경쟁력에 새로운 균열이 발생하고 있다.
대형 세단 시장에 지각 변동이 감지된다. 그랜저 하이브리드 풀옵션을 고려하던 소비자들이 유사한 가격대의 볼보 S90으로 눈길을 돌리는 현상이 두드러지고 있다. 5천만 원대 후반에서 6천만 원 초반의 예산으로 그랜저 최상위 트림을 구매할 수 있지만, 조금만 더 투자하면 한 체급 위인 대형 플래그십 세단을 소유할 수 있다는 인식이 확산되며 가격 경쟁력에 새로운 균열이 발생하고 있다.
현대 그랜저 / 사진=현대자동차
2025년형 그랜저 하이브리드 캘리그래피 모델은 기본 가격 5,205만 원부터 시작한다. 여기에 파노라마 선루프(119만 원), 헤드업 디스플레이(99만 원), 플래티넘 옵션(129만 원), 현대 스마트센스 2 패키지(89만 원) 등을 추가하면 총 가격은 5,729만 원으로 상승한다. 2열 VIP 패키지와 세레니티 화이트 펄 외장 컬러까지 선택할 경우, 최종 구매 가격은 5,800만 원을 상회한다.
반면, 볼보 S90 B5 플러스 모델은 6,530만 원, B5 울트라 모델은 7,130만 원에 판매 중이다. 그랜저 풀옵션 모델과 S90 기본 트림 간의 가격 차이는 약 700만 원 수준이다. 하지만 볼보는 통상적으로 연중 프로모션을 통해 최대 400만 원에서 500만 원까지 할인 혜택을 제공하고 있어, 실제 구매 가격은 6천만 원 초반대로 낮아진다. 이는 그랜저 풀옵션 모델과 불과 200만 원에서 300만 원 정도의 차이에 불과한 금액이다.
볼보 S90 / 사진=볼보코리아
핵심은 '차급'이라는 근본적인 차이에 있다. 그랜저는 준대형 세단으로 분류된다. 전장 5,035mm, 전폭 1,880mm의 차체 크기는 국산차 기준으로는 큰 편이지만, 대형 세단 시장에서는 평균적인 수준이다. 반면 볼보 S90은 전장 4,963mm로 그랜저보다 약간 짧지만, 실내 공간 설계, 시트 품질, 그리고 전반적인 마감 수준에서 확연히 차별화된 경험을 제공한다.
특히 S90에 적용된 넷슬 가죽 시트는 장거리 주행 시에도 운전자와 탑승객의 허리와 다리를 안정적으로 지지하는 인체공학적 설계가 돋보인다. 허벅지 앞쪽을 지지하는 쿠션 확장 기능과 4방향 요추 지지 조절 기능이 기본으로 제공되며, 전 좌석에 시트 통풍 및 열선 기능이 적용되어 있다. 2열 공간 역시 레그룸이 940mm로 그랜저 하이브리드의 927mm보다 넓고, 헤드룸 또한 여유롭다.
주행 질감에서도 분명한 차이를 보인다. S90은 볼보 특유의 안정적인 섀시와 뛰어난 실내 정숙성을 바탕으로 고속 주행 시에도 차체의 흔들림이나 불안정한 느낌이 거의 없다. 2.0리터 마일드 하이브리드 엔진은 250마력의 최고 출력과 35.7kg.m의 최대 토크를 발휘하며, 정지 상태에서 100km/h까지 가속하는 데 7.3초가 소요된다. 복합 연비는 11.5km/ℓ로 그랜저 하이브리드의 17.1km/ℓ에는 미치지 못하지만, 전반적인 주행 질감과 정숙성은 우위에 있다는 평가다.
볼보 S90 인테리어 / 사진=볼보코리아
첨단 기술 장비 구성 역시 눈여겨볼 만하다. 그랜저는 12.3인치 듀얼 와이드 디스플레이와 10.25인치 풀 터치 공조 컨트롤러, 헤드업 디스플레이, 빌트인 캠 2, 증강현실 내비게이션 등 최신 편의 장비를 대거 탑재했다. 현대 스마트센스 2는 전방 충돌방지 보조, 고속도로 주행 보조 2, 후측방 충돌방지 보조 등 첨단 운전자 보조 시스템(ADAS)을 포함한다.
S90은 9인치 센서스 인포테인먼트 시스템과 12.3인치 디지털 계기판, 파일럿 어시스트 2 기반의 반자율 주행 기능을 제공한다. 특히 볼보의 시티 세이프티 시스템은 보행자 및 자전거 감지, 대형 동물 감지, 교차로 자동 제동 등 실질적인 안전 기능을 다수 포함하고 있다. 뱅앤올룹슨 19 스피커 프리미엄 사운드 시스템은 S90 울트라 트림에 기본으로 탑재되어 있으며, 뛰어난 음질과 공간감으로 그랜저의 보스 프리미엄 사운드 시스템을 능가한다.
연비 및 유지비 측면에서는 어떨까? 그랜저 하이브리드는 1.6리터 터보 엔진과 전기 모터의 조합을 통해 복합 연비 17.1km/ℓ를 기록한다. 반면 S90은 복합 연비 11.5km/ℓ로 그랜저 대비 약 33% 낮은 수준이다. 연간 2만km를 주행한다고 가정했을 때, 그랜저는 약 140만 원, S90은 약 210만 원의 유류비가 발생한다. 연간 70만 원의 유류비 차이는 무시할 수 없는 요소이지만, 차급의 차이를 감안하면 합리적인 수준이라는 평가가 주를 이룬다.
중고차 시세 또한 중요한 변수다. 그랜저는 신차 출고 직후부터 감가상각이 빠르게 진행되며, 3년 후 잔존 가치는 신차 가격 대비 약 60% 수준이다. 반면 S90은 수입차 감가율이 적용되지만, 대형 세단 특성상 잔존 가치율이 상대적으로 높은 편이다. 4년 후 차량 매각을 고려한다면, 실질적인 총 부담액 차이는 더욱 줄어들 수 있다.
소비자들이 S90을 선택하는 이유는 크게 두 가지로 분석된다. 첫째는 차급의 차이다. "5천만 원대 후반까지 지출할 의향이 있다면, 조금만 더 투자해서 대형 세단을 경험하는 것이 합리적"이라는 인식이 확산되고 있다. 둘째는 브랜드 이미지다. 볼보는 안전과 북유럽 특유의 감성을 강조하는 프리미엄 브랜드로서, 메르세데스-벤츠나 BMW와는 차별화된 이미지를 제공한다. 특히 환경 문제와 안전을 중시하는 40-50대 소비자층에서 볼보의 인지도가 빠르게 상승하고 있다.
반면 그랜저를 선택하는 이유 역시 분명하다. 풍부한 편의 장비, 국내 도로 및 주차 환경에 최적화된 차체 크기, 그리고 전국 어디에서나 용이한 A/S 서비스 접근성은 그랜저의 핵심적인 강점이다. 연비 차이 또한 간과할 수 없는 요소다. 장거리 출퇴근이 잦거나 연간 주행 거리가 3만km를 초과하는 운전자에게는 그랜저가 더욱 합리적인 선택이 될 수 있다.
결국 선택의 기준은 '어떤 가치를 추구하는가'에 달려 있다. 실용성과 경제성을 중시한다면 그랜저 하이브리드는 여전히 강력한 선택지다. 하지만 차급의 차이를 직접적으로 체감하고, 볼보만의 북유럽 프리미엄 감성을 경험하고 싶다면 S90은 매력적인 대안이 될 수 있다. 유사한 예산으로 준대형 세단과 대형 세단 사이에서 고민할 수 있다는 사실 자체가, 현재 대형 세단 시장이 얼마나 역동적인 변화를 겪고 있는지를 시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