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워서 베를린 필하모니 연주에 다녀왔다
다시 아침, 오늘은 에어비앤비로 이동하는 날이다. Panni는 주말에 근교로 여행을 다녀온다고 했다. 비행기를 타러 가야해서 조금 일찍 10시 30분 정도까지 와줄 수 있냐고 연락이 왔다.
“Of course! 나에게 있는 건 시간뿐이야”
우버를 불러 그녀의 집으로 향했다. 어제 한번 걸어봤던 길이라 눈에 더 선명했다. 또 다시 비가 내렸고, 나는 어제 호텔에서 겪은 일을 다시 정리해서 호텔스닷컴 본사에 보냈다. 이런 호텔이 너희의 고객이라는 게 매우 유감이라는 말도 전했다.
Panni의 동네에 다가오니 뭔가 북적이는 게 느껴진다. 터키쉬 마켓이 열렸다. 개천 주변으로 빼곡이 상점이 들어섰다. 오래된 동네에 온 기분. 이 동네에서 잘 지낼 수 있을 것 같은 느낌이다. 그녀의 집은 오래된 유럽식 건물. 보통 이런 건물엔 엘리베이터가 없어서 층수가 높으면 캐리어 끌고 이동할 때 진땀 빼는데 다행히 1층이다. 한 층만 올라가면 된다. (유럽은 우리의 1층이 0층, 2층이 1층이다) 그녀는 나를 보자마자 위로부터 전했다. 이제 마음이 좀 편한지, 내가 사는 도시에서 이런 일을 겪어 미안하다고 했다. 집 사용법을 천천히 설명해준 뒤 그녀는 떠났다. 다시 혼자다.
방에 널부러졌다. 소파에 누워 방을 찬찬히 구경했다. 아늑하다. 구조도 예쁘고 조명도 예쁘고 포스터도 예쁘고 책장도 예쁘고 바깥 풍경도 예쁘고 다 예쁘다. 누워서 핸드폰만 만지작거리다 이대론 안되겠어서 밖으로 나왔다. 터키쉬마켓을 이리저리 살폈다. 맛있어 보이는 게 많았지만 입맛이 없어서 구경만 했다. 그러던 사이 또 비가 내렸고 사람들은 비를 맞으며 장터 음식을 먹었다. 비 속에서 음식을 먹는다는게 아직도 적응이 안된다. 근처 카페에서 커피를 한 잔 사마시고 들어와 다시 누웠다. 그리고 베를린 필하모니 오케스트라의 앨범을 틀었다. 베를린에 와서 듣는 베를린 필하모니의 연주는 왠지 더 낭만적인 기분이 들었다. 말러 교향곡 제5번 4악장 아다지에토. 마음의 안정이 필요할 때면 종종 듣는 곡인데 오늘따라 이 곡이 큰 위로가 되었다. 아쉽게도 베를린 필하모닉 공연은 모두 매진이다. 어쩔 수 없다. 미리 준비하지 않은 자는 그것에 맞는 여행을 해야 한다. 지금은 베를린에 누워서 베를린 필하모닉 연주를 듣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한바탕 또 엉엉 울고는 다시 밖을 나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