냉장고에 식재료를 넣어두는 것만으로 마음이 편안해졌다.
베를린은 생필품 물가가 매우 저렴한 편이다. 유럽 전역이 대체적으로 저렴한 편이지만 도시 중엔 손꼽히게 저렴하지 않을까 생각된다. 베를린에서 외식을 하면 적어도 한 끼에 5유로 이상, 음료까지 곁들이면 한국 돈 1만원 정도는 필요하다. 그 돈으로 슈퍼에서 장을 본다면? 올리브유, 치즈, 소시지, 고기, 요거트, 파스타면, 소스, 오렌지주스, 물까지 다 살 수 있다. 나는 여행을 할 때 호텔과 에어비앤비를 모두 경험하는 편인데, 그 도시의 식자재로 음식을 만드는 걸 좋아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지금 에어비앤비에 머무는 중이다. 물론 지금 심리 상태에선 호텔이 아닌 집인 게 천만다행이기도 하다.
오늘은 제대로 된 장을 보기로 했다. 파스타도 해 먹고, 고기도 구워 먹을 생각이었다. 거리에 있는 야채 가게에서 가지와 호박, 파프리카 한 개씩, 방울토마토 한 팩을 샀다. 2.5유로. 정육점에 들어가 소고기 등심 한 덩이를 샀다 2유로. 마트에서 올리브유와 요거트, 소시지, 모짜렐라 치즈, 오렌지 주스, 그리고 라들러도 한 병 샀다. 5.6유로.
숙소로 돌아와 장본 것들을 쭉 꺼내놓는데 뭔가 허전하다. 파스타를 해 먹기로 해놓고 파스타면을 사지 않았다. 다시 마트로 나갔다. (베를린은 일요일에 모든 마트가 쉰다. 오늘은 토요일. 지금 사놓지 않으면 내일까지 먹을 수가 없다) 독일에서 만든 유기농 제품 앞에는 BIO라는 이름이 붙는다고 한다. 마침 숙소 근처에 BIO 마켓이 있길래 그곳에 들러 파스타면을 샀다. 간 김에 군것질할 게 없다 살펴보다 좋아하는 커피맛 요거트도 하나 구매했다. 다시 돌아와 사 온 것들을 쭉 펼쳐놓고, 냉장보관할 것들은 냉장고에 넣어두고 정리하고 나니 마음이 조금 채워지는 기분이다.
그런데 막상 요리를 하려 하니 귀찮아졌다. 애쓰지 말아야지. 커피맛 요거트를 하나 먹고는 다시 소파에 드러누웠다. 오후 6시 20분. 잠시 뒤, 카카오톡이 울렸다.
“저녁 7시에 그 식당에서 봐요. 잘 찾아올 수 있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