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를린 빛 축제 기간이었다.
사실 오늘은 베를린 사는 지인과의 저녁 약속이 있는 날이었다. 내가 이곳에 와서 경황없는 일을 겪기도 했고, 오후 6시가 될 때까지 별 다른 연락이 없어서 혼자 지레짐작 취소됐을 거라고 생각했다. 마음이 많이 위축되었던 것 같다.
“물론이죠!”
문자를 보낸 뒤 후다닥 나갈 채비를 했다. 밥이고 뭐고 그건 내일 하면 되니까. 베를린의 주말 저녁. 미테 거리는 사람들로 북적였고, 유명하다는 음식점은 가게 밖까지 줄이 길게 늘어서 있다. 약속 장소인 식당 앞에 도착하니 이곳도 예약을 하지 않으면 안 되는 모양새다. 지인이 왔나 두리번거렸는데 아직이다. 와이파이가 터지지 않아 잠시 식당 앞에 서있다 가게로 들어갔다. 예약자 이름에 그의 이름이 있는지 확인해보았다. 다행히 있다. 자리를 잡고 앉아 사람들을 구경했다. 놀랍게도 저녁 7시 이후, 해가 지고 난 뒤에 밖에 있는 게 오늘이 처음이다. 배가 한가득 부르도록 따뜻한 음식을 먹고 거리를 걸었다. 디저트로 아이스크림도 손에 쥐고. 걷다 보니 건물들에 빛이 한가득이다. 알고 보니 빛 축제 기간이다. 이렇게 밝게 반짝이는 기간에 나는 방에서 어둠과 마주하고만 있었다. 베를린 돔에서 브란덴부르크문까지 관광지들을 구경하며 걸었다. 건물마다 각자의 이야기를 담은 반짝임이 아름다워 계속해서 카메라를 눌러댔다. 그날 이후로 흑백모드로 고정되어 있던 카메라도 컬러 모드로 조정했다.
한참을 걷다 보니 밤 11시다. 그와 헤어진 뒤 지하철을 타고 숙소로 돌아왔다. 웅크린 마음에 조금씩 빛이 들어오는 것만 같다.
“오늘 정말 고마워요.”